1> 길 위에서의 생각 / 류 시 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2> 가을 노트 / 문 정 희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 한 말

못다 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 잎 두 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3> 즐거운 편지 / 황 동 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 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4> 이 별 노 래 / 정 호 승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5> 참 좋은 당신 / 김 용 택

 

어느 봄 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진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 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아침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좋은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