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애야 ~~~

내가 지금 네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보게 될 줄을 생각이나 했을까..

싹싹하고 친절하고,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작은 순희 덕에 이런 경사도 생기는가 싶다.

 

지나간 날들이 모두 다 그리운 건 아니지만

학교도 너네 집도 전동이었던 시절이 좋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구나

그때는 함께 있으면 무어가 그리도 우습고 재미있었는지

그저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고민거리도 못 되는 걸로 머리 싸매고,

그리고는 낄낄거리고 또 웃어대곤 했었지.

세상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듯 정말 좋기만 하던 시절이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정작 당사자들은 그걸 모르고 지나가는 게 만고불변 세상의 진리..!!

그래서 또 이리저리 부딪치고 헤쳐나가며 살아 내는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지난 시간들은 잊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는데,

여름이어서 그런 건가.. 암튼 어찌된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너랑 순희랑 이작도엔가 놀러갔었던 기억이 퍼뜩 떠오르네,

교회오빠라는 분도 있었던 것 같고 (얼굴이 사각형으로 기억이 되는데 검증은 어려움..)

 

너는 그 당시 유행하던 14인치(?) 넓이의 가로무늬 판탈롱을 입고 있었고,

긴 머리도 비슷했던 순희와 나는 작은 칼라에 앞에 지퍼가 있는 거의 같은 모양의 원피스를 입고

바닷가에 앉아 조가비를 주웠었지,

작은 흑백사진이 있었는데 아직 남아있는지 한 번 찾아봐야겠다..

 

이북 사투리(이거 맞나 모르겠네..)의 기억이 있는 어머님이 맛난 밥도 많이 해주셨고,

옆으로 돌아서 들어가는 방에 사시던 아주머니의 얼굴도 희미하게 기억이 나네,

그때 철없는 우리 눈에는 그분들이 굉장히 나이 드신 어른이라고만 생각이 되었었지만

사실은 꽃같이 화사하고 예쁘고, 그리고  앞날에 대한 희망과 꿈이 많으신 새댁들이셨을 꺼야,

 

나이는 다른 사람들한테만 해당되는 것이고,

나는 나이 안 먹고 환갑잔치는 달나라에 가서나 하게 될 줄 알았었으니,

참,  천방지축 세상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지..

 

그렇게 풋풋했던 시절의 기억만 남겨놓고

너랑 순희는 태평양 건너로 훌쩍 날아가버렸지,

이제 다사다난했을 중간 시절은 웃음과 눈물과 보람 속에 다 흘러가버렸을 테고

지금은 어떤 일이든 마음 내려놓고 넓고 가볍게 볼 수 있는,

아니 볼 수 있어야만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네.. 쯧쯧...

 

너나, 순희나,

우리들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

굳이 만나지는 못한다 해도 이렇게 옆에 있는 것처럼 언제든 알 수는 있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야겠지,

 

가까워서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은 미루다 미루다 안 만나지고,

멀어서 못 만나는 친구들은 또 멀다는 그 핑게로 안 만나지고,

 

사노라면,

때로는 바위처럼 침묵 속에 묻혀 있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고,

햇살이 환히 비추는 날 불현듯 봄바람 불 듯 친구들이 그리울 때면

이리저리 이름 부르며 찾아 나설 수도 있을 것이고,

그저 마음 속에 언제라도 불러 볼 수 있는 그리운 이름의 친구가 있다는 것이

마음의 위안이고 힘이고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좋은 일이겠지만,

 

그렇더라도 언젠가 만나지길 기대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