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도배는 안한다! 선언했건만... 쓰고 싶은 글감이 열개는 되니 줄이고 줄여야 겠다. 걔 옛날과 똑 같던데...ㅎㅎ 하는

말이 귀에 간질거린다)


1)

큰아이가 회사 임원이 되니, 마치 교수들 연구실처럼  회사 내에 개인 공간 '방'이 생겼다.

사진으로 보니... 방에 아무 것도 없어, 휑한 것이 낯선 엄마는 자발적으로 제안을 해보았다.

로댕 조각의 미니어쳐도 있고, 모딜리아니 그림의 장식용 접시도 있고.... 원하는 대로 가져다가 사용하라.

젊은 김학수 선생님 그림은 국립민속박물관 내 노년의 그림들보다 품격이 높다 (625 후 동향이셔서 아버지께서 구매하신 그림들)


아무 것도 필요없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는데

조금 전 메시지가 왔다. 할머니 그림을 걸고 싶으니, 그림액자 하나만 주세요~

와~~~~~~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 하실까, 보이는 듯하다.



그림은 정말 주관적인 즐거움을 준다!

그림이 주는 즐거움을 나만큼 많이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어머니 그림 비평도 따갑게 많이 들었고, 그런 한편 그림을 통해 애맹사업을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친구들에게 또 지인들에게 어머니 그림 구매를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하였다. (항상 내가 가장 많이 소모함. 전시회의 약 70%?) 

어머니 그림에 정말 많은 꿈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현하기도 전에 쓰러지는 일이 생겼다.  급할 것 없다. 어머니도 

안계시니.....


허나 잊기 전에 선언해 버리는 것도 의미있겠다 싶네.

그간 어머니 그림을 사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다시금 표하면서

앞으로는 남은 생애동안 가능한한 어머니 그림을 모두 내가 다시 사들이는 일을 하고프다는 뜻을 전합니다. 

워낙 어머니 광팬들이 많았기에 그림은 꽤 많으리라고 여겨지고, 천천히... 능력껏 (무리할 수는 없으니) 열심히 하고저 합니다.

집안에 너무 장식이 많아 이미 내려놓은 분들도 있겠지요? 제게 연락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저렴한 액자를 쓰셨기 때문에... 혹 그림 보존을 원하는 분들은 

전문인과 의논, 액자를 다시 꾸미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걸어보는 것도 강추드립니다)




2)

화평동 집에서는 주말 수채화교실이 (1960~ 2014.12) 어머니 소천하실 때까지 열렸는데

1년 52주 각각 독특한 교안이 있었으니 참 신기하고 재미나다. 

-연말에는 거울을 놓고 자기를 보면서 자화상을 그린다

어머니 노년에 그리신 <감사와 기쁨의 나날들>은 거울도 보시지 않고 그리신 자화상으로 최걸작이다.

물론, 둥글게 둘러 앉아 그림그리는 화가들을 서로 그리기도 한다.

나이테 별 자화상을 보면 자기자신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듯.... 감격스럽다.

-김장 시즌에는 무/배추/파 등 김장거리를 놓고 그리는데, 이건 정말 히트다. 이런거 그리는 화가를 본 적이 없다.

-장마 시즌에는 비신(장화)과 우산 등을 펼쳐 놓는다. 

운동화 고무신 의자 등과 화분과 화병은 정말 많이 그리셨다.

그러다보니 꽃을 보존하는 센스가 자라서... 식물학자는 저리가라 수준이셨다.

-야외 사생을 할 때에는 차이나타운/ 큰 배가 있는 항구, 작은 배가 있는 포구/ 우리 동네/ 교회가 있는 풍경/ 인일여고 인천여고 

축현학교 / 배다리와 지성소아과.... 어디든 즐거웁게 그린다. 몇십년 후에 그 그림을 보는 것은 역사적 의미도 더한다. 



어머니의 수채화 교실....

그 한 branch는 춘천 유명애 화백 집에서, 또 한 branch는 인천 용현동 사촌언니 유경애 화백의 집에서 계속되고 있는데

인천시에서 벽화를 그려준 화평동집은 제자분이 사셨고, 동생네는 서울로 이사; 나는 아마 인천 branch의 수채화교실에 

참여하여 주1회 꾸준히 그려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