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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뒤로 분명 기억한다.

6년 동안 본 영화를 차례대로 적어보았다. 무려 100여편 혹 200여편(? 정확한 수치 기억은 불능)

 학교에서는 거의 일년에 20편 가량 단체관람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영화를 복수 추천해줘서 두편을 모두 봐도 됐다.

 

소심한 편이라  학교에서 가라는 영화 외에는 거의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백프로 가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이 그 시절엔 보고 싶은 영화가 넘쳐났었다.

감수성도 싱싱한 시절이었으니 영화에서 받은 감동은 현실세계를 비루하게 보이기도 했고 그리움을 키워주기도 했다.

 

 그런데 요즈음 영화들은

 너무 폭력적이거나,  원색적이거나,  어둡고 칙칙하거나, 지나치게  환타스틱하거나,  쓸데없이 심각하거나...

암튼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시들해진 감수성 때문이라고 나이탓만 했었다.

 

인도영화 `세 얼간이`를 보았다. 소위 말이 되는 영화다.

줄거리는 인도의 최고 명문 공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배경으로 했다.(여러분의 영화보기에 방해되니 줄거리는 생략)

아주 스마트한 주인공, 빠른 전개, 밝은 화면, 재치있는 대화, 해피 엔딩.

나이들수록  해피엔딩이 무척 좋아진다. 불행한 끝을 보는 건 싫다.몇 배의 불행한 기분만 남을 뿐이니까. 

영화를 보는 150분 화면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한 느낌,

바로 중고교 시절에 영화를 보며 체험했던 그 기분을 다시 느꼈다면 과장이기만 할까?

 

뭐 그렇다고 이 영화가 특별한 애기를 담고 있다고는 상상하지 마시라.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그렇고 그런 얘기다.

부모는 자식의 인생을 설계하지 마라, 공부를 잘 해야 출세해 잘 살게 된다는 미신, 무조건 암기하는 교육의 병폐,

생각하게 하는 교육의 중요성, 물질 만능에 대한 풍자... 그리고 마음에서 오는 사랑의 중요성.

이런 얘기를 식상하지 않게 꾸민 감독의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대사들도 영화를 보는 재미와 의미를 보태준다.

 

 `친구가  잘 안되면 눈물이 난다. 그러나 나보다 잘되면 피눈물이 난다`

`너의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이 보일 것이다`

 `알 이즈 웰(All is well)`이란 주문에 따라 뱃속에서 발차는 아기.

 

자기가 걸치고 두른 소위 명품이라는 것들의 가격을 읊고 있는 남자,

미국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만이 공부의 끝이라고 주장하는 교수,

얼마 짜리 이태리 자동차에 대저택에 예쁜 마누라를 지녔다고 동창생 중 자기가 제일 성공 했다고 떠드는 얼간이.

그들이 영화 속에서만 생존하는 인물인가?

 

이 영화는 관객들이 어떤 취향인지를 철저히 계산해서 만든 영화이다.

감독은 꽤 머리좋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주인공 란초를 사랑하는 여인도 그의 무한한 스마트함 때문에 그를 사랑하게  만들고

감독은 인간의 명민함에서 오는 매력을 최우선으로 두었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영화 `세`얼간이`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머리 좋은 사람은 냉정하다는 미신이 있다.

주인공 란초를 보면 머리가 좋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선량하고 따뜻한 마음이

아름다운 자기 세계를 지켜주는 최고의 선(善)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의 친구에 대한 사랑, 하인에 대한 사랑,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세 얼간이`는 흔히 말하는  예술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호응 못 받는 예술영화보다 여운을 주는 오락영화가 질 떨어진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사족을 좀 더 쓰자.

그나저나 기억력 때문에 큰일이다. 인도영화를 보면서 인도 사람 중 멋진 사람이 누구더라 연상하며 한  지휘자가 떠올랐는데,

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다가 정확히 다섯시간 후에 생각해낸 이름 `주빈 메타`(아! 갑갑했던 다섯 시간)

 소싯적엔  육년 동안 본 영화의 제목, 남녀 주인공 모두 차례차례 떠올랐었는데 이제 어제한 일도 가물가물하니

이름을 빨리 생각해내지 못하는 일은 너무 당연한 일 오! 통재라.  

 

결혼식 장면을 보면서 인도 여행 중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  거행된  결혼식에  

인도 의상까지 사입고   불청객으로 참석했던 추억도 고스란히 돌이킬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미 그때 인도인이 엄청 머리 좋은 민족임을  도처에서  발견했었다.

 

부랴부랴  오전 8시 30분에 영화 보러 가기도 신기록이다 ㅎㅎㅎ

꼭 보세요.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