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뭐든 올리라는 명옥이의 우정어린 협박에(?) 아주 예전에 쓴 글하나 옮겨본다.

니들 웃고 즐거우라고......


지금은 시대가 좋아 이런일은 없으리라.

1980년 여름.....

간첩에대한 소양교육을 받고서야 미국행에 오를수있던 시절였다.

그당시는 유학생이 드물던 시절였기에 모든것이 두려웠는데

그런 으시시한 교육까지 받고나니 마치 적들이 득실대는 곳으로 가는 기분였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보편화 되지 않아서 모든 정보가 어두웠다.

머리 뽀굴뽀글 퍼머하고 떠나던 일이 생각난다.

가서 말못해서 머리 못할까봐서....ㅎㅎㅎ

 

막상 도착하니 말못하는것보다는 금전적으로 힘들었다.

그당시는 달러를 일인당 가져갈수 있는 금액설정이 매우 적어서 유학생이면 누구나 궁핍하게 살아야했다.

 

 

남편은 늘 나의 머리를 퍼머해주고 나는 남편의 머리를 깎아주어야하는 운명(?)였다.

나야 남편의 머리를 나중에는 면도칼 하나로 10분이면 깎는 도사가되었고

급기야는 동네 유학생들 머리까지 뻥뻥 잘라주게 까지 기술리 늘었다.

그래서 동네 아저씨들 머리모양이 거의 다 같은 스타일였다.ㅎㅎ

 

문제는 남편이 내머리를 퍼머해줄때의 풍경.

남편은 힘들다며 담배 피워가며.....맥주 마셔가며 퍼머를 진행한다.

머리를 이끄댕이 저끄댕이 두리뭉실 잡아서 대충 말아주는데 어찌나 따갑던지....ㅎㅎ

좀 잘하라고 잔소리하고 찡그리고....급기야는 팔자타령까지한다.

"미국까지 와서 남편한테 머리 디밀고 퍼머해달라는 내가 미쳤지...."

"여보야~나도 마누라 머리 퍼머해주는 팔자니 아퍼도 좀 참아라~"

 

머리를 감고나서 거울을 본다.

우메~~~뽀글뽀글도 이런 뽀글이는 없다.

거기다가 부시시하기까지!

내가 다시는 당신한테 머리 하나 봐라! ...하며 결심하지만

유학시절 내내 나는 남편에게 머리를 들이댔고 나는 남편의 머리를 깍았다.

 

남편이 학위를 받고난후 그때 처음으로 미장원에 갔는데.....

예약제라 방에는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는 대충 의사 소통도 할때라 그럭저럭 머리를 했는데.....

2달러로 해결하던 머리를 자그만치 50달러에 팁까지해서 57달러를 지불.

그래두 마치 여왕이된듯 기분이 좋았다.

 

남편에게 머리를 디밀고 퍼머를 하던 일을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풍경들였지만

그시절엔 누구나가 다들 그렇게 살았었다.

그래서 더욱 똘똘 뭉쳐서들 살았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시대의 유학생들이 알면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 이야기인듯 싶으리라.

허지만  우리보다 좀 일찍 유학온 선배들은 더욱 고생했었다.

200달러 이상은 갖고갈수없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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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해준 라면머리..인증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