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가자 설국이었다`로 시작되는 소설 설국(가와바다 야스나리 作)처럼 터널을 벗어나자 펼쳐지는 눈의 세상을 보고 불현듯 느닷없다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느닷없다`,사전적 의미는 `(아무런 예상을 할 수 없었던 일이)뜻밖이고 갑작스럽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느닷없음에 대해 여행 내내 생각하게 해준 `느닷없다`는

 이번 여행의 키워드로 등장했다.

첫날 갑자기 설국이 나타난 것처럼  이튿날 니이가타로 가는 길에서는 다시 눈 한꼬치도 없는 벌판이 나타났다.
행여 잠시 졸아 눈 경치가 슬슬 사라지는 모습을 놓치고만 것이 아닌가 목을 빼 돌아봤지만,

 역시, 설원 끝 벌판 시작이었다.
아니 어째 이런 일이...모 아니면 도,혹은 도 아니면 모.
모든 것에 기승전결의 순차가 얼마나 느닷없음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되는지 깨달았다.

그러나 느닷없었던 죽음-弟夫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늘 염두에 둔 것처럼  살던 사람.
그래서 겸손함,배려,편안함,잠잠함...이런 단어들이 연상되어지던 좋은 이였다 그는.
 변화 적응력이 낙제점인 나같은 사람에게 동생부부의 느닷없는 이별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달리는 버스의 속도감과 내가 감지하는 시간의 흐름이 닮아 있었다.
 휙휙 지나가는 소리가 시간의 소리같은 환각이 왔다.
눈벌판에 드믄드믄 뭉터기져 있는 눈더미들은 시간의 집합체인 세월의 한 흔적 같았다.
빠르기만한 시간들을 감당하기에 너무 느리기만한 나의 머리 용량과 꿈뜬 행동거지.
이 반비례의 고약함에 적응하기가 힘들기만하다.

느닷없이 당할지도 모르는 그 뭔가에도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싶음도
 내 나이에는 욕심에 속하는 것일까? 
잘 살고 잘 죽고,잘 살고 잘 죽고......는 모든 이들의 희원.
행복하고 불행하고,행복하고 불행하고...자기점검을 통한 행불행과 남이 봐주는 그것은 다르다.
`사람이 꼭 행복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라고 쓴 어느작가,

그도 아마 행복하기 위한 인간들의 집착이 미워보여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순백의 한가지 색깔 때문이었을까 그저 담백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설국`의 주제는 `어떤 특정된 순간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있는 인간 생명의 각 순간을 이어가는 순수지속이다
순수는 변함없이 좋아하는 나의 낱말이다.순수지속에 집착한 시간이 무릇 기하던가?
 그것을 좋아하는 만큼의 반작용 때문에 받은 크고 작은 상처들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한없이 펼쳐져 있는 눈의 세상을 보며 순수함에 기준해 타인을 재단해오던  버릇이 이제 좀 지지지긋해졌다.
눈(雪)에 가리워져 있는 것들이 참일까 거짓일까를 가리는 우매한  태도까지도.
보여지는 모습이 아름다움이라면 그뿐,예민한 촉각을 동원한 느낌의 재생산까지는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을.

K가 생각났다.학교 한참 후배인데 다양한 컬러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포용하는 그녀.
 인간은 불쌍하다는 대전제를 잊지 않고 살기 때문일까? 
너무 야릇해 보이는  사람들도 그녀와 어울리면 한가닥 진심을 비추고 싶어한다.
그녀는 넓은 벌판을 덮은 눈의 이미지와 닮았다. 

역시 여행의 시간은 유익한 것인가 . 각성의 시간까지  누리게  하다니...
시간 밖의 시간의 여유로움을 좋아하는 한 나의 여행은 계속될 것 같다.

 

 

 

 

* 두어해 전에 끄적인 것을 이제야 올립니다.

 마침 겨울이고,게시판도 썰렁했고(올리려고 들어왔더니 인기척이 있긴하네...ㅋ)

마음 잡은 길에 그냥 올려버립니다. 플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