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가을 냄새가 짙어 가는구나. 유수와 같은 세월 이라더니  이젠 인생의 황온녘에서 가는 세월만 지켜 보는 나이가 된것 같아.

<한국인 문학>가을 호에 실린 외손자 민우의 <마이크>를 실려 본다. 같이 읽으면서 잠시 웃어 보자꾸나.

 

마이

  

외손자 민우가 태어난지 어느덧 백일이 지났다. 백일이 지나면서 민우는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4개월이 되면서 뒤집기 시작 하더니 5개월 이 되자 기기 시작했다. 그 모양이 애벌레처럼 엉덩이를 높이 쳐들면서 앞으로 조금씩 나갔다. 꿈틀대면서 기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우스운지 딸과 나는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았다. 생각만큼 잘 되지 않으면 민우는 옆으로 픽 쓰러졌다. 그러다가 다시 뒤집고 또 기기를 반복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기는 열심히 기기를 시도했다. 그러다 무엇이든 보이는 대로 집어 입에 넣고 빨았다. 아무리 젖병을 삶고 깨끗하게 위생적으로 키우려 해도 아기의 끝없는 관심은 가는 곳마다 막지를 못했다. 바닥에 떨어진 전기줄, 콘센트, 청소기, 실내화, 보이는 것마다 아기는 집어서 입으로 넣으려 했다. 잠시라도 눈을 때면 금방 사고 나기 일수 였다. 아기 장난감 같은 것은 관심도 없고 일반 사물에만 유난히 집착을 보였다.

 

“이담에 연구가가 되려나봐. 왜 이렇게 이런 물건에 관심이 많지.”

 

아기 주변에 있는 잡다한 물건들을 조금 높은 곳에 올려놓으며 딸은 아기 물건으로 가득 찬 거실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조금이라도 아기 손에 닿지 않게 하려고 모든 물건을 치우느라고 바빴다.

 

 

5개월부터 이유식을 해도 될 것 같아 사과를 즙내고 여러 가지 야채와 쇠고기 그리고 쌀가루를 섞어 미음을 끓여서 먹이기 시작했다. 아기 보기만도 바쁜데 이유식까지 해먹이려면 힘들겠다고 깔끔하게 요리를 잘 하시는 안사돈께서 고맙게도 천연재료로 만든 이유식을 주말마다 보내주셨다. 생전 처음 먹는 음식을 먹을 때 마다 민우의 표정은 여러 가지였다. 처음엔 입을 조금 벌리고 음미하다가 입에 맞으면 춤을 추듯이 입을 짝 벌리며 받아먹었다. 어쩌다 별로 맛이 없으면 고개를 푹 숙이며 딴전을 피웠다. 민우는 친할머니가 보내주신 이유식을 특히 잘 먹었다.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도 대견하고 기특하다.

애벌레처럼 기던 모습이 차차 배를 밀면서 제대로 기기 시작했다. 두 손을 뻗으며 배를 대고 무릎으로 기기 시작 하더니 물건을 잡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길 때만 해도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일어나기 시작 하더니 사고가 끝이지 않았다. 큰 매트를 사서 바닥에 깔았어도 아기가 대책 없이 미끄러지거나 잡은 물건에서 손이라도 때면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넘어 갈 듯이 우는 아기가 다치지나 않았는지 딸과 나는 혼비백산 하였고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매번 잘 넘어갔다. 나는 딸만 둘이라 아들을 키워 본적이 없어 많이 혼란스러웠다. 딸들은 한자리에 앉아 장난감과 인형을 가지고 잘 놀았는데 아들은 딸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많았다. 얼마나 보시락 대고 극성스러운지 잠시라도 한 눈 팔면 꼭 사고가 났다. 아들 키우기가 딸 키우는 것보다 몇 배 힘들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담에 아들 엄마가 큰소리치는 것 같다는 말도.

보행기를 사주자 조금은 여유시간이 생겼다. 처음에는 운전을 잘못해 뒤로만 가더니 금방 앞뒤 좌우로 잘 끌고 다녔다. 그러더니 한번은 식탁위의 커피포트 줄을 잡아 당겨 눈 밑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물이 뜨겁지 않아 큰 사고는 면했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뻔 하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더니 그제야 테이프로 줄들을 다 늘어지지 않게 고정시켰다. 설마 그렇게 세게 아기가 줄을 잡아당기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잘 때의 얼굴은 천사처럼 새근새근 자고 있지만 깨어나서의 아기는 마치 폭군이라도 되는 듯 모든 기물을 부시고 다녔다. 그렇다고 야단칠 수도 없고 어쨌건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6개월이 되자 아랫니 두 개가 올라왔다. 내손을 잡아 깨물어 만져보니 아랫니 두 개가 보였다.

“벌써 이빨이 났네. 어쩜 이렇게 순서대로 잘 클까.”

하나도 안 빼먹고 성장하는 민우가 신기해 딸과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며칠 전엔 마지막 예방 주사도 무사히 다 끝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저지레는 수도 없이 하지만 그래도 무럭무럭 커주는 민우가 너무 대견하고 예쁘다.

7개월이 되면서 민우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이 생겼다. 대책 없이 넘어져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에 머리를 찢더니 이제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우리는 그 모습이 신기해 ‘쟤 좀 봐, 자기도 꽝하면 아프니까 이제 꼼수 부리네.’ 하면서 웃었다. 그러면 자기도 돌아보면서 만족한지 싱긋 웃었다. 요를 들고 다니며 아기가 가는 곳마다 밑에 대주던 수고는 이제 한숨 돌리게 됐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두 손을 마주치며 짝짜꿍을 하더니 얼마 후부터는 손을 오므렸다 풀었다 하면서 잼잼을 했다. 우리가 같이 하면 더 신나서 손뼉을 쳤다. 어쩌면 하나도 안 빼먹고 순서대로 재롱을 떠는지 그저 기특하기만 하다. 도리도리를 가르쳤더니 아직은 머리 무게가 감당이 안되는지 바라보면서 웃기만 했다. 어느 날은 보행기에 태우고 딴 일을 하다 보니 보행기만 있고 아기가 보이지 않았다. 놀라 소리를 질렀더니 방에서 기어 나왔다. 딸에게 네가 꺼내 주었니 했더니 아니라고 해서 우리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아기를 다시 보행기에 태우고 모르는 척 지켜보았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기는 두 발을 살살 올려 온몸을 들어 올리며 보행기에서 탈출을 했다. 그러더니 다시 보행기에 올라타기를 시도했다.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아기는 자기 나름으로 보행기를 오르고 내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딸과 나는 아기의 그 당찬 발전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남자 아이라 그런지 모험심이 강했고 벌써부터 머리 회전이 남달랐다. 임산부 체조교실에서 만난 애기엄마가 민우가 보고 싶다고 애기 데리고 놀러 오겠다고 해 오라고 했더니 그날 이후 민우는 심한 감기에 걸렸다. 고열에 기침에 콧물까지. 나중에 알고 보니 놀러왔던 아기가 감기가 심해 중이염까지 앓고 다 나아서 나들이 온 것이었다. 감기는 끝물에 꼭 전염성이 강하다 하더니 꼼짝없이 앓고 있는 민우를 보며 후회를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바람에 딸과 나도 전염이 되어 온통 감기로 며칠을 힘들게 보냈다. 감기 걸린 지 확인 하는 일도 겨울엔 꼭 필요한일 같다.

이제는 조금씩 의사 표현을 하기도 한다. 배가 고프면 맘마라고 계속 중얼거리며 기어 다닌다. 우유를 타서 흔들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쏜살 같이 기어왔다. 요즘 들어 우유병을 두 손으로 부둥켜안고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대견 할 수가 없다.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다 먹고 나면 우유병을 흔들고 놀다가 건네줄 때는 정말 너무 기특하고 예뻐서 두 팔 높이 들어 올려 몇 번이고 흔들어 준다. 그럴 때면 까르륵 웃는 민우의 얼굴은 천사가 따로 없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민우와의 하루는 지루할 시간이 없다. 이제는 엎드려서 제법 책도 잘 본다. 한 장 한 장 들치며 열심히 본다. 그러면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혼자 지절거린다.‘이지 브지지그지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소리를 한참 지절대면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외계인이라면 알아들을까 무슨 말을 하는지 우리는 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고 저지레는 가끔 하지만 그것마저 그림처럼 예쁘다.

 

 

이제 8개월. 아직 걷지도 못하고 말은 못하지만 민우와 나는 어설픈 대화와 눈빛으로 모든 의사소통을 한다. 표정을 보면 아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안다. 가끔가다 민우는 두 손을 높이 들고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소리를 지른다. ‘아아아 아아아’ 그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진다. 그러면 나도 같이 소리 지른다 ‘아아아 아아아’ 눈을 마주 보며 한참을 소리 지른 뒤 우리는 마주 보며 웃는다.

곰 세마리 노래를 불러주면 손뼉을 치면서 웃는다. 그리곤 아아하며 같이 따라 부른다. 섬마을 아기를 부르면 민우의 눈은 슬퍼진다. 손뼉도 치지 않고 따라 부르지도 않는다. 그러다 다시 반짝 반짝 작은 별 노래를 부르면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는다. 무엇을 알아듣는 듯 유난히 노래를 좋아한다. 그것도 딸과 내가 같이 부를 때 제일 좋아한다. 빨리 말을 했으면 좋겠다. 노래 부르는 모습이 얼마나 예쁠지. 하루에 5번 우유를 먹는 민우. 가끔 이유식을 같이 곁들여 먹는다. 제일 좋아 하는 것은 아기 치즈다 하루에 두 장도 거뜬히 먹는다. 조금씩 뜯어 입에 넣어 주면 오물오물 잘도 받아먹는다. 바쁜 딸 대신 민우를 돌보면서 많은 생활의 변화가 생겼다. 웬만한 일보다 민우와 지내는 시간이 더 즐겁다. 목욕을 시켜 저녁에 새옷을 갈아 입히고 잠재우고 나면 하루의 일과가 그제야 끝난 듯 나도 내 침대로 향한다. 아무리 힘들고 고되어도 그렇게 흐뭇 할 수가 없다. 내일 아침 민우를 만날 생각에 서둘러 잠을 청한다. ‘민우야 잘자라, 꿈속에서 만나자’

 

 

9개월의 민우는 많은 변화를 보였다. 소파에서 내려 올 땐 엉덩이를 뒤로 돌려 한쪽발을 내리고 또 한쪽발을 내밀며 사뿐히 내려 왔다. 자신도 신기 한지 내려와선 주위를 둘러 보며 손뼉을 쳤다. 그 표정은 사뭇 자신만만한 개선장군의 모습이다. “아이구 우리 민우 잘도 내려 오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해” 하면서 칭찬을 해주면 또 다시 소파위로 기어 올라가서 씩 웃는다. 그런데 너무 자신 만만한 나머지 높은 침대에서 똑같이 하다가 고꾸라져서 머리를 찧는 불상사가 났다. 민우는 많이 아픈지 주먹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 높여 울고 달래느라 한참을 애를 먹기도 했다. 항시 눈을 땔 수없는 상황에서 매일매일이 전쟁터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 쓸어내리는 일이 발생 하곤 했다. 옛날에 딸 둘을 어떻게 길렀는지 이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없는 상태에서 민우를 돌보는 일은 날이 지날수록 힘이 들었다. 그래도 그 자체가 힘든 줄 모르고 대견하고 기특하기만 하다. 어느 날 보니 윗니 두 개가 나와 있었다. 나온 기념인지 히죽 웃더니 갑자기 달려 들어 내 넙적다리를 물어 그 상처가 아직도 훈장처럼 남아 있다.

 

 

10개월이 되자 혼자 벌떡 일어났다. 걷지는 못하지만 한참을 서 있는 모습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11개월이 지나면서 한 두 발자국씩 때기 시작했고 차츰 차츰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다가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열심히 혼자서 노력하는 모습은 아기지만 무언가 불굴의 의지도 엿보였다.

탈도 많고 사건도 많았지만 오늘은 민우의 돌잔치 날이다. 5개월 전에 예약한 파티장은 가족과 친척, 지인들로 가득 찼고 한복을 차려입은 민우는 돌상을 받고 의젓하게 앉아 사진 찍기에 바쁘다. 모두의 관심 속에 돌 잔치의 하이라이트 무엇을 집는지 기대하는 시간이 되었다. 엄마 아빠는 부자가 되라고 돈이 제일 좋겠다고 했지만 야속하게도 민우는 마이크를 잡아서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사회자가 이 다음에 연예인이 될 모양이라고 축하의 멘트를 던져서 또 한 번 민우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최민우! 이제 너의 나이 한 살. 조금 전 촛불 한 개 켜고 생일 축하 노래 부르고 너를 보러온 모든 사람들이 축배의 잔을 들었단다. 우리 모두 너의 성장을 지켜보며 네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맑은 웃음의 너를 보면 세상 모든 시름도 다 사라진단다. 우리 아가! 험한 이 세상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가길 바란다. 너를 사랑하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조용히 지켜볼거야.

 

최민우 너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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