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온 이튿날 일어나자 마자 앞치마를 갖춰 입었다.

부지런해져야겠다는 여행 중 다짐을 실천해보려고 차림새부터 챙기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더 이상 부지런할 수없는 한 친구를 만났기 때문이다.

사흘동안 그 친구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니 게으름은 번뇌를 양산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무조건 일단 Do it! 하자 뭐 이런 결심이 스멀스멀 ㅎㅎ

 

 

이번 여행은 전철을 자주 이용했음으로  일본 사람들의 표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예전 우리 일행만 타고 다녔던 버스에서 보던 창밖의 그들보다 분명 더 리얼리티가 있다.

위에서는 신사 참배니 독도문제니 위안부문제니 우리 비위를 거슬리는 사건도 많이 있지만

 보통사람들의 삶은 우리와 뭐가 크게 다를까.까르르 웃으며 재잘거리는 소녀들,유모차에 탄 아기,조용히 걸어다니는 노인들.그들을 보며 비위 상할 일은 없었다.

 

얼마 전 와다나베라는 은퇴한 영문과 교수가 쓴 `지적으로 나이드는 법`을 읽었다.

같은 시기에 읽은 우리나라 모교수의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쓴 책보다 훨씬 필(feel)을 주는 책이었다.

하꼬네 산 중턱에 있는 조각공원을 갔을 때 갑자기 그 책이 떠오른 까닭은

문화에 대한 그들의 보다 강한 열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조각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여기 저기 산재한  헨리무어의 작품들을 보며 속물스럽게도  시가가 얼마인데 이렇게 많은 작품을 모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조각공원은 어느 신문사 소유라 한다.

 앙코르 왓 여행 때 가이드에게 물었다.

"캄보디아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람이 누구예요?"

가이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폴 포트`라 대답한다. 아니 몇백만을 학살한 주범인 그 폴 포트 라고?

그렇다면 그 다음 알려진 사람은 `키우 삼판` 쯤 되겠네... 생각하니 기가 막혔던 기억이 난다.

앙코르 왓 이란 천년 전의 찬란한 문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캄보디아,

문화를 계승 유지 못하는 민족은 없어 보여서  깔보임을 당한다.

지난 소치 올림픽 개막식에서,

 알파뱃 순서대로 자랑할 예술가가 있는 러시아가 얼마나 멋져보였는지 모른다.

북경 올림픽 때도 공자의 논어를 앞세워 전세계인에게 그들의 유구한 역사를 뽐내지 않았던가

지구촌이라는 거대한 문화권에 낙후된 민족으로 우리나라가 분류된다면  너무 싫을 것 같다.

신문사가 소유한 거대한 조각공원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일본의 부러운 한 면이다.

 

 

친구는 천엽(千葉)에 살고 있었다.

천엽은 천개의 나뭇잎을 뜻할까 아니면 천가지 나무를 뜻할까?

아무튼 무슨 뜻이던 문학적인 향기가 나는 이름이다.

30년 사는 동네 이름이 최근 마장로라고 바뀌었다.산곡동이라 했을 때도 뭔가 미흡했는데

바뀐 마장로보다는 훨 나은 것 같다.작명한 이들의 센스에 다만 씁쓸할 뿐.

나같이 이름을 따지는 이는 아마도 이름이 향기로운 동네로 이사가야할 모양이다.

단 동네 이름을 바꾸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말이다 ㅋ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편안한 나이란  공통분모를 가진  같이 여행한 친구들.

같이 온천욕을 하며 함께 학창시절에 S클럽을 지적질했으며 깔깔거리며 바닷가를 거닐었다.

잘못탄 전철에서도  당황하기는 커녕 새로운 경험이다고  재미있어하며

 한자로 쓴 경로를 꼼꼼히 살펴서 얼른 기리까이.


A는 무지 깔끔하고 공정하다

B는 은근한 마음씀이 훌륭하다 

C는 웃는 입매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D는 유모 감각이 뛰어나다

E는 이 나이에도 사랑스럽다(  남편의 사랑을 무쟈게  받은 듯)

F는 아주 명랑해서 주위를 밝게한다

G는 전형적인 인일인(이 이미지는 긍정적으로 여러분이 그려보시라)


좋은 점이 얼른 눈에 띄는 친구들과의 여행보다 더 좋은 여행이 있을까? 

가치관이 뭐니뭐니 해도 결국은 인본주의로 귀의하게 되나니......

사람에게서 받는 감동이 가장 크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리고,나만 유독  물귀신 심보인가  같이 늙어가는 동창들이 있어 참으로  위로가 된다.

 

 

 ps...사진은  5회 포토  갤러리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