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내가 쓴 수필이 월간문학 5월호에 나왔단다.

여기에 전문을 실어본다.

 

우리 다 할머니쟎니? 같이 읽어봐주렴

 

 

외손자

 

호두가 세상으로 나왔다. 호두는 외손자의 태명이다.

밤새 진통으로 산고를 겪는 딸을 사위에게 맡기고 늦은 밤 귀가해서 아침에 사위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조금 전에 제왕절개 했어요. 아기가 커서 도저히 순산은 힘들대요. 산모, 아기 다 건강해요.”

핸드폰엔 외손자의 갓 태어난 모습이 전송되어 있었다. 방금 목욕을 끝낸 듯 아기가 눈을 뜨고 입을 조금 벌린 채 강보에 싸인 모습이었다. 신생아인데도 또렷한 이목구비가 선명했다. 조금 있으면 신생아 면회 시간이라 늦으면 4시간을 기다려야 볼 수 있다 하여 부지런히 대충 차려입고 택시를 타고 갔다. 산모 대기실엔 벌써 시댁식구들이 와 계셨다.

“산모 아기 다 건강하데요. 너무 고마운 일이죠.”

안사돈이 내 손을 잡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무사히 손자가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아직 산모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해 보지 못하고 신생아실로 갔다. 유리문 뒤로 신생아들이 강보에 싸인 채 작은 침대위에 누워 있었다. 여기저기 먼저 온 산모 가족들이 아기를 보면서 감격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번호표를 내밀자 간호사가 그 중의 한 침대를 창가로 밀고 왔다. 꼭 다문 눈과 꼭 다문 입, 조막만한 얼굴이 보였다. 무엇이 그리 고단한지 아기는 푹 잠들어 있었다. 이제 세상에 나온 지 몇 시간 되지 않은 손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눈가에 갑자기 눈물이 맺히며 반가움에 창가에 닿은 손이 가볍게 떨렸다.

“반갑다 아기야. 네가 내 손자니. 너무 예쁘구나.”

만질 순 없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여러 식구가 한곳에서 아기를 보려니 일단 가까이서 보고난 사람이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30분간의 짧은 면회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4시간 후에 오세요.”

간호사가 창의 커튼을 드리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대기실로 가니 딸이 마취에서 깨어나 있었다.

“엄마 애기 봤어?”

“그럼 꼭 너 닮았더라. 너무 예뻐.”

“정말.”

아픔도 잊은 채 딸은 아기가 궁금한지 이것저것 물었다.

“아직 안아도 못 봤어. 입원실 정해지면 데려다 준대.”

내가 딸아이를 낳았을 때가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조그맣고 앙증맞은 모습에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그 감격이 오늘 또 그대로 전해왔다.

입원실을 정하고 아기가 방으로 왔을 때 안사돈과 나는 서로 아기를 안아보며 천사 같은 아기의 얼굴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4.5kg의 아기는 넓은 이마와 알맞은 코와 조그만 입이 잘 어울리는 환상적인 외모였다. 유난히 배가 불러 엄마를 힘들게 하더니 이렇게 잘생긴 놈이 나올 줄이야.

산후 조리원에서 보름을 보낸 뒤 딸이 아기와 같이 친정으로 왔을 때 나는 새 식구 맞기에 분주 했다. 미역과 다시마, 사태고기를 준비하고 아기가 편히 지낼 수 있게 딸이 쓰던 방을 깨끗이 정리했다. 결혼이 늦어 걱정 했더니 바로 임신이 되는 바람에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1년도 되지 않아 이렇게 안고 오다니. 조심조심 사위가 아기를 침대위에 눕혔다. 아기로 인해 갑자기 온 집안이 성스러워 진듯했다. 모두 조심스럽게 아기를 들여다보면서 아기의 신비스러울 만큼 귀한 모습에 넋이 나간 듯 했다.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하루에 한 번씩 애기 욕조에서 목욕을 시키고 부숴 질까 날아갈까 꺼질까 아기를 돌볼 때마다 딸과 나는 혹시라도 실수 할까봐 조심에 조심을 더했다. 두 주먹을 꼭 쥐고 미끄러질까봐 아기는 우리가 목욕을 시키는 동안 동그랗게 눈을 뜨고 다리에 힘을 준채 나름으로 긴장한 듯 목욕이 끝날 때 까지 잘 버티었다.

조그만 입으로 우유를 열심히 먹을 때나 어린 것이 큰일을 볼 때면 두 손을 꼭 쥐고 인상을 쓰며 힘을 줄때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우리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옛날과 달리 1회용 기저귀를 쓰니 신생아가 와 있어도 일거리가 많지 않았다. 딸도 미역국에 해주는 반찬을 골고루 잘 먹어서 회복이 빨랐다. 보름 후 아기 예방 접종 때문에 딸이 서울로 가야했을 때 사람을 구하느니 내가 당분간 아기를 돌보기로 했다.

처음엔 눈이 안 보이는지 초점 없이 먹고 자고만 연속이더니 차츰 깨어 있는 시간이 늘면서 방긋 웃기도 하고 기지개를 펴는지 온 얼굴을 찡그리며 두 팔을 높이 들고 두 다리를 쭉 뻗기도 했다. 옹알이도 늘고 배가 고프면 입을 삐죽이다 갑자기 큰소리로 응애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하는 짓마다 너무 귀엽고 예뻐서 ‘아이고 요 녀석 예쁘기도 하지’ 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아기도 귀여움을 받는걸 아는지 뺨을 부비면 생글생글 웃었다. 딸이 작명소에 가서 민우란 이름을 받아왔다. 왠지 낯설지 않고 아기의 분위기와 어울려 모두 찬성을 했다. 작명가가 평생을 순탄하게 살 운명이라 하니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내가 성이 안 씨고 남편이 강 씨라 우스갯소리로 사위가 최 씨면 안, 강, 최가 다 모여 아기 고집이 볼만 하겠다 했더니 말이 씨가 됐는지 사위가 최 씨라 했을 때 우리는 정말 큰소리로 웃었다. 민우의 백일 날 양가만 모여 조촐한 백일잔치를 벌였다. 케이크를 자르고 사진을 찍고 민우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잠이 들고 오랜만에 만난 사돈끼리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어쩜 애기가 이렇게 의젓하고 잘생겼는지 정말 이건 축복이에요.”

민우의 천사 같은 얼굴에서 안사돈과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새근새근 잠이든 민우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왠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앞으로 살아갈 험한 세상을 민우가 잘 견디어 나가길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민우야 세상에 태어나 주어서 고맙고 내 손자로 태어나 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나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