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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친구 S와 나누고 싶은 여행이야기

 

8월 어느 날 선배가 몽골 바이칼 여행상품이 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나고 청했어.

몽골보다는 바이칼이라는 지명에 혹해 무작정 따라나셨단다.

바이칼이라 하면 춘원 소설 `유정`에 나오는, 눈쌓인 시베리아 벌판이 떠오르는 추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곳.

아직 불현듯 저질르는 행동이 우러난다는 건 젊음의 그림자 정도는 한자락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혹은 광기(狂氣). 

 

몽골의 울란바트로 징기스칸 공항은 인천공항에서 불과 3시간여 남짓이더구나.

우리와 대동소이한  그들의 외모.그러나 명색이 수도인데 아직은 경제적으로 갈길이 멀기만 해 보였다.

흐린 날씨 때문이었을까 끝없는 초원은 황폐하기만 했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무의 숫자를 쉽게 셀 수 있을 정도로 산에 나무가 없더라구.

 천막집 게르에서 하룻 밤 잤는데  연일 흐린 날씨여서

그곳에서 꼭 봐야한다는  쏟아지는 별들은 보지 못해서 크게 아쉽더라.

게르는 한사람이 누우면 꽉차는 침상 세개가 (양쪽으로 한개씩 있고 윗쪽에  또 하나가 가로로 위치해 있다)있고 

 양쪽 침상 사이에 장작을 때는 난로가 있어 장작을 때주니  추위(밤이 되니 춥더라구)에 오그라들었던 몸이 쭈욱 펴지며 나른한 행복.아마 이런 느낌이 `우리가 사랑한 일초들`(곽재구 산문집 제목)에 속하는 것일거야.

 

유럽까지 영토를 넓혔다는 징기스칸.

한 때 잠시 세계 최고 국가였다는데 왕년에 가졌던 영화가 이어지지 않은 처량함을 무엇에 비유할까?

몽골에 자원이 무궁무진하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뻔한 걸 물었다.

경제 효과의 파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 같네요

녜 위정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나랏돈을 지들이 다 가져요 그래서 국민은 못삽니다.

아 그렇군요 몽골인 모두 잘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진심으로 말했어.

 

몽골인 90프로가 믿는다는 라마교(티벳 불교) 사원에서 불경을 읽는 스님들을 보는 것도 관광 코스더라.

독경하는 그들의 표정을 봤더니 살풋 민망한 마음이 들었어.

사실 그들이 구경거리가 됐는데 뭔 엄숙함과 경건함이 자리잡을 구석이 있었겠니.

몽골에서 마지막으로 민속공연을 보았는데 그들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 대견하면서도 뭉클했어.

멀리 있는 말,소,양을 부를 때 부르는 노래는 발성 자체가 특이하더라구.

 

징기스칸 공항에서 러시아 이르쿠츠크로 떠나는 비행기는 몽골 항공이라 내심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기내가 참 깨끗하고 아늑했어.게다가 승무원 아가씨들은 어찌나 예쁘던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더라.

그런데 실은 아쉬움이 컸었댔어. 왜냐면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일부 구간을 기차로 25시간 달릴 수 있다는 애초 일정이 비행기로 바뀐 거였거든.

왜 우리 젊은 시절 본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기차를 꼭 한번 타보고 싶어했었잖어.

정말 괜히 말야.

 

젊은 시절이라구?

 나는 최근 내가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고 살았더구나.

그런데 이번 여행은 참으로 각별한 체험을 했어.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일행을 기다리는데 시간이 꽤 걸리더라구.하릴없이 일행이 누굴까 둘러보는데 눈에 띈 한 부부. 내외가 안경을 썼으며... 초로부부가 왔구먼 생각하며 언제나 다 모이나 앉아서 기다려야지 하며 의자에 앉았어.

그 부부도 다리가 아픈지 우리가 앉은 의자 곁으로 오는거야.

낯이 익은 여인, 어머 혹 오**샘 아니예요? 그녀도 나를 보았어 어머 임**

세상에나  32년만에 초임지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를 만난거야.

그 다음부터는 둘이서 과거 시간 맞춰보기.

아무개, 아무개,아무개... 둘이 같이 생각나는 아무개 들의 얘기로 한껏 젊어진 기분이 들었어.

임샘은 기억력이 참 좋구나.나 왈 오샘 덕분이야.추억의 실마리를 그대가 풀어 준거지.

30년 별 거 아니네 이렇다 하게 말할 꺼리가 없네 그려.

순간 특별히 방점 찍을 곳이 없는 별 굴곡없는 밋밋한 인생살이가 너무도 심심하게 아니 한심하게 느껴졌어.

한편 이렇다 내세울 건 없지만 평범하게 사는 게 뭐 어때 하는 양가 감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야.

그녀도 나와 비스므레하게 살아온 모양.여행지에서 그녀를 볼 때마다 젊은 한 때 풍경이 떠올라 좋았단다.

그시절 입었던 옷 특히 E여대 앞 양장점에서 맞춘 호리낭창하게 보였던 연두색 원피스,

잔잔한 꽃무늬가 큐트해 보인  A라인 스카트였던  투피스.

그녀의 생머리도 기억에 떠올랐어.아! 내게도 청춘이 있었구나 ㅎㅎ.

 

이르쿠츠크,  러시아 동남단에 있는 작은 도시였어.모스크바나 페테스부르크를 가봤기 때문인지 이르쿠츠크를 보고 새로운 감흥이 일어나지는 않았어.  그렇지만 350년 전통을 가진 도시란다.

아침에 눈을 뜨니 창밖으로 학교 같은 건물이 보였어.

머리를 양갈래로 총총 땋아내린 흰칼라 있는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다닐 것 같은 학교.

마리아,올가,쏘냐,나타샤...

우리 원스 어펀어 타임, 등장 인물 이름도 생소하고 긴 러시아 소설들을 애써 꽤나 읽었었잖아.

우리 때는 음악도 서양 것만 거의 들었었지.고전음악도 베토벤부터 듣기 시작해서 범위를 넓혀갔는데 그것들은 꼭 치뤄내야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지.작곡가와 제목의 짝짓기 놀음에 심각했던 시절.

몰라도 되고 알아도 되는 것을 기준으로 교양을 재려했던 단순한 색깔의 청춘,

삶이 그렇게도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유추하지도 못했었다. 

 

가져간 엠피쓰리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시집을 읽었다.

`낯선 나라 호텔방 들고온 가방 하나가 나의 혈육`이라는 싯귀...얼마나 맞는 말인지......

`나는 돌같은 인간이다`,`나는 홀로 유파(流派)이다`,`돈독이 시퍼런 서울을 떠나...`이런 시 언어들이 눈길을 끈다.

어줍잖은 리더 뒤에 선 어리석은  파(派)들보다 홀로 유파는 얼마나 자유롭고 멋지겠니?

알게 모르게 들어버린 돈독을 빼러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생뚱맞은 생각이 드는 것도 여행지에서 읽는 시였기 때문이리라.

S 너처럼 한결같이 무욕(無慾)으로 사는 사람은 돈독이 얼마나 해로운지 모를 것이다.

 

리스트비안카에 있는 딸지 민속촌에서 본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에 홀려지는 향수어린 마음을 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자작나무는 전생에 고향마을에 둘러져 있던 나무가 아니었을까

앙가라강과 만나는 바이칼 호수에서 바이칼 맛뵈기 유람선을 탔어. 웬 젊은 여인이 바람을 맞으며 뱃머리에 서 있었어.

러시아인이세요?(왠지 러시아인 같지 않았거든)

아니요 프랑스 사람이에요

학생이지요?

아뇨 하더니 되려 나보고 학생이냐고 묻는다.육십대에 왠 학생 하다가 내차림을 둘러보니 스카프로 머리 동여매고 큰 선글라스 쓰고 청바지에 점퍼, 학생들이 즐겨 신는 신발, 주름이 한꼬치 보이지 않는 차림이었어.

오 마이 갓! 이 나이에 학생이냐는 소리도 들어보고...

하기사 그들은 육십대에도 배움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우리보단 훨 많지 않겠나... 문화 선진국이란 그런거지 뭐. 

 

앙가라 호텔에서 묵은 이튿날 비가 억수로 쏟아지곤 하는 날씨였어.

박물관 미술관을 둘러 보고 파이프 올간 연주회에도 갔었어.

해설이 있는 음악회였건만 알아들은 말은 모짤트,바하,바하의 토카타 & 푸가  ㅋㅋ

 

드디어 바이칼 호수에 있는 알혼섬으로 버스로 5시간 달렸어.

창밖으로 보이는 시베리아 평원 시원한 경치, 마침 어제까지 우중중하던 날씨도 쾌청.

매우 열심이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젊음이 간혹 거슬리게 보이는 유학생 가이드가 그래도 `제독의 연인`이라는 영화를 틀어준다.실화였다고 해.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비극적 결말일 수밖에 없는 운명적 사랑이야기.

첫눈에 반한 사랑이란 요새 대셋말인 비쥬얼 때문인 게 분명하더구나.

주인공인 남녀 배우의 잘 생기고 멋진 모습.아내와 아들을 두고 옆집 사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첫눈에 홀리는 남편.

버스가 잠시 머문 휴게소에서 남편과 둘이 서있는 오샘에게 장난스레 말했어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보면 반해야하는 거야?

당연하지 난 너무 당연하다 생각해 라는 그녀의 즉답.

남편을 곁에 두고 저렇게 말할 수있는 그녀의 당당함 그건 자신감일거야. 외모와 감히 견줄 수없는 내공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눈빛이 좋더라.

같이 간 Y선배도 그녀가 겸양을 갖춘 교양녀라서 같이 여행하게 돼 좋다고 칭찬하니 얼마나 좋던지... 

 

알혼섬 통나무집에 묵었어.

오십년은 됐다는 고물 짚차는 가솔린 냄새 풀풀 풍겼지만 길이 70여 Km라는 알혼섬을 열심히 달렸어. 

끝없는 초원, 가지가지 들꽃,적송 숲, 바이칼호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이곳이 바로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 라는 느낌이 확 오더구나.

바이칼호, 길이 636Km 폭 20~80Km 깊이 1637미터라고 해.

 1637미터의 수심이 내려다 보이는 지점에서 사진 한장 찰칵.

폐속 깊이 들여 마셔지는 맑은 공기,눈에 영원히 찍어두고 싶은 알혼섬 정경.

눈 쌓이면 얼마나 더 멋질까 상상했어.겨울의 바이칼호는 꽝꽝 얼어 자동차 길로도 이용한다고 해.

 

이튿날 통나무집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드디어 가족 아닌 친지들과 여행할 때마다 찾아오는 습관적인 증상,

여행 떠난   일주일이 돼가면서 오던 묘한 상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한 기분이 또 들었어.

한국에서의 일은 깡그리 생각 나지 않고 묵묵히 밥을 먹는 그 자리에 사람들과 오래 살았던 것 같은 기이한 기분 말야.

유체이탈 경험을 쓴 책을 읽은 얘기를 친구에게서 들었는데 이것도 일종의 유체 이탈 현상이었을까

영혼 따로  신체 따로,한국에서의 생에서 이탈한 기이한 느낌이라니...

    

 한국은 불볕더위라는데 난방이 안되는 통나무 집에서 가져간 옷 모두 껴입고 웅크리고 잤어.

한 밤 자고 이틑날은 핀란드식 사우나를 했는데 왜 이곳이 사우나가 필요한지 체험했지.

사우나로 쫘악 펴진 몸을 꼿꼿이 펴고 드디어 밤하늘을 감상했어.

하늘 가득 차 있는 별들을 본 적이 한국에서는 없었어.아니 아주 어린 시절에는 봤었겠지.

 우리 일행 모두 아! 오! 감탄사, 러시아 말로 옵파!!

은하수를 다 보다니 감동스러웠어.

 인도의 뱅골어로 은하수는 `아카시강가` 하늘을 흐르는 어머니의 강 이라는 뜻이란다.

자식들을 향한 마를 새 없는 사랑의 원천 어머니.슬프거나 쓸쓸할 때 어머니의 강에서 멱을 감으며 사랑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살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돌아오는 날 눈 카메라로 열심히 알혼 섬 풍경을 찍어둔다.

눈 카메라 성능이 언제까지일까는 그 순간 중요치 않았어.그냥 아까워서 보고 또 보고 그랬던 거야.

다시 이르쿠츠크,재래 시장도 보고 드디어 집에 가는 비행기 타려고 공항에 가서 오래 걸리는 수속 마치고 보딩 기다리는데 서너 시간 연착이란다.시간은 새벽 2시.

잠 놓치면 병나는 노인급  일행인데 마침 너무 엽엽해서 끝내 감동을 줬던  S선배가 데불고 온 그녀가 잽싸게 보로박스(이거 어느 나라 말이니?)를 여러장 구해와 통관하자 마자 지나가야하는  구역에 쫙 깔아 줬어.

염치 체면 불구 긴 쇼올로 얼굴부터 덮고 4명이 일자로 눕는다.노숙이 별건가 그게 바로 노숙이었어.

절대로  웃지 않던 근엄하게만 보였던 러시아 공항직원들이 킥킥 웃는 소리를 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한시간 가량 다리 뻗고 누웠던 덕분에 병나지 않았던 것 같아. 

 

 돌아온 인천공항,해마다 세계 최고 평점을 받는다는 인천공항은 거의 궁전 수준.

여행지에서 화장실 가기 무서워 먹기도 두려웠다면 너무 엄살이 심한거니?

너무 깨끗한 화장실,신속한 통관업무,쾌적한 공항청사 우리나라 좋은 나라란 말이 절로 튀어나왔어.

늘 위태위태 불안불안 하면서도 어느덧  발전돼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 불가사의하지만 고맙고 이대로 지속되기를 빌었어 우리 애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광활한 자연을 보고 마음보가 넓혀졌냐고는  묻지마 S야.

돌아온 날 저녁 꼭 참석해야하는 가족 행사가 있어서 운전하고 가는데,

여전히 끼어드는 얌체차 죽어도 양보 안하는 싸가지 없는 차를 보고 에라&*% 여전한 욕이 나왔다는 거 아니니.

`매일 굴러가는 하루`(자우림 노랫말)속으로 다시 들어간 거지 뭐겠어.

그래도 S야 인생 진도에 여행이라는 특별한 시간 밖의 시간이 있다는 건 신선하기만 하구나.

행복에 겨워 뻐기는 사람보다 불행을 의연히 견뎌내는 사람이 더 매력적이고,

행복과 불행의 이분법이란 덫에서 놓여난 사람이 더 내공있는 사람이며...광활한 자연을 보며 요런 생각도 했으니 이번 여행 꽤 좋았다고 말할 자격이 되지 않니? 

너와 같이 이런 시간들을 함께 하기를 그렇게 바라건만...언젠가 우리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