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깊은 가을이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너무한 게 시간뿐인 것처럼 시간이 야속하다.


버킷리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병으로 죽음을 선고 받은 사람이 죽기 전까지 해보고 싶은 일을 항목으로 만들어

차례대로 해보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었다.

그영화 이후로 버킷리스트가 인구에 회자(膾炙)됐던가.

구태여 나의 버킷리스트를 말하자면 이것저것 배우다 죽기인가보다.ㅎ

그야말로 성취가 목적이 아닌 배움의 과정을 중요시하는 행위랄까.

 행여 멋지게 포장돼 보일까봐 즈레 쓸데없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아니다.

다만 가르치는 책임감에서 온전히 벗어나 시험평가는 절대없는 것들을 이것저것 집적되는 거에 불과할 뿐.

가방 네개를 쭉 늘어놓고 그 요일에  해당되는 가방을 들고 들락거리는 날라리 배움이다.

 

그 중 한 가방을 들고 간 날

선생님이 물었다.`당신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입니까`

영어회화 반이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선생이 의아해한다.

유창하게 이 노인네의 그리 대답하는 심리를 얘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버킷리스트를 갖는 것조차 욕심으로 느껴지는 이 조로증(早老症) 현상을 무슨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 친구들은 지공선사가 이미 되기도 했고 곧 되려고 하는 나이에 이르렀다.

누가 할머니라고 불러도 억울해할 게 없는 공인인증서가 지하철 공짜 표렸다.

자타가 인정하는 늙음의 시대가 도래하니 일단 눈이 침침해오지, 허리 무릎이 새큰거리지,

그래서 일용할 양식에 약이 필수품으로  들어간다.

 

같은 클라스에 다른, 상대적으로 젊은 이들의 버킷리스트를 들어보았다.

세계 곳곳 여행하기,골프 싱글치기,글 써 단행본 내기,etc etc

나이에 맞게 그들의 리스트는 다양했고 욕구는 싱싱했다.

그 순간 늙어서 사라지는 것들의 일번타자가 자신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감이 없어지니 성취는 강건너 등불이므로 노인네의 잔꾀가 발동해서

해보고 싶은 것을 미리 알아 삭제 시킨 건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영어로 시원하게 말못한 나의 버킷리스트를 억지로라도  꼽아보자

죽어도 느낌이 죽지 않기,그래서 감동받기,떠난 버스 다시 타려고 버둥거리지 않기.

흐르는 물처럼 세월따라 가면서 마음은 건강하게 죽기를 훈련하기.

천국가려고 급행료 내지 않기 ㅎㅎ

 

이러구러 또 가을이 무르익었다.

자연의 질서  앞에 늘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나만의 치희(稚戱)런가.

이기지 못하는 장사, 세월을 인정하며 거울 보는 시간이나 줄여야겠다.

 

 

 

 

*버킷리스트(bucket list)

 Kick the Bucket 에서 유리된 말로,

중세시대에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를 발로 차 버리는 행위에서 전해졌다.

즉, 우리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리스트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