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동창회 모임을 다녀와서 써본 글이야.

또 하나의 추억으로 그 날이 기억되기를...emoticon



             


찌개

 

 

 

인천역에 내리니 12시 30분.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 간신히 찾아가니 모임이 12시인데 1시간이나 늦었다.

왁자지껄 한 소리가 들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십명의 동창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침 전임회장에게 신임 회장이 상패를 전달 중이었다.

머쓱하게 손을 흔들고 빈자리에 앉았다. 족히 40명은 넘어 보이는데 나중 알고 보니 36명이라 했다. 눈에 익은 얼굴들이 여기 저기 보였다. 그나마 자주 보지 않은 친구들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벌써 식사는 다 끝난 상태인지 식탁은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었다.

신임 회장이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자기 나름의 계획을 발표 하고 있었다.

해외여행 프로그램이 1년에 2번 정도, 국내 여행이 1번 있는데 찬조금에 대한 얘기가 진행 중이었다.

결국 왈가왈부 끝에 헤외 여행 땐 10명이 넘을 경우엔 1인당 5만원의 찬조금을 국내 여행땐 교통 버스편을 제공하기로 했다.

만장일치로 회의가 끝나고 서로의 이름을 확인 하면서 반가운 얼굴들끼리의 수다가 이어졌다. 차기 총무가 오더니 식사 준비가 따로 되어 있으니 가서 먹으라고 했다.

위쪽에 차려진 식탁으로 가니 유숙이도 늦었는지 그리로 왔다. 몇 년 만에 보는지 많이도 변해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모자로 머리를 가리고 있었다. 물론 멋으로 쓰기도 했겠지만 흰머리와 머리손질이 번거러워 쓴 친구들이 많을 것 같았다.

나도 가끔은 모자를 쓰기도 하는데 오늘은 모처럼 미장원에 가서 드라이로 바람을 넣고 후카시도 넣어 머리를 부풀려 보기 좋게 모양을 내 보았다. 오랜만에 동창회에 참석하니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한 친구가 다가왔다.

“나 승신이야 오랜만이다. 네가 온다고 해서 보고 싶기도 해서 나도 왔어.”

처음엔 낯설었지만 자세히 보니 어렸을 때 모습이 보였다. 고등학고 졸업하고 처음보니 무려 45년 만의 상봉이었다.

“어머. 정말 오랜만이다. 어쩜 이렇게 반가울수가. 정말 반가워.”

우린 손을 잡고 회환에 젖었다.

“그래 어디 사니? 어떻게 지냈어?”

승신이완 초등학교부터 동창이다. 어린시절 유난히 어울려 잘 지냈던 터라 궁금한 다른 친구의 소식을 묻기도 했다.

“으응, 그 친구 지금 문경세제에서 살어. 집짓고 내려 갔는데, 남편이 갑자기 죽어서 마침 딸이 근처에 살아서 잘 지내고 있어.”

요즘 흔히 듣는 소리다. 이제는 이런 소리도 만성이 돼서 그리 놀라지도 않는다.

다른 친구들이 반갑다고 오는 바랍에 승신이 와의 대화는 끊어지고 이친구 저친구 손을 잡고 안부 묻기에 바뻤다. 언제나 봐도 스스럼 없는 친구들. 여고 동창이란 사실 만으로 우린 어디서나 언제가 됐건 어제처럼 반갑고 즐겁다.

“너 책 냈다며. 언제 그렇게 글을 썼어. 외손자도 본다면서.”

수필집을 냈다고 동창회 홈페이지에 올렸더니 다들 보았는지. 너도나도 축하 인사다.

자리를 옮겨 티 타임을 갖일 시간이라고 총무가 알려줘서 우린 아래층 찻집으로 옮겼다.

‘토촌’ 이름답게 흙과 나무로 인테리어 된 찻집은 홀 중앙에 모닥불을 지펴 겨울의 운치를

더 해 주었다. 둥근 원목탁자에 둘러 앉으니 대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서로 오랜만이라고 반갑다고 처음 본 친구들과 서로 인사 나누고 그동안의 사담이 오고 갔다.

전전직회장 혜숙이의 말에 우린 박장 대소 하며 웃었다.

“나는 말야, 찌개 끓일때마다 조금 끓인다고 끓이거든. 그래서 처음엔 조그만 냄비에다 끓이는데 이게 자꾸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고 하다 보면 금방 넘쳐서 큰냄비로 옮기곤 해.

그래서 한 끼만 먹으려 던게 몇 끼를 먹어.“

“나도, 그래 나도. 어쩜 나하고 똑 같니.”

너도 나도 얼굴을 보며 이구 동성으로 웃었다.

나도 사실은 매번 찌개 끓일 때 마다 반복 하던터라 눈물 나도록 웃었다.

찌개를 먹을때마다 조금씩 끓이지 많이 끓여 매끼 먹게 한다고 툴룰 거리는 남편에게

“음식은 재료가 많이 들어가야 맛있지 조금 끓이면 맛이 덜 해.”

그럴듯한 핑계를 일삼으며 실수를 만회 하려 하는게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사실은 무척이나 흥분 되고 재미있었다.

옆에 앉은 정숙이가 둘째 결혼식에 못 온걸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래 솔직하게 서운했어. 난 멀리서도 네딸 결혼식에 갔는데. 네가 안 오니 서운하더라.”

허심탄회 하게 서운한걸 털기도 하고, 정옥이가 네 수필집 동네 책방에 부탁 했다고 해서

한권씩 돌리지 못해 미안하고 잘 읽으라고 정옥이에게 감사했다.

경희네 과수원 사과가 맛있다고 친구들의 주문이 폭주하고 이런 저런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바쁜 친구들은 먼저가고 남은 친구가 10명 남짓. 차기 회장 순자가 기분으로 저녁을 쏘겠다고 해서 이른 저녁이지만 근처 중국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짜장면엔 탕수육이 필수라며 핑계김에 탕수육까지 먹는데 고구마탕까지 서비스로 제공됐다.

배가 놀라겠다고 푸짐한 저녁을 먹고 헤어진 시간이 6시 30분.

다음을 기약하며 친구들과의 이별은 서운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 다음 동창회에 또 보자.”

거리는 어느덧 땅거미가 짙게 깔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