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가장 무더운 날이라고 말한 너무 무더운 날 신촌행 버스를 탔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지쳐 에어컨도 졸고 있나 버스 안이 시원하지 않다.

나름의 불쾌지수 서서히 올라가며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한 시점에 기사 아저씨의 친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정류장에서 내리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한다.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다음에 내려도 되니 서두르지 마시라고 성급한 승객이 있으면 상냥하게 일러준다.

게다가 아저씨가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드신다

.눈여겨 보니 같은 번호의 버스 기사를 향해서 버스가 지나칠 때마다 반가이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세상에나 이 더위에 짜증없이 승객들을 한결같이 부드럽게 대하다니 가히 기사 아저씨의 메너는 예술 급이다.

 내릴 무렵 집에 돌아가는 정류장이 어디냐고 물으니 역시나 아저씨 친절히 세세하게 가르쳐주신다.

 

버스에서 내리니 사우나에 들어간 것 같다. 이럴 떄일수록 동작을 천천히 해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양산을 쓰고 느적즈적 모임 장소를 향해 걸어가면서  기사분의 매너를 떠올리며 불쾌지수 급하락된다.

 

친구 딸의 예술적 향기 가득한 샌드위치 가게에 들어선다.

차려내온 음식 이건 또 예술아닌가.

곡물 빵 두조각 위에 발사믹 식초와 갖은 양념으로 볶아낸 어린 느타리 버섯이 다소곳이 언져 있다.

그 옆에 볶은 방울 토마토 몇알과 아스파라거스 그리고 얌전히 만든 수란,감자 샐러드 몇 조각.키위 쥬스.

옅고 짙은 브라운 칼러와  그린과 붉은 색과 흰색의 절묘한 조화.

작품을 훼손하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먹어보니 맛 또한 예술이다.

얼마 전 다녀온 시에틀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먹었을 때 느꼈던  고급 맛이다.

 

"신이 내린 음식 솜씨"라고 극찬을 하니 친구도 딸도 좋아라 한다.

파안대소 하는 친구를 보니 그 옷차림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패셔너블하게 디자인한 짙은 갈색 상의에 베이지 롱 스커트,

 딱 어울리는 목걸이와 귀걸이, 옅은 브라운 샌들, 염색을 안하는 그녀의 머리는 회색톤이었다.

어울리는 차림에 걸리적거리게 보일 수있는  안경과 양말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데 일조한다.

이런 예술적 차림 하루 이틀의 내공이 아니지...

 그녀가 읽은 오거서(五車書)의 책,그리는 그림,사진 그리고 사는 동네의 음덕이 모여 

그와 같은  분위기로  보이게 됐을 것.

 

친구들이 모모에서 영화를 보자 한다.

그런데 그 제목이 `미드나이트 인 파리`.

얼마 전 헤밍웨이의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를 모티브로 한 영화 같다며 딸이 보라고 권했던  보려고 벼르던 영화다.

저녁식사 준비를 못해도  되냐는  문자를 보냈더니 `물론 @#$%^*` 하는 화답이 온다.

 

영화는 도입부에 아름다운 파리 모습을 보여준다.

너무 아름다워 곧  분위기에 취하게 한다.

카메라 앵글이 비춰준 그 지명들을  알고 싶어 인터넷 검색을 했다. C일보 특파원의 다음과 같은 글을 찾았다.

 

`파리에 새로운 관광 트렌드가 생겼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촬영 장소를 쫓아가는 것이다. 영화는 순수문학을 꿈꾸는 미국인 시나리오 작가가 약혼녀와 함께 파리를 찾았다가 192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그곳에서 아직 무명이던 헤밍웨이·피츠제럴드·피카소·달리 등을 만난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보다 초반부에 사진첩을 넘기듯 하나하나 보여주는 파리의 풍경들이 오히려 오랜 여운과 설렘으로 남았다는 영화 감상 후기가 많다. 감독은 카루젤 다리 밑의 센강 산책길, 몽마르트르 언덕의 계단, 파티가 열리던 생 루이섬 등 90년 전 모습을 지금의 파리에서 담아냈다. 주인공이 과거행 자동차를 타던 생 에티엔 뒤 몽 성당 앞 언덕길은 주차 표시 정도만 가리면 언제든 100년 전 파리의 뒷골목이 될 만큼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예술은 무조건 아름다운 것을 추구해야 된다고 믿는다. 사회의식이 결여된 편식증 환자라해도 좋다.

기자도 지적했듯이 이 영화가 깊은 여운을 주는 이유는 아름다운 파리 풍광 때문이다. 

영화는 아름다운 파리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전혀 다른 약혼 커플은 헤어지고 주인공 남자는 파리에 남는 것으로 엔딩된다.

남자 주인공처럼 비를 맞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와 비를 맞으며 걸어가면서......

순수한 남자와 현실적이고 사치스런 부잣집 딸의 관계,현학적인 교수의 허세...

시간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유명인들과의 만남,그런 얘기보다 내게도 파리의 아름다움이 더 어필했다는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젊은 시절 파리에 살고 싶다고  자주 말했던 기억이 났다.

지금은 그냥 한달만 지내다 오고 싶다.

아주 편한 신발 신고 샅샅이 예술적 파리를 느끼고 싶다면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다고 뒷담화 들을 일일까?

 

집에 돌아오는 길

기절하게 더운 날이었기 때문에 더 몽롱히 예술적인 분위기에 취한 것은 아닐까 날씨에 후한 점수를 주게까지 됐다.

이런 얘기는 사족스럽지만  날도 더우니 그냥 쓰자.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걸려온 전화,영화가 끝난 다음에 통화하겠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똑똑한 노인의 황당한 얘기를 전화상으로 들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좋았던  것만 생각하자  주문을 외며 느릿느릿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