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테이 학생 받을까, 말까

 original image

20 일동안 같이 지내던 조기 유학생이 L 시로 떠났다.

그 20 일이 석달같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 잠깐 사이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인가...

미씨 칼럼의 댓글에서 어떤 어린 여학생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자청하여 데리고 왔었다. 미국인 호스트 집에서 지낸다니 얼마나 한국 밥과 김치가 그리울까 하고.

 

오기도 전에 전화로 "아줌마 집에서 살면 안되요?" 하는 것이었다.

아주 예쁘고 단정해 보이는 15 살짜리 학생을 데리고 오니

허구헌날 다 늙어가는 두 사람만 사는 빈 둥지가 제 구실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그냥 재미가 좋아서 밥 해먹이고, 떡 해먹이고, 산보도 같이하고...

얼렁뚱땅 커서 떠나버린 우리 큰 딸이 되돌아 온것 같기도 해서 우리는 도로 20 년 젊어졌다.

그때까지는 너무 좋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국 온지 두달이 채 못되었는데 

첫번째 집에서는 혼자 사는 할머니가 너무 무서워서 나왔고,

이번 집에서는 사람들은 좋지만 더럽고 냄새난다든가 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두달동안 미국 사람들과의 생활에 진저리가 나서 한국 사람과 살고 싶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한국에서 떠나기 바로 전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우울증이 온것을

환경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 해서 미국에 왔다는 것이었다.

우울증이 더 심해지면 심해지지 어찌 나아질 수가 있을까...제일 나쁜 때에 급한 선택을 잘못한 것이었다.

 

어쨎든지 교회가 끝난 후 일단 미국 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 아이를 데려다 주기위해 그 집에 갔더니 과연 그 집은 너무나 더러웠다.

미국 집이 그런 집이 있는 줄은 꿈 밖이었다.

그래서 "니 말이 맞다 옮겨야 되겠다" 하고 차차 알아봐 주기로 했다.

다음 주일날 교회로 픽업해 주고, 떡 갖다 주고, 다시 데려다 주고...그때까지도 다 좋았다. 

 

두 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 목요일에 아이가 울며 전화를 했다.

"나 좀 데리고 가면 안돼요?" 하고. 학교에서 선생이 여러 아이들 앞에서 자기에게 망신을 주었다나...

그래서 다시 데리고 왔더니 이제는 그 집에 안 가겠다는 것이었다. 

졸라대는 아이를 다른 집에 소개하는 대신 우리가 데리고 있기로 한 것은

잘 모르는 집에 가면 적응에 힘들까봐도 그랬고, 우리 집도 넓고 아이들도 좋아하고,

그리고 홈스테이 호스트 하는 것도 관심이 없지도 않았다.

솔직히 할일 없는 남편에게 라이드 일도 주고, 불경기 와중에 용돈 벌어 쓰는 것이 재미가 있을법도 하고...

그때까지도 정말 다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많은 생각 끝에 간신히 오케이를 했더니 이제는 먼저 살던 미국 집에 다시 가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과 큰 문제가 없었는데 옮기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나... 

그래서 그러지 않아도 잘하는 짓인가 은근 걱정이 있었는데 "그거 잘됐다. 그래라." 하고

그날로 당장 우리 집에 남긴 물건을 가지고 다시 그 집에 데려다 준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그 즉시로 다시 변덕을 부리면서 우리 집에서 살기로 결심했다나 뭐나..

"아줌마, 제발 그냥 있게 해주세요 네?" 하며 졸라대는데 기가 찼다.

예감이 아주 안 좋았다. 쉽지 않겠구나 하는 것..

 

우리 집에 살면서 2,3 일은 조용하더니 날이면 날마다 엄마에게 울면서 전화하여

당장 한국에 가게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하였다.

하루에 적어도 다섯번은 전화하고 화상채팅을 한시간씩 하는 것 같았다.

걸핏하면 학교에서 일찍 조퇴하거나 빠질 궁리... 

요즈음 자살자들도 많고 우울증이 걱정이 되어 한국에 데려가야 한다고 했더니 엄마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찌 해서든지 조금 더 버티고 시간을 끌다가 나오게 하라는 것.

수십번 전화 끝에 한달 반 후에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그것 때문에 학교에 이멜보내고 선생 만나고 하는 것 물론 내가 해야했고.

거짓말 보태어 잠깐만에 우리 애 넷 한데 합친 것보다 더 많이 학교에 출입한 것 같다.

 

그러더니 얼마 안 지나서 내년 5월 학기를 마치고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와~ 우리 집에 와서 마음이 차분해 져서 좋아지나 하고 공연히 신나 했었다.

다시 이멜 보내고 학교에서도 좋아했고... 

그것은 깜짝 쇼였고 또 다시 이삼일이 지나고 나서는 또 울며불며 난리를 쳤다.

"한국 가고 싶다, 엄마 보고 싶다, 미국이 싫다."...

하도 울며 보채서 사이콜로지 박사에게 상담을 받기도 했다.

상담 그까짓것 한번 받아 보았자 별 것 없을 것이라고 해도,

우겨서 내 일을 다 제치고 몇시간을 품을 메었다.

 

결국 엄마는 그 아이에게 대안을 내놓기를 L 시에 가서 고향 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다른 학교로 전학하면 한달 후 한국에 나오게 해주겠다고 약속 하였다.

그래서 다시 많은 서류를 하고 돈도 많이 더 내고 그리로 전학을 가게 된것이다.

 

이번 일로 우리는 철 안든 상류층 조기 유학생들을 보살피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잘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밥만 먹여주고 학교 데려다 주면 다 인지 알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어찌 그리 신경 안쓰고 쉽게 키웠었는지 새삼스레 미안하고 감사하기 짝이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조기 유학생을 받는 일은 아예 할일이 못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해 본 사람은 하나같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미국 호스트 집은 900불 밖에 안받는데 한국집은 1200불 받는 사람도 있고 1500불 2000불 받는 사람도 있다.

이번에 보니 경기침체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홈스테이 학생 받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도 돈이 문제가 아니고 정말 속상한 일이 많아 절대적으로 안하는 것이 속편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이제 절대로 하지 말자 우리도 그렇게 결론을 지었었는데...

학교에 하도 드나들었더니 선생과 친해 지고 "호스트를 계속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글쎄...

어쩌다 향수병 든 아이들 데려다 한국 음식 해주는 것은 해보기로 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그 학교에 다니는 18 명의 한국 학생을 데려다가 갈비좀 구워주려고 한다.

아마도 이렇게 연결이 되었으니 아이들 좋아하는 우리가 홈스테이 다시 하기가 십중 팔구 일것 같다.

다음 번에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얼결에 시작하지는 말아야지....

아이 낳을 때 다시는 안 낳겠다고 하다가도 잊어버리고 또 낳는 것이니까. 

 

지금 와서 생각하니 우리집에 데리고 온 것보다는 미국집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 좋지 않았나 싶다.

그집에서는 불평도 내 놓고 못했을 것이고 꾹꾹 참고 그렁저렁 있었을것인데..

도움은 커녕 오히려 더 나쁜 일이 아니었나 미안한 일이다.

그런 말을 했더니 그애 말은 그집에 그대로 있었다면 정신이 돌았을 것이라고..

 

애초에 그 아이는 한국집에서 유학을 시작 했었으면 제일 좋았을 것이다.

아니, 아예 유학을 안 오는 것이 제일 좋았을 것이다.

빨리 한국에 돌아가 공부 잘해서 암 전문의가 되려는 그 아이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Jascha Heifetz 의 연주로 듣는
Saint-Seans/ Introduction and Rondo Capriccioso for violin & orchestra in A minor Op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