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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누구의 시일까?

일요일 이른 아침, 청량산에서 만난 눈에 번쩍 띈 시.

하루가 저무는 저녁무렵에도 포기하지 않는 긍정적 마인드와

 우리나이를 비유할 수있는 중의적 의미의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

개인적으로 저녁무렵의 시간을 참 좋아한다.

 

어제는 다음과 같은 글도 읽었다.

 

`무언가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는 사람을 보고 누군가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그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북극성을 향해 갑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당신이 죽을 때까지 걸으면 북극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환한  얼굴로 그가 답했다.

"북극성까지 못가도 좋습니다. 다만 걷고 또 걸으면 죽을 때쯤엔 북극성 가까이에 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당신은 아무리 걸어도 북극성까지는 결코 못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예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거나 정반대의 길로 향한다면 사는 게 너무 갑갑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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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성을 바라보며 늘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북극성 가까이에서 행복한 죽음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북극성은 희망과 행복의 다른 이름이다.`

 

얼마 전부터 고전음악을 같이 듣는 클래스에 심심파적으로 드나들고  있다.

평균 나이가 칠십은 된듯한 수강생들.

나로서는 음악에서 얻는 필(feel)도 귀하지만 그분들이 경청하면서 드는 생각들을 유추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가령  베토벤의 `아델라이데`를 들으며,

나는 40여년 전의 봄처녀 이미지를  떠올리며 감회에 젖고 있었다.

그때 허리마저 구부정해진 할아버지 수강생이 휘청휘청 걸어서 교실 밖으로 나가신다.

긴 시간 듣는 음악을 소화하기가 체력적으로 힘들어서인가 아니면 옛추억이 버거워서일까 

 

그리고, 오!~~음악가들의 생존기간!

 베토벤(1770.12,7~1827.3,26.),모짜르트(1756.1,27~1791.12,5.3),차이코프스키(1840.5,7~1893.11,6)

브라암스(1833.5,7~1897.4,3),요한스트라우스 2세(1825.10,25~1899.6,3)

 우리들보다 더 산 분은 브라암스(아주 조금 더),  요한스트라우스 뿐.

아무리 평균 수명이 늘었다 하나 우리 나이가 제법 오래 산 나이가 아닌가.

 

`처음처럼`을 구호처럼 마음에 품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쾌쾌한 나이.

다만 `성어악( 成於樂)` 이란 공자님 말씀을 든든한 빽으로 삼고,

 북극성을 바라보며 걷는 것을 멈추지 많으리라 다짐이나  할밖에.

 

PS...흐르는 음악은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지휘자는 안드리스 넬손스(요즈음 각광받는 매력적인 젊은 지휘자)

       그의 표정을 화면 크기를 크게 해서 보기 바람.그렇게 방글방글 웃으며 지휘하는 모습은 처음인 것같다.

 

       成於樂이란 음악에서 인간의 성품이 완성된다는 뜻.

       즉 음악은 부르고, 듣고, 즐김으로서 인간을 지극한 선의 경지로 인도하여

       고상하고 품위있는 인격으로 완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