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는 딸네 집에 가서 석달 동안 산구완을 하고 왔는데 생병이 났다고 한다.
“얼마나 힘드는지 몰라,   죽을 맛이더라구.
한 일주일 되니까 벌써 너무 힘들어서 어디로 도망이라도 가고싶더라니까.”

그래서 나도 단단히 각오를 하고 서울에 왔다.
들은 말대로라면 해산구완이란 도망가고싶을만큼 힘드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아닌가?

애기난지 두달이 되었는데 그동안 나는 한번도 도망가고싶지 않았다.
힘들어 죽겠다는 생각도 들어본 적이 없다.
“왜 그런가?   나는 무언가 내가 해야할 일을 안하고 있나봐.”  

마치 어떤 직무유기라도 하는 감이 있어 차근차근 점검을 해 보았다.


애기목욕 --  얘기한대로 저희들이 시킨다.
산모좌욕 --  제가 알아서 했다.  지금은 더이상 안 하는거같다.
  
미역국 --  하루 네번 먹어야지 그랬더니 딸이 눈을 흘겼다.
                하루 두번은 먹겠단다.  
                 나머지는 저 좋은대로 빵도 먹고  피자도 먹는다.

밤에 잘때 – 저희 둘이 애기를 데리고 잔다.
                   밤중에 애기가 몇번이나 깨는지 나는 절대 모른다.
                     나는 한번도 안 깨고 내쳐 잔다.

수유 – 첫날부터 모유를  빨렸다.
            처음 나오는 것은 젖도 아니라고
            첫날은 우유를 먹이자고  간호사도 그러는데
             얘네들은 ‘노우’ 하고 어미젖을 빨렸다.

병원에서 – 규칙상 보호자가 같이 머물수 없대서 밤에 산모 혼자 잤다.
                   혼자도 아니었다.
                     갓난아기를 옆에 누이고  제가 돌보면서 잤다.
                       몇시간전에 분만을 한 산모가 침대에서 내려와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곤 했단다.
                  애기를 데려가 봐 주겠다는 간호사말도 듣지않고 그랬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세상에 태어나서 첫 순간에 어미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아기한테 매우 나쁜 영향을 준대나?

이불을 잘 덮어야지 --  이건 내가 하는 말이지
                                    딸이 하는 말은 “더워 죽겠는데 무슨…..”

샤워 --  적어도 일주일은 하지 않는게 좋을걸…. 딸은 24 시간만에 샤워를 시작했다.

기저귀 --  천기저귀를 쓰겠다고 하더니 생각이 바뀌었는지 종이 기저귀를 쓴다.
                  덕분에 기저귀 빨래도 없다.

나머지 빨래 --  물론 세탁기가 한다.

기저귀 갈기 --  요새는 나도 좀 갈아준다.
                           처음에는 저도 산후휴가를 받은 사위가 내내 갈아줬다.

이러다보니 중차대한 역할을 할 줄 알고 온 내가 할 일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번에도 또 조연이다.  

부엌에서 밥하고 국 끓이고 반찬 몇가지 하는 것이 그나마 제일 중요한 나의 할일이다.
가끔 집안 청소도 좀 하긴 한다.
빨래가 마르면 개키는 일도 한다.
두 아이가 겸상해서 밥을 먹을 때 아기를 돌보는 것도 나의 일이긴 하다.
가끔 에미가 너무나 졸리워서 도저히 아기를 재울 수 없을 때 내가 나서서 재워 누일 때도 있기는 하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잔 딸이 낮에 잠시 눈을 불이도록 애기를 내가 안고 있기도 한다.
가끔 딸이 외출할 때 냉장고에 얼려둔 젖을 녹혀 애기에게 먹이는 일도 나의 일이다.   이것은 좀 비중있는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해도  사실 나는 꼭 있어야 할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딸이 이렇게 말해서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엄마 아니었으면 아마 나 영양실조 걸렸을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수줍게 대꾸했다.
“내가 뭐 한게 있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