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구완하러 서울 간다니까
친구 하나가 이랬다.
“조심해서 애기 잘 봐 주구 와.  괜히 어린애 떨어뜨리지말고….”

30 년만에 만져보게 될 갓난이라 아닌게 아니라  매우 조심스러웠다.
아이를 넷 낳아서 키웠다고 했지만
낳은건 틀림없이 나 혼자였다해도 키운 것은 절대 나 혼자가 아니었다.

그때는 집에서 먹고 자는 가정부가 있던 시절이었다.
명칭도 식모라 하면서 매우 만만하게 부리던 존재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우리 시어머니의 지휘감독하에 그 식모애가 주연이 되어서 아이들을 키운게 아닌가싶다.
그때 우리 시어머니도 지금 따져보니 지금의 나보다도 젊으셨다.

서울 오면서 ‘갓난쟁이 목욕을 어떻게 시켰더라’ 하고 먼 기억을 더듬어봐도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아마 내가 애기목욕을 직접 시켜본 적이 없어서
정말 기억 해 낼 소재가 없었던 건가 보다.  
그런가보다라는 생각도 한참후에 든 생각이다.

딸이 아직 애기 낳기 전, 하루 하루 날자는 가는데  
나는 도무지 자신이 없고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산책길에서 벼룩신문이라는 걸 한장 뽑아왔다.
내가 서울서 살던 20 년전에는 없던 공짜신문이다.
공짜는 무조건 좋아하는 나.

집에 와서 신문을 훑어보는데 전부 광고였다.
그중에 하나 눈에 뜨이는 기사가 있었다.
‘산모 돌보기 보건강습’  이라는 것이었는데  오호라!   이것도 공짜란다.

그 당장에 그 전화번호로 신청을 했다.
그래서 며칠 후 적십자병원 봉사관에 가서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거기서 진짜 애기만한 고무인형을 옆구리에 끼고 목욕시키는 실습까지 하면서 나흘동안 강습을 받았다.
그때  생각이 났다.  
내가 내 아이들 어렸을 적에 직접 목욕을 시키지 않았었다는 것이.

그리고 아울러 우리 시어머니가 어린 것을 뚱뚱한 당신 앞자락에 품고 머리를 감기고 손발을 씻기고 콧구멍에 물을 한방울 넣고 하시던 모습이 선연히 떠올랐다.

아!  멀어져 간 옛날이여.

나는 열심히 애기목욕시키기를 배웠으나 한번도 실지로 써먹지 못했다.
기회가 없었다.
갓 태어난 애기 목욕은 사위가 시켰다.  
그 후로는 딸과 사위가 맞붙잡고 하는지 교대로 하는지 부분적으로 맡아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저희들 침실안에 있는 저희 욕실에서 저희끼리 거행하기 때문이다.  
두달 된 지금까지 우리 애기의 목욕현장을 나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이유는 욕실이 좁아서 내가 들어가 시청할 여유공간이 없기때문이다.
목욕이라지만 배꼽이 떨어질 때까지는 아기를 물속에 담그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하라고 그애들이 받은 강습에서 가르쳤단다.

나는 어째서 물 떠다놓고 방바닥에 앉아서  목욕시키는 생각만 했을까?

갓 엄마 아빠가 된 이 두 사람은 매우 열심이다.
책도 많이 보고
둘 사이의 의견 조정도 많이 하고
나의 의견도 많이 무시하면서
아직은 필요도 없는 이것 저것도  많이 사 들이면서
열심히
아주 열심히
좋은 부모가 되려고  여러모로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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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달전의 이야기인데 그냥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