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센트럴에는 수많은 실내 통행로가 있었다.
많은 빌딩들의 구내가 우리네 지하철 구내처럼 일반인들이 자유로이 왕래하는 인도가 되는 것이었다.
빌딩의 복도나 입구가 버젓이 일반인들의 통행로로 개방되어 있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A 빌딩으로 들어가 B 빌딩을 통하여 C 빌딩에 도달할 수도 있고 어느 전철역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

빌딩들 사이사이로 다니다보면 빌딩지하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고 건물안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땅이 좁은 홍콩은 이렇게 빌딩을 잘 활용하면서도 그래도 도로가 비좁아
중심가에는 차도 한켠으로 공중에 사람이 다닐수 있는 구름다리 인도를 만들어놓았는데 그 길이가 백여미터도 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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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수퍼에서 나와서 센트럴 방향으로 조금 가면 (이 역시 옥외의 인도가 아니라 건물내의 인도이다)  
영화관이 하나 있는데 이 영화관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이유는
이 영화관은 오로지 흘러간 영화들만 상영하기때문이다.
서울에도 이런 영화관이 있을까?

내가 봤을 때는 ‘바람과함께 사라지다’ 가 걸려있었다.
혹시 다른 영화였다면 어찌어찌 짬을 내어 가 봤을지도 모르겠는데
‘바람과….’  는 벌써 여러번 봤기때문에 그만두었지만….
옛날 영화들만 상영한다니, 참으로 매력적인 영화관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감상일뿐이고 수지타산이 맞을런지는 의문이 든다.

브라질에서 언젠가 한번 안소니 퀸의 ‘길’  이라는 흘러간 흑백영화를 일반 영화관에서 특별상영 한 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 그 유명한 ‘길’ 을 보지못했던 나는
역시나 그 영화를  보고싶어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어려운 시간을 내어 관람하러 갔었다.

관객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한산했을뿐 아니라,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영화이니 매우 감동적일거라는 우리들의 상상조차도 여지없이 깨졌던 것이다.

비슷한 경험을 서울에 와서도 했다.
6.25 특집 기획으로 재선아트센터에서 영화 ‘오발탄’ 을 한다기에 보러 갔었다.
그 날은 유현목감독과의 만남도 마련이 되어 있어서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좀 왔다는데도 좌석은 텅텅 비어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영화기술도 변하고 사람들의 감각도 변해서 그런가.
그 당시에는 감동적이었고 절찬을 받은 영화라 할지라도 지금 보니까 참 시시하고 유치하기까지 하다고 느껴졌다.  
특히나 위의 두 영화가 흑백영화라 더 그런 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홍콩의 옛날 영화 상영관이 흑자일지 적자일지는 모르겠지만
얼마나 낭만적이고 근사한 존재인가.

‘로마의 휴일’  ‘초원의 빛’   ‘이창’  ‘애수’  ‘나는 살고싶다’  ‘나이아가라’   ‘버스 정거장’  기타등등…기타등등…
이런 영화를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해도 즐겁다.

홍콩에서 해보지 못하고 와서 서운한 일 몇가지중의 하나가 이 영화관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