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아주 어렸을때 국민학교 시절을 회상할때가 있다. 눈만 감으면 그옛날 살던

시골동네, 저수지, 바닷가,개나리, 벗꽃, 할미꼿등 그리고 봄이면 바구니들고 냉이 민들레

꽃다지 등 원추리새싹을 깨어 나물을 즐기곤 했던 추억에마냥 달콤한 행복감에 젖곤한다.

내가 다니던 시골 논현국민학교 학생들은 아주 멀리서 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연수동, 만수동, 부수지, 동막, 소래, 고잔동, 논고개에서오는 애들은 거리가 멀어 놀며 걸며

여름 겨울 방학 빼고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열심히 등교하는 애들이었다.

 

 

난 다행이도 국민학교 아주 가까이 살었었다. 집뒤 철도길로 고잔동에서

오는 아이들이 철도길을 걷너는

모습이 보일때 그때부터 책보재기 들고 등교 준비를 하면 제 시간에 학교를 갈수가 있었다.

고잔동에서 건너오는 친구들을 아침마다 창을 통해서 보는것이

나의 아침 일과였고 여자들은 책보재기를 허리에 매고 남자들의 책보따리는

어깨에 매고 비가오는날 우산보다는 큰 푸대자루를 길이로 접어 머리에 쓰며는

오히려 우산보다 온몸을 다 가릴수 있지만 그때는 우산도 드믈었던

시절이었던것 같앴다.

 

 

요즘 한국의 선박, 세월호 침몰 사건은 가슴을 내리치는듯한 아픔과 슬픔이었다.

처음 인터넷 뉴스를 보았을때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리하여 인천과 가까운 지역이라고 생각했으나

자세히 읽어보니 바로 내 고향과 아주 가까운곳 고잔동에서 사는 학생들이었다.

그곳에 나의 국민교 동창들이 많이 살곤 했는데 아마도 내친구들의 손주들이나 아니면

친구들에 언니 오빠들의 손주들 일수가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가슴이 메워지는듯한 생각이 들곤 했다.

 

 

고잔동은 바닷가에 위치 하고 있으며 생업은 염전과 유명한 한국화약공장에

종사하는 가족들이 많었었다. 어느날 요란한 소리가 저멀리 고잔동에서 들려올때는

가슴이 덜컥하던 기억도 있다. 바로 화약고에서 터진 어느 희생자의 사고

소식을 듣곤했던 기억과 조개와 맛살잡이를 하던 처녀들의 소용돌이 물속에 빠져죽는

일도 종종 보고 들었던 가슴아픈 일도

생각이 나곤 한다. 그것이 바로 내고향 의 가슴 아픈 기억들이다.

 

 

뭐라 말할수 없는 가슴아픈 세월호 희생자들의 가족과 친척들에게 어떠한 위로도

지금은 모두 힘들것이다.부디 마지막 실종자 까지 모두 찾는것이 실종자 가족들의

실날같은 희망일지라도 부디 이뤄지기를 바라면서 잠시 옛생각에

젖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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