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 이야기

  우리 집 개는 잡종 암수 한 쌍인데 한배 오누이다.
그중 수놈의 이름이 ‘데니’이다. 눈만 겨우 뜬 것을 기른 지
벌써 5개월째 접어든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우리 개의 조상 중에
풍산개도 있었고, 진돗개가 있었다고도 한다. 흰색에 발이 크며,
털이 거칠고 직모인 것으로 봐서는 사실인 듯하나, 짤막한 다리는
무슨 형통이며, 얼굴에 아카시아 나무의 가시마냥 마구 돋은 털은
누구를 닮은 풍모인지 모르겠다.

  어느 날 집에 친척들이 모였는데 큰 오빠가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사람은 사람끼리, 개는 개끼리 어울려 놀았는데
손님으로 온 강아지가 없어졌다. 모인 사람들마다 내 면전에서
못하던 참았던 말을 한다. ‘없어지려면, 귀여운 놈은 놔두고 대신 못 생긴
똥개나 데려갈 일이지…….’ 이런 경우를 새옹지마라고 하는가 보다.

  잘생긴 사람만 살 자격이 있는 게 아니듯 못생긴 개를 기르는
주인도 기죽을 필요는 없다. 아무려면 어떤가. 우수견 품평회에 내보낼 것도
아니고, 개 선보여 시집보낼 일도 없는데. 족보 있는 개들 똑똑하다고
해봐야 수능시험 치를 텐가, 고시공부를 시킬 건가.

  요사이 오대까지 족보가 있다는 새까만 진돗개가 동네를 휘젓고
다니더니 우리 집에 와서 두 놈의 밥을 먹으며 오히려 위협적인
소리까지 낸다. 놀러 온 이웃 친구라서 양보를 하는지, 우리 개는
옆에 서서 그놈이 먹는 것을 구경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진돗개와 우리 개의 서열 다툼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검둥이가
우리 수캐의 목덜미를 찍어 눌렀다. 하얀 털이 피로 물들었다.
개 오누이는 허구한 날 싸움 연습을 했건만 그 노력이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미 서열이 정해졌으니 다시는 아랫집 개와
싸움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에게 접근하는 다른 개는 용납을 못한다.
그게 검둥이일지라도 용서치 않는다. 질 것을 계산 못하는 우둔함인지,
개엄마인 내 곁에 얼씬대는 놈에겐 무조건 덤비고 보는 무모함인지.
딴에는 온몸을 던지는 충성일 것이다. 다리를 저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이마의 가죽이 훌렁 벗겨지기도, 또는 멱을 물려 앉은 자리에 피가
흥건히 고일 때도 있다. 나는 그놈 몸의 상처를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날아가는 새를 보고, 하늘의 비행기를 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도 짓는다. 심지어는 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못 알아보고 짖을 때도 있다. 천성이 영민하지 못하고 아무 때나 짖어서
그렇지 의리와 책임감은 높이 살만하다. 우리 집 암놈이 이웃집 개와
싸움을 하면 몸을 돌보지 않고 덤빈다. 언제나 주인이 부르면 앞에 와서
엎드리고, 잘못하여 매를 맞게 되어도 도망을 가지 않는다.

  내가 외출을 할 때면 좌우를 견제하며 자동차를 앞서 달려
큰길까지 배웅을 한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닭도 쫓고,
심지어 단짝인 암놈에게까지 차에 근접을 못하게 으르렁거린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경호인 양 임무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때가 언제이건 밖에서 기다렸다 맞는다. 기다리는 장소가
큰길가 다리 밑을 수도 있고, 집으로 접어드는 샛길어구일 수도 있다.
그 동안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밤이 되어도,
비가와도 한결같이 충실한 동작이다. 오랫동안 집을 비운 적이 있었는데
집을 봐주는 이웃에게 안부전화를 했더니 개가 너무 애타게 기다리니 빨리
오는 게 좋겠다고 한다. 내가 다니던 산책로를 어슬렁거리고,
밭가에도 앉았다가, 이웃집도 들러보고는 하염없이
한길 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영악스럽고 힘센 강자가 판을 치는 세상인데, 기르는 개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쟁취하고 성공하고, 똑똑하여 남에게 절대로
속지 않는 사람, 약삭빨라서 무슨 일에나 앞서는 사람을 나는 삼가는 편이다.
우리를 훈훈하고 살맛나게 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바보스럽고
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소수의 어수룩한 사람들이 다수의
똑똑한 사람들로부터 극으로 치닫는 이기주의와 깨지려는
평화를 지켜내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