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냉이가 익걸랑

  초보 농부의 덤벙 주추 농사는 감자에 이어 옥수수로 옮겨졌다.
강원도 하면 감자와 옥수수가 으뜸 작물로 꼽히기에 시골생활
첫해에 지어볼 만한 품종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운 이웃에 묵밭이 있기에 그 곳을 얻어 옥수수를 부치기로 하였다.
넓이라야 오십 평이 채 안 될 것 같은, 네모반듯하지도 않은 사다리꼴 모양이다.
주인의 말로는 그 땅은 배수가 잘되고 기름져서 고추 농사가 잘된다고,
한 나무에서 못 따도 이백 개의 고추는 땄을 거라고 몇 번을 되풀이 자랑이다.

  묵은 풀을 갈퀴로 걷어내며 불을 놓은 후, 농협에 가서 대강의 밭 크기를
말하고 권하는 대로 20킬로그램짜리 퇴비 20포를 승용차에 실어 날랐다.
땅 주인이 가르쳐주기를, 퇴비를 고루 흩뿌리고 땅을 뒤집은 다음
고랑과 이랑을 만들고 흙덩이를 고른 후 씨앗을 심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하루갈이면 넉넉하리라 생각하고 첫 삽을 땅에 대고 밟았다.
삽날에 돌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와 쟁기를 튕겨내는 반동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이건 자갈돌의 수준이 아니라 준 바위급이다.

  덮인 흙을 호미로 긁어내어 돌멩이가 보이면 삽 끝을 밀어넣고
파헤쳐 손으로 꺼내기를 반복해야 했다. 밭둑에 쌓인 돌들이 수북하다.
땀이 흘러 등어리가 젖고 눈이 따갑다.

鋤禾日當午(서화일당오)-곡식을 김매는데 정오에 이르니
汗滴田中土(한적전중토)-땀이 흘러 밭의 흙을 적시는 구나
誰知盤中鐥(수지반중선)-누가 알리요 밥상 위에 차려진 것들이
粒粒皆辛苦(입입개신고)-알갱이 하나하나마다 노고(勞苦)가
                                  배어있다는 것을

라는 도 연명(귀거래사)의 시구에 지금 나의 상황과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람이 옥수수와 맺은 인연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마야문명 유적지에서도
옥수수가 나왔고, 곡식을 재배하지 않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도 옥수수만은
예외였다고 한다. 1983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바버라 맥클린턱은 1940년
후반 옥수수를 연구하는 도중 처음으로 유전자가 이동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로 인해 인간 생명의 비밀을 푸는 ‘게놈’ 지도 완성을 앞당기게 되었다.
경북농대의 김 순권박사는 수퍼 옥수수를 개발하여 이북에 재배기술을
전수하러 철통같은 빗장을 풀고 여러 번 방북을 하였다.

  주저앉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밭에 땀을 뿌리며 돌짝 밭을 고르는
이유는 지난여름의 옥수수 맛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큰 오라버니가 갓 찐 따끈따끈한 옥수수를 가져오셨다.
말랑거리는 알갱이가 터지며 씹히는 혀끝의 감촉, 순수함 그 자체로
달콤 고소한 풍미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 황홀한 맛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서라면 이만한 고통쯤은 참아내야 한다.

  여름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청해 놓고, 푹푹 김이 오르는
솥 안에서 잘 익은 옥수수를 꺼내 함께 먹고 싶다. 기존에 먹었던
옥수수와 얼마나 다른지를 경험하는 그 놀라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즐기겠다.
그리고는 그 차이를 음미하며 이 수고의 순간을 이야기 하리라.

  어쩌면 옥수수가 던진 미끼를 물었는지도 모른다. 『욕망의 식물학』을
쓴 마이클 폴란에 의하면 식물로 인해 얻어지는 과일이나 뿌리 혹은 꽃의
화려함이나 냄새는 인간의 눈에 들기 위한 식물의 책략이라고 한다.
불과 만 년 전만 해도 들판 한 구석의 잡초에 불과했던 벼, 보리, 밀
등이 막강한 식물군으로 자리 잡은 배경은 오로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들이 상대방의 두뇌를
이용하여 스스로의 유전자마저 갈아 치우며 번식한다.

  강원도 찰 옥시기(강원도에서 옥수수를 일컫는 말)를 골라 씨로 선택하고,
충분한 거름을 넣고, 뿌리가 잘 뻗도록 돌을 파내고, 잡초를 뽑는 작업은
농부인 내가 주체가 되어 하는 일이다. 내용이야 어떻든 식물에게 코 꿰서
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의 노고보다는 이 옥수수를
맛보고 ‘기가 막히다’ 고 공감하는 친구가 생긴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둔다.
어쩌면 내년부터는 그들이 자청하여 지금의 이 힘든 노동을 하지 않을까.

  묘액대(猫頟大)의 밭을 경작하며 농민전쟁의 발생 원인도 생각해 보았다.
열 마지기 논배미가 반달만큼 남았다는 농부가도 의미를 되새기며 흥얼거렸다.
소농장의 비애도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자니
막걸 리가 생각났다. 점심을 먹으로 집으로 갔다 왔다 하면 시간 낭비가 많아
밭가에 앉아 먹는 새참이 그럴싸하다는 생각을 했다. 밭일하다 말고
부엌일을 하려니 늘 하던 노릇인데 손이 설다. 내손으로 말고 다른
아낙이 차려주는 밥상이 받고 싶다.

  일을 시작한지 열이레 만에 씨 뿌릴 밭이 완성되었다. 해 뜨는
방향을 고려하여 이랑을 내고, 다 자란 옥수수의 잎새를 요량하여
고랑과 고랑의 사이를 80센티미터로 했다. 출발선에 선 달리기 선수처럼
긴장된 마음으로 옥수수 씨앗이 든 자루를 손에 들고 밭머리에 섰다.

  30센티미터 간격으로 하나하나씩 씨를 놓고 씨앗의 1.5배의 두께로
살짝 흙을 덮었다. 심은 지 100일이면 먹는다니까 열흘 간격으로 세 번에
나눠 심기로 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을 부르려면 옥수수의
여무는 시기를 조정하는 게 좋을 듯해서다.

  심는 작업은 쉽게 간단히 끝났다. 밭을 만드는 과정에 비하면 허망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씨 뿌린 새벽은 옅은 안개를 드리웠다.
누가 불을 놓았는지 산에 진달래가 타오른다. 나는 씨를 심었을 뿐,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 맺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니다. 여름이 되어
옥수수가 여물면, 청하는 편지 대신 김 상용님의 시한 편을 띄우려 한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르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