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나이

  그날 꽃집의 문을 처음 들어 온 사람은 어떤 아주머니였다.
수수한 옷차림에 별다른 특징이 눈에 띄지 않아 다시 만나도
기억이 날 것 같지 않은 그런 모습이다.
아침에 오는 사람들은 대개 학생이거나 젊은 회사원인 경우가
많은데 조금은 의외다. 급히 꽃을 쓸 일이 생겼나 하고 짐작을
했는데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꽃을 살피더니 장미꽃 55송이를 고른다.
아주 탐스러운 빨강색 수경 장미다. 박스에 담는 꽃 포장을 선택하고
리본에는 “축 생일”이라고 써서 배달을 부탁한다.
받을 분의 주소, 이름, 전화번호를 적고 나서 보내는 사람의

  성명과 연락처를 물었다. 대답을 회피한다. 누가 보냈는지는 받는 사람에게
일릴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받을 분에겐 비밀로 하더라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하니까 가르쳐 달라고 했다.
  
  누가 보냈는지 밝히지 않으면 꽃을 받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 불가피하게 배달을 못하게 될 때를 대비해서 보내는 사람의 연락처를
반드시 알아놓아야 한다.

  자세한 설명을 해드려도 대답은 마찬가지다. 본인이 직접 꽃가게에
연락을 하여 배달 유무를 알아 볼테니까 염려 말라고 한다. 상대방에서
굳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겠다는데야 우린들 도리가 없다.

수표를 내놓는다. 뒷면에 이서를 받으려고 주민등록증을 대조했다.
간 아주머니를 다시 한 번 찬찬히 훑어 볼 수밖에 없었다.

  꽃 선물을 받을 분은 분명 아주머니 본인이었다. 나의 의문이 당연하다는 듯
그녀는 조용히 미소 띈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본인이 받을 꽃인데
무슨 배달 확인 전화가 필요했으랴.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궁금증을 안겨주려는 듯 말없이 돌아서 나가는
그녀는 들어올 때와는 달리 강한 인상을 남겨 놓았다. 그냥 웃기만 한 까닭이 뭘까.

  언젠가 젊은 남자가 꽃을 사면서 하는 말이 여자들은 왜 그렇게 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한다. 여자 친구를
문하면서 꽃을 사 가지고 갔는데 그 어머니가 어찌나 반색을 하며
좋아하는지 차마 딸에게 주는 꽃이라는 말을 못했노라 한다.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이분도 딸이 받는 꽃다발이
부러웠었는지도 모른다. 한창때는 예쁘다는 소리도 들었음직한데
꽃 선물 한 번 받지 못하고 사는 자신의 모습을 회상했을 것이다.

나버린 젊음이 아쉽든 차에 잠재되어 있던 색깔 있는 감성이 중년의
허무를 뚫고 분출하였는지도 모르겠다. 한아름 사서 안고 걸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서 받는 꽃이 기분을 더 황홀하게 고조시킬 것
았을 것이다. 생일을 기억하고 보내줄만한 사람도 없기에 꽃집에
부탁해서라도 받고 싶었을지 누가 알랴.

  아니면 정반대로 이 여인은 해마다 생일이면 꽃을 받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금슬 좋은 부부여서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며 살았다고 하자.
남편은 바깥 생활에 바빠 아내와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기다가 생일이 되어 그 마음을 한아름의 장미로 표현하였을 것이다.

  여자는 그때마다 뜻밖인 듯 감격하여 꽃에 얼굴을 묻고 향기를 들이마시고
감탄을 한다. 매일 화병의 물을 갈아준다. 남편이 자신을 그 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더 소중하다.

  수명이 다 한 꽃도 버리지 않는다. 말려 두고 바라보며 일년 내내 행복하다.
그런데 올해는 생일 꽃을 받을 수가 없다. 그분이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것이다. 남편이 살아 있는 듯 느끼고 싶고, 사랑하는 남편이 보낸 꽃인 양
집에 앉아 받고 싶었는가.

  내가 만약 상상 속의 그림같이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다면 홀로
백수의 여생을 외롭게 산다 해도 감사하다. 아름다운 추억만 가지고도
넉넉한 마음으로 살 것 같다. 인도 여인네의 풍습처럼 남편이 죽어
순장을 당해야 한 대도 기꺼이 따랐을지 모른다. 55송이의 장미, 55살 1941년생이다.

  어설프나마 경로의 대접도 받지 못하는 마지막 중년이다.
남자 나이 그 정도면 지나온 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고 하지만 여자는 아니다.
우리 시대 그 여자 정도의 나이 또래는 더욱 아니다.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다시 6.25 등등 민족의 수난을 고스란히 겪은 나이다.

  이산가족 찾기에 제일 많이 나오고 제일 서럽게 우는 나이도 그 또래다.
피난길에 딸은 귀찮은 존재다. 없어서 굶어 죽을지언정 아들은 데리고
가지만 딸은 버리거나 양녀나 식모로 주기 일쑤였다. 어찌하여 유기는
면했다 쳐도 오빠나, 남동생을 위한 희생이 뒤따랐다.

  수제비 국물 속의 멸치 꽁뎅이라도 극성스럽게 건져먹고 눈칫밥으로
살아남은 잡초처럼 질기고 강한 여자들이다. 다행이 환경이 좀 나아서
구박도 받지 않고 교육의 기회를 가졌던 여자라 해도 사회 분위기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대부분 억척스럽게 살았다.

  물질이든 문명이든 누리고 산 시대가 아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자식 교육 시키려고 무섭게 살림 일구며 산 사람들이다. 시부모와의
갈등이 운명인 양 체념한 상태로 사는 이가 있는가 하면, 노인네의
병 수발로 자신의 생활이 없어져 버린 사람도 그 연령층이 거의 대부분이다.

  자식에게는 헌신적이어야 하고, 부모에게는 발목 잡힌 마지막
불모의 세대가 아닐까. 정신없이 밀어닥치며 변하는 상황에 대처하지도
못하고 자신을 추스르고 지난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X세대가 제멋대로인 것은 나름대로 문화로 인정하고 노인층은 전통적인
경노 사상의 보호를 받는데, 이 50대 연령층은 그 어느 것에도 기댈 데가 없다.
돈 좀 벌어서 보고 듣던 대로 해보면 졸부라서 써보질 못해서 인색하다 한다.
젊은 세대의 가치관 부재도 지금의 50대가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탓이고
사회의 모든 부조리도 중년층의 잘못이다. 성장기에 받았던 홀대가
지금도 계속되는 셈이다.

  꽃으로 치면 국화꽃이다. 시에도 있듯이 봄부터 소쩍새는 피나게 우는데
먹구름 천둥을 견디고 나서 의연히 꽃을 피운다. 가을에야 꽃잎을 열어
서리를 맞으며 피는 꽃이다. 만인의 사랑을 받는 5월의 장미 같은 어여쁨도 없고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처럼 깨끗하지도 못하다.

  향기라야 달콤함을 멀리한 약초 같은 냄새뿐, 진딧물이 극성을 부리고,
된서리가 내려 잎이 다 말라 버린 서걱이는 바람 속에서도 여전히 꽃을 피운채다.  
머지않아 눈보라 매서운 겨울이 올 것을 대비해 꽃잎을 떨구며 다음해를 준
비해도 되련만 오긴지 끈기안지 그냥 버티고 있다가 추위를 견디지 못해 말라버리고 만다.

  타인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생, 관심도 받지 못하는 중년의 여인,
자기 자신에게 보내지 않으면 꽃 한 송이 받을 일 없는 이 땅의 여자들,
스스로를 사랑하는 국화꽃 나이의 여인에게 한아름 꽃다발을 정성껏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