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들


  <花曜日>은 꽃 가게 이름이다. 여기서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매일이 꽃 요일이다.
눈이 크고 키가 훌쩍한 미남형의 청년이 문을 밀고 들어온다. 군말 없이 이러이러한
꽃바구니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만 한다. 그리고는 밖을 향해 돌아 서서 길거리의
흐름만을 바라보고 있다.
  
  보통의 경우는 요구도 많고 질문도 많다. 꽃바구니의 크기는, 장미는 몇 송이나,
색깔은 화려하게 혹은 고상하게, 그런데 이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다. 없을 뿐만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 보인다. 뭔가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전해온다.

  좀처럼 입을 열 것 같지 않다. 용도를 알아야 그것에 맞게 만들 수 있다며 어디에
쓸 것인지를 물었다. 병원 영안실에 같다 놓을 것이라고 한다.
물을 수밖에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후회가 된다.

  꽃집을 연 지도 4년이 지났다. 그윽한 향기 속에서 고상한 사람들을 위해 예술 하듯
꽃이나 만지고 있으니 남 보기에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생각했는데, 주면서 기분 좋고
받아서 황홀한 선물, 그런 것 중의 하나가 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꽃을
주고받는 경우는 흔히들 좋은 것만 연상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영원한 약속으로, 연인끼리 애정의 징표로,
이별도 아쉬움을 남기는 이별일 때, 액수로 환산할 수 없는
감사의 표시 등등. 하지만 이렇게 슬픔의 표시도 꽃으로 나타내야 할 때가 있다.

  오라버니 한 분이 花요일 꽃가게에 들렀다가 내 일하는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내 두르신다. 애들 말대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꽃집을 하면 우아한 모습으로
예쁜 꽃이나 골라 주는 것인 줄 알았다고 하신다.

하긴 나도 꽃집을 하기 전에는 그럴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몸 고생은 젖혀 두고 손님의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정말 귀여운 아이였다고 한다. 백혈병을 앓고 있었는데 조금 전에 저 세상으로
보내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생 활 보호대상자였다는 것이다.
여러 아이째 보내지만 이 아이처럼 가슴 아플 수가 없다고 한다.

  투병을 하다가 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보기에 처절하고 가슴 아프지만 백혈병은
특히 더 그렇다. 백혈병에는 소아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발병 초기에 부모들의
놀램과 당황에서부터 약물 치료와 골수 이식, 수술 실패, 다시 재발, 또 입원을
계속하는 동안 애들도 두려움과 절망 좌절을 거치며 인생을 알아 간다.
영리한 아이들은 어른들의 아픔까지 헤아려 자신의 절망을 숨기고 일부러
어리광을 부리며 명랑을 가장하기도 한다.

  지금 이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짜리다. 자기의 갈 때를 어찌 알았는지
학교 친구와 엄마, 그리고 담당 의사를 병실로 불렀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유언을 한다. 친구들에게는 자기를 영원히 잊지 말라는 당부를,
의사 선생님에게는 애를 쓰셨는데 병이 낮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고,
엄마 손을 잡고는 누가 우리엄마에게 돈 좀 안 갖다 주나 라고 말하며
한숨을 푹 쉬더란다.

커서 돈을 많이 벌어 전부 엄마를 드리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던
아이였다. 돈이 없어 검사를 받지 못하거나 약을 타지
못할 때 원무과에서 울며 하소연하던 어머니가 떠올라서 그랬을 것이다.

  어린것의 영정 앞에 놓을 꽃을 내 손으로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손끝이 헛갈리고 눈앞이 흐려온다. 조그만 것이 자신의
생명이 다 한 것을 알고 얼마나 기막힌 심정이었을까. 친구와 어머니,
의사 선생님, 주변의 모두들은 그냥 살아가는데….

마지막 순간이 오자 청년의 옷자락을 부여잡더니 여직까지의
의연함은 간데없이  “죽기 싫어” “살고 싶어”소리쳐 외치며
눈물을 흘리더니 숨을 거두더라고 한다.  젊은이가 붉어진 눈자위를 훔친다.
나도 눈물을 닦는다.

그럴테지. 살아야 고작 10년의 세월이었을 텐데 죽음이 얼마나 두려웠으랴.
80이 넘어 명을 거두면서도 무서워 눈을 못 감고 발버둥을 치며 간다는데.

  꽃바구니를 만들면서도 어쩐지 그 아이의 죽음에 한 몫 거든 듯 살아 있음이
괜스레 죄스럽다. 꽃바구니의 값이 얼마짜리이며 어느 정도의 꽃을 꽂아야
타산이 맞는지의 개념이 이미 나에겐 없다.

싱싱하며 가장 예쁘게 핀 꽃만을 골라 꽂는다. 영안실에 가는 꽃은 흰색이나
노랑이란 사회적 통념도 소용없다.
죽은 냄새가 밴 것처럼 뻣뻣하게 억세 보이는 국화는 싫다. 눈동자가 맑고
초롱한 아이에게는 아무리 장례에 쓰이는 꽃이라지만 어울리지 않는다.

  장난기 어린 통통한 볼을 닮은 연분홍 장미에, 애기 숨결인 듯 조용한
안개를 곁들인다. 검은 색은 너무 슬퍼 차마 쓸 수가 없다. 보라색으로 리본을 접었다.
상관없겠냐는 뜻으로 그 청년을 쳐다보니,  아무 말 없이 메모지 한편에“XX에게”
또 한편에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써 놓는다.

그대로 써서 리본을 양쪽으로 늘어뜨려 달라고 한다. 謹弔나 弔意라는 글자 대신
“사랑하는 XX를 슬픔 속에 보내며” 또는 “天國 入城 聖徒 XX” 라는 등등으로
쓰는 경우는 있다. 그리고 다른 한 쪽 편에는 보내는 사람의 이름이나 단체 명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행복한 사람들”이라니….

  아직은 살아남은 자라서 행복한 사람이란 말인가. 그럴 리는 없다. 평소 상대적인
비교에 행복감에 익숙해 있다 해도 꽃으로 명복을 비는 정서를 지닌 사람이,
더구나 어린것의 죽음에 견주어 그러하리라고는 좀 심한  비약일 것이다.

  내세에 대한 어떤 확신이 있어 행복한 사람들이란 것인가. 조의용(弔意用)
꽃바구니에는 어울리지 않는 문구다. 하지만 정성 들여 글씨를 써 주었다.
정년이 가고 난 뒤 한동안 일손을 잡지 못했다. 그 아이의 죽음도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몇 주 뒤 그 청년이 다시 우리 花요일에 왔다. 지난번처럼 꽃바구니를
부탁하고 또 말이 없다. 이번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체한 듯 가슴이
멍청해져서 깊은 숨을 소리 나게 내쉬며 꽃을 꽂았다. XX에게 라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다른 한쪽은 지난번과 같이 “행복한 사람들”이다.

먹물을 찍어 글씨를 쓰려던 붓을 다시 내려놓았다. 아이를 장사 지내려는
마당에 행복한 사람들은 뭘까. 사적인 것에 관해서 스스로 말하기 전엔 묻지 않고
말하지 않는 주의로 장사를 하지만 이번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청년은 가수였다. 매스컴 타며 무대에 서는 가수가 아니다.
길거리에서 모금함을 앞에 놓고 기타 치며 노래하는 사람이다.
생활 보호 대상자로서 소아 백혈병에 걸린 아동들을 돕는다.

  대개 그런 아이는 예후(豫後)가 좋지 않다. 생활이 어려운 데다가
편부나, 편모슬하라서 아이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어 병의 발견이 늦는다.
뿐더러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다. 이 사람들과 연결이 되었을 때는
이미 치료시기를 넘긴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소아 환자와 연결이 되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 기관이나 자선 단체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때로는 독지가를 물색하기도 하지만 만나기가 쉽지 않다.
처음엔 직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르바이트로 거리에서 노래해서
모금한 돈으로는 아이들 치료비가 턱없이 모자랐다. 노래하는 시간을
자꾸 늘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가수는 직업이 되었다.

  한 두 입 건너 소문이 나서 아픈 아이들은 자꾸 도움을 청하는데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아 백혈병 환자 돕기 후원회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병들어 죽어가는 불행한 아이들에게 행복을 되찾아 주려는
사람들의 모임.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 청년 앞에 서 있기가 부끄럽다. 액수보다 더 많은 꽃을 꽂았다 해서,
싱싱하고 예쁜 꽃만을 고라 꽂았다 해서 죽은 그 아이를 동정하여 뭔가
베풀려 했다는 아니 그 젊은이의 슬픔과 키를 맞추려 한 허세가 부끄럽다.
감히 어떻게 그의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으랴.
치료하던 아이들이 저 세상으로 갈 때마다 그는 花요일에 온다.
오늘도 여전히 창밖에 시선이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