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 게시판담당 : 윤순영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 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도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와 마주 서는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 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 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어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난,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
청록파 시인 박 두진 지음
아직 겨울의 한가운데 있는것 같은데... 이 모퉁이만 지나면 그곳에 봄이 와 있는듯...
복사꽃도 살구꽃도 만발하게 피어날 봄이 코앞에 올것만 같다..
아직 몸도 성치 않으면서... 부지런히 음악과 더불어 좋은글 찾아 올리고...
그래서 귀도 즐겁고... 이 그림을 보니 이제 봄맞이를 서둘러야 할것 같다..
그동안 계시판을 책임졌던 금순이가 부담을 많이 가졌을것 같은데..
은희야... 널랑은 부담 갖지 말고 쉬엄쉬엄 해라..
은숙아~
반갑데이~
그렇찮아도 글 올리다 네 세시봉 동영상 올린거 보곤
에고....반가워라 하는중 손주녀석 ....할머니~~~~....하고 달려와서리
지가 좋아하는 핀구랑....토마스기차 보여달라구 해서
도중 하차 혔다.
내가 요즈음 하루 두차례 이녀석한테 꼼짝없이 친구가 되어야허네.
어제는 산이녀석 치과 치료 하러가는데 손녀 봐주랴.......혼났네.
얼른 다리나아서 살림 하는게 훨 편할 것 같다...에고고....
책 본다고 펼쳐놓고는 처음으로 그냥 떨어져서 자버렸네.
그래도 집 밖 출입을 안하니 글 올리는거 그나마 하게 되는거 같구나
네가 미국 여행 같이 간다니 듣던중 제일로 반갑다.
일정 끝낸후 내친김에 며칠 더 시간 말미를 낼 수 있다면 좋겠구나.........다시 연락하마.
우리나라 식민지 시절에 써놓았던 시를
해방 그 이듬해인 46년에 박 두진 선 생님께서 발표 하신
유명한 시 인데...................
한줄 한줄 다 시귀절이 의미심장한 뜻을 내포하고 있단다.
나 개인적으로는 시를 자세하게 설명하는건 재미없어 하지만...........시대의 시이니 가져와보마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의 오오래 정드리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도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 복사꽃, 살구꽃, 앵도꽃, 오얏꽃 = 조국의 광복 상징 * 일러라 - 명령형 → 화자의 적극적 의지(유사한 통사구조 반복) * 너의 오오래 정드리고 살다 간 집: 민족의 오랜 삶의 터전 * 짓밟힌 울타리: 빼앗긴 조국 *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 평화로움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 다섯 뭍과, 여섯 바다: 오대륙 육대양 = 전세계 * 철이: 일제의 탄압에 의해 유랑하던 우리 민족(대유법)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 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 서른 = 서러운 → 감정 * 어어이 어어이: 의성어 → 격정적 분위기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여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난,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 별들: 일제의 탄압으로 흩어진 동포, 민족 * 순이 = 철이 = 흩어졌던 동포 눈물과 피와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 눈물: 광복의 기쁨 * 피: 식민지 시대의 고통 * 푸른 깃발: 희망 * 비둘기: 평화의 관습적 상징 * 꽃다발: 영광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어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뒹굴어 보자. * 보리밭: 생명력 * 종달새: 광복을 찾은 기쁨 * 늴늴늴: 의성어 / 두둥싯 두둥실: 의태어 갈래: 자유시, 서정시 성격: 낭만적, 열정적, 미래 지향적 운율: 내재율 어조: 열정적이면서 빠른 호흡이 느껴지는 강렬한 목소리 제재: 광복의 날 주제: 민족 공동체의 평화로웠던 삶을 회복하려는 간절한 소망 특징: - 행의 구분이 없음(행의 길이를 늘여 한 연이 되게함) → 비교적 빠른 리듬감 → 감정 강화 - 자연물을 시상 전개의 매개물로 하여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간절히 노래 - 유음과 비음의 반복적 사용으로 일정한 리듬감 얻음 - 쉼표의 잦은 사용 - 의성어, 의태어(음성 상징어) 사용 ?
??은숙아~
방가~방가~ 너네들은 어쩜 그리도 시적인 표현을 잘 하누!!
주눅 들어 살짝 드려다만 보고 나가려다 인사하네!
얼마전에 먼저 방지기, 금순이의 글도 하도 애잔하고 심금을 울리는 표현이 많아
그 고운 마음씨를 보는 것 같았는데........
정말!은희가 올린 화사한 봄꽃을 보니 대문앞에 봄이 서성대고 있는 거 같다!!!
아직도 겨울이 우리 주위를 떠나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말야.......
은숙아~ 잘 지내고 있지?여전히 듬직한 부녀회장직 열심히 수행하고!
즐거운 나날 되거라!올해도 한결같이~~~~~
은희언니!
전 예전에 시 속에 함축되어 있는 내용을 생각하고 음미하는 게 싫어서 산문만을 좋아했는데
나이드니까 점점 시가 좋아지네요.
수다스러운 것보다 엑기스처럼 많은 걸 함축하고 있는 시가 멋있어요.
더구나 언니의 자상하신 해설까지 곁들이니 쉽고요.
희순언니 말씀처럼 저도 문학하는 분들 앞에가면 공연히 주눅 들고 하는데
요새는 뻔뻔해져서 그냥 제 식대로 수다를 떨어요.
저도 작은 부상이지만 다리를 아끼다보니 여기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은 점도 있어요.
참 세상일이란 모든 게 양면이 있네요.
은희야!!
나야 말로 세시봉을 올리고 보니 네 글이 올라왔길래 대충 읽어 보고
얼른 댓글 달고 나갔는데... 다시 자세하게 읽어 보니.. 그렇게 뜻깊은 시였구나..
그리고 미국행은 말이야.. 대처 여사 (희순이의 표현대로) 가 꼭 같이 가자고 전화를 해서
애라.. 모르겠다 하고 간다고 했는데... 2월 말에 정리해야 하는 일에 따라서..
4월 말에 시간을 낼수 없을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거든... 자꾸 뺄라고 이유를 대는것 같기도 하고..
너도 권하고... 순영이도 제차 전화를 하는데... 내가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데... 나도 기쁜 생각에...
다만 지금은 순영이 말대로 2월 말에 일이 제대로 정리가 되어
홀가분하게 같이 여행하고 돌아 올수 있으면 좋겠다..
희순아~..
가끔 들어와서 글을 한번씩 읽기 때문에... 손주 때문에 또 합창 지휘때문에
바쁘게 지내고 있는걸 알고 있어..
저 아래 다방이야기도 읽고 나도 한참을 웃었다..
배다리.. 싸리재... 모두 우리에게는 정겨운 장소들이지...
그런데... 짐 다방.. 은성다방은.. 실은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장소인것 같아...
그때 우리들이 다니던 다방은 동인천 역의 흙 다방하고...
경동 네거리에 태방다방이 아니였니?
짐 다방 은성다방은 우리들이 모두 인천하고는 멀어졌을때 생긴 다방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또 아마 너는 지금은 모두 생각이 안날지도 모르는 일 하나...
내가 경항 신문사 비서실에 근무 할때인데...
그때 경향 신문 사장 비서실에 이애순의 형부가 비서 실장이셨고..
애순이 형부의 소개로 사장 비서실에 근무할 때인데...
신문사에서 테너 독창회를 계획하고... 당시 독일에서는 꽤 유명한 테너 가수가
공연을 하러 왔는데... 반주자가 딸아올수 없다고 해서 당시 편집 국장이던 분이
피아노 잘치는 사람을 알고 있느냐고 하길래.... 내가 아는 피아노 치는 사람은
너 밖에 없었거든... 그래서 그날 서울에서 퇴근을 하면서.... 너희집 약방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날 너는 못 만나고... 그후에 전화 연락이 되어 네가 우리 신문사에 왔었고...
아마도 연습날을 잡고 그랬던것 같은데...
그런데... 그후 이튿날에 반주자가 뒤늦게 참석한다는 연락이 와서...
결국 네가 반주하는 일은 없었고... 다만 내가 너에게 표를 보내서...
네가 시민회관에 왔던것을 내가 만난일이 있었는데....
난 그때 너에게 너무 미안해 했던 기억이 있거든...
넌 까마득히 생각이 안나는 일일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난 그때 엄청 미안해서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단다...
그리고 대처여사 순영아...
네말대로 일이 잘 되어서... 4월말 홀가분하게
여행을 다녀왔으면 정말 좋겠다...
네가 수고를 너무 많이 하는것 같아...
그래도 네가 기뿐 마음으로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할께...
???그럼, 은숙아!!!
이거 누가 시켜서는 못한다.ㅎㅎㅎ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일하는거 맞아.
모든 일이 잘 될꺼야.
??은숙아~
신문사 주최 독창회에~~~난 전혀 생각이 안나는 일인데???그런 일이 있었던가?~~~
왜 기억에 없는걸까?.....쪼끔도 기억이 안 나는데....나 큰일났다!
부분적 기억상실에 걸린 거 아닌가? 염려되네~~~
며칠전 친정형제들끼리의 점심에서 밑의 남동생이 옛날 일을 떠올리는데~
신포시장에 가 찬거리 좀 사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받고 나가다가 집앞에서 돈을 흘렸나봐~
동생이 우연히 줏었다는데 난 심부름완수를 못했겠지~~
화 나신 엄마한테 엄청 야단을 맞드라는데! 난 전혀 기억에 없고~'그런 일이 언제 있었냐?'했으니~ㅉㅉ
넌 꼭 갔으면 한다! 4월여행에~~~~~
'흙'다방이었니? 아파트 살때 바로 옆집 아저씨가 클래식을 좋아하는 분이었는데 (인천분이고)
옛일을 떠올리시면서 최영섭선생님의 해설로 음악감상도 규칙적으로 몇번 경험한 다방이 있었다하는데~
그럼 그 다방인가??난 아무튼 자신없다ㅎㅎㅎ
이나저나 동인천주변~ 내동~경동사거리~ 다 정감가는 곳이다! 인천의 명동거리아니니.......
희순아~..
내가 처음부터 너는 생각나지 않을거라 했잖아..
그게 말이야... 네게는 대수롭지 않았던 일이니까.. 잊어버리는것이 당연해..
난 그때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가 있다는것이 신문사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웠고..
네가 반주를 해 줬으면 하고 너보다는 내가 더 바랐던 일이였을거야..
그런데.. 그 일이 틀어지니까... 왠지 네게 많이 미안했고... 그래서 잊을수가 없었지..
또 그 테너 가수가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졌던 인물이라면 너도 안 잊었을수도 있었겠지만...
독일에서는 꽤 유명한 가수라고는 했는데... 우리에게는 전혀 생소한 이름이 였고..
네게는 그 일이 기억 날 만큼 큰 사건이 아니였다는 증거지..
40여년이나 지난 사소한 일 가지고 기억 상실 이야기 할 것 까지는 없다는걸 말하는거야..
나도 70년도 초에 인천을 떠나서 그후에 결혼해서 부산에 와서 살면서...
나 살던 동네와 매일 걸어서 등교하던 배다리와 중앙시장 동인천역
그리고 6년이나 다니던 학교 전동.. 홍여문.. 내동.. 경동.. 용동.. 신포시장 등등등...
지금은 없어졌겠지만... 음식점 화선장. 미락.. 그리고 중국집 공화춘...
또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도 한번은 꼭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왜 그걸 한번도 못하는지...
아직 친정이 인천인데도... 인천을 떠난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어쩌다 인천에 가면... 달라진 인천모습에 어리둥절 하기만 해..
그래도 내 고향인데 말이야...
은숙아~
될 수 있음 네일이 잘 마무리 지어졌으면 싶구나..........
친구들 모두들 가고싶은 마음은 있어도 여러 사정이 생겨
간다고 제일 먼저 다짐하던 친구들도 틀어지기도 하고 하는걸 보면
큰 사건이랄 만한 일이 아니면 한 열흘쯤으로 일들을 미루고 할 수 있게 단도리를
하면 어떨가 싶다.
미국에 친구 옥녀도 아주 힘들게 지금 체질개선 프로그램으로 특별한 코스로
하는 중요한 일이 있는데도 그냥 친구들과 함께 여행한다는 즐거움으로
그 사실을 아예 잊고 있었다는구나..........어젠가 동생이 그 프로그램은 어찌 하려고
여행을 간다고 그러우" 했다는거 아니냐...그때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네....참말로다가서는....
몇달전서부터 이야기가 오갔는데 오히려 내가 다리다쳐 어찌 오느냐고 걱정했거든
여행 확정할때도 잠을 못자고 어제도 한숨도 잠을 못 이루었다네.........
나도 고민하다 묘수를 순영이랑 짰는데...순영이는 안되면 되게하라...역시...
좀 힘들더라도 조금더 우리가 신경쓰면 될것 아닌가 한다.
실은 우리 산이할아버지한테는 가기 며칠전 이야기 하려했는데
같이 가면 그곳 옥녀 서방님도 좋아하겠지만 내가 자유롭지 못하게되어서 말야
그런데 옥녀친구 생각해서 같이가자했다..........좋아하더라구.....
될 수 있으면 이젠 장거리여행도 힘들 나이가 되어가니 같이 다니려한다.
여류 문인들과도 종종 여행다니고 했어서 우리친구들과 가는 여행도 거부감이 없거든
너도 너네 식구들과 다니는 부부여행말고 한번 생각해보면 어떠하겠니
내 욕심이 과하다면 네 장거리출타에 너그러우시다니 너라도 꼭 함께 하자.
여튼 일 마무리 잘되길 바란다.
??명옥씨~
식목일이 시아버지 제삿날이라~
음력으로 돌려? 어쩌지? 하고 있네~~~
어~! 봄날에 명옥이 창작글이 올라오고 있네! 씨리즈로~~열심히 볼께요!
언제 다리 다친거야? 몰랐어! 조심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명옥이 모습이 너무 보기 좋으네!!!
명옥아~
이야기 하듯 쓰면서 재미있고 글 전개가 물 흐르듯 막힘없이
지루하지않게 잘 쓰길래 그리 표현 했는데
내가 너무 아는체를 했는감.......
현재 우리가 쓰는 글들이 구어체이지만
그중 더 세분화 한다면 대화하듯 쓰는 친근미 넘치는 글이라서 그리 표현했단다.
나도 입시 때 국어공부 할때 말고는 구분짓지 않고 딱히 책을 읽거나 또 글을 써도
의식하지 않고 읽고 쓰곤 했는데.....................
내가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쓴다고 하니까 공부 좀 하라고 책을 건네 주어서
가끔 읽어 보곤했네......
물론 재미가 없는데 참고는 되데.
결론은 상관없이 내맘 대로 쓰고 싶으면 쓰고 말고싶으면 말것이고.
어차피 사람들이 만든 언어고 글자이고 하지않나 하기도 하고
뒤늦게 정색을 하고 공부를 하기 싫고...ㅎㅎㅎ.........뭐 프로가 될것도 아닌데 하고 말이지
언니가 자상하고 체계적으로 설명을 해주시니까 도움이 됩니다.
저야 국문과도 아니고 글 쓰기에 대해서는 고교시절로 끝이니까요.
대학에선 졸업논문대신 졸업연주를 했으니까 논문도 써 본 적이 없구요
예전에 국어는 신기하게 공부안해도 거의 최고점을 받긴 했어요.
현대문 고문 문법할 것 없이 만점에 가까웠지요.
어릴 적에 책을 많이 읽은 게 국어에는 가장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대학시절에 여고동창 친구가 독서회도 데리고 가고 했지만
전 도저히 그들의 책읽기를 따라 갈 수가 없더라구요.
일주일에 주제가 된 한 권 겨우 읽어가면 그사람들은 몇 권씩이나 읽어 오는 거에요.
독서모임도 두개 세개 다니고....................................................
우리 피아노과야 그저 눈만 뜨면 연습하고 밤이면 음악회 가고 해야하니
시간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그런 곳에는 절대 안따라가고 혼자서 읽었지요.
그나마 나이가 드니까 눈이 피로해서 거의 못읽게 된 게 안타까워요.
그러고보면 음악 미술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문학쪽에도 끌리게 되는것같다.
우리친정집 큰 오라버니는 이제 79세가 되었는데 워낙 나이 차이가 많아서
어릴적에 나는 상대가 안 될 동생이였지.
그래서 영향을 아무래도 받았겠지 싶고 시집 와서도 또 그런 분위기에 살았고
그 오라버니 일찌기 청소년기에 문학에 발을 들여놓고 해서
서가에 수천권에 책을 가지고 있었거든...........
세계문학 서적이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못 보았는데 차츰 우리말 책들이
발간 되기 시작하면서 얻어 보곤했네.
큰 오라버니는 20대에 평론부분에서 박경리 씨는 소설 부분에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었지.
그 후에 관심을 갖고 박 경리 씨의 <김 약국의 딸들> 을 열심히 보았었다.
어릴적 뵌 박경리씨는 벨벳 치마저고리를 입고계셨는데
글을 쓰시는 분이시면서 미모도 출중 하시고 ............여성으로 사후에도 토지문화관도 남아있고
아마 앞으로도 몇분 안계실거지
우리 오라버니나 산이 할아버지 에게 향한 나의 마음은
양면성이 있어서 문학 하는일이 보기 좋기도 하다 아주 싫기도 하고 했다.
세상 사는일엔 좀 떨어져있는 사람들이라서.......
마악 산이가 와서 .....쓰다 말아야겄네.....나중에 기회가 또 닿으면...
김은희 선배님 그리고 여러 선배님께 인사드려요.
비엔나에 살고 있는 9기의 김옥인이에요.
선배님올리신 박두진 선생님의 시를 몇번이나 읽으며, 읊으며 깊은 뜻을 감미했어요.
시어와 싯귀 해석까지 올려주신 선배님의 자상하심에 감사드려요.
오늘 은희 선배님 오라버니얘기를 읽으며 가슴이 저립니다.
저에게는 4년터울의 오빠가 있었는데, 7년전에 하늘나라로 총총 떠났어요.
오빠가 인중,제고 다니며 빌려왔던 책들을 오빠자신의 시험시간이나 숙제때문에 못 읽는 것을
제가 초등시절 부터 읽으면서 문학이라는 세계를 접했었지요.
오빠는 생전에 미혼으로 평생 책과 더불어 살다가 떠났지요.
요즘도 오빠를 생각하면 저절로 그시절 청소년기로 돌아가며
아름답고,아쉬웠고, 안타까웠던 여러추억이 몽글몽글 솟아나지요.
인일여고시절 저의 시화집에 썼던 박두진 선생님의 글을 옮겨봅니다.
41년된 골동 스케치북이에요^^
해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 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빛이 싫여 달빛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빛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휠훨휠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에 앉아
위어이 위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
선배님들 오손 도손 지내시는데 껴든 것 같아 죄송해요.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이 넘치시기를 바래요.
옥인 후배~
홈피에서 간혹 옥인 후배의 이름을 보았지요.
이곳까지 찾아주어 반가워요
비엔나에서 살고 있군요. 유럽여행때 마다 비엔나엔 꼭 들렸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역사적인 장소에 가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도 즐거웠지만
늦은 저녁 예술의 도시 비엔나의 한껒 분위기에 젖어서
동행들과 우리나라 선술집에 몰려가듯 몰려가서
와인을 손잡이 달린 1000CC 잔으로 맥주 마시듯 마시면서
술집 악사들 연주에 맞추어 흥겹게 모두 합창하던 그 일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옥인후배의 풍부한 예술적 감성은
역사가 깊네요.
대부분의 예술가들의 삶이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엔 처연한 데가 있지요.
여고시절 시화집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또 반갑고
박두진 선생님의 시를 올려주어 고마웁기도 하고 해서
답례로 우리집 산이 할아버지의 첫 시집 " 배우일지" 에서 한편 올려볼게요
1980년 첫번 엮은 시집이고 이십대 후반에 쓴 글이지요.
나 자신도오랜만에 오늘 이 시집을 다시보면서 아주 깊은 감회가 서립니다.
.............배우 일지* 하나..............
내가 딛고 서있는 곳은 어디든
한 평 미만의 막오른 무대다.
한 밤중도 해가 뜨고
대 낮도 깊은 밤중이다.
비 밖에 서있어도 빗속에 있고
빗속에 서있어도 비 밖에 있다.
사랑을 모르면서도 사랑을 하고
사랑을 알면서도 사랑하지 못한다.
막이 내리면
분 칠 한 하루가 풀려내리는 어둠 사이로
히끗히끗 눈발이 흩날린다.
화장끼 없는 내 이마에 닿으면
몇 방울의 찬 이슬이 되는 뜬 웃음.
김은희 선배님께서 아끼시는 시를 황송한 마음으로 읽었어요.
산이 할아버님께서는 시인이시자 배우셨던분이시지요?
무대에 섰던 자만의 느낌이 강하게 전달되어옵니다.
감히 시에대해 여러글을 올리는것이 죄송해서 그만 쓸께요~~
선배님께서 비엔나에 오셨었어요?
제가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어서
이제는 태어나서 살었던 인천보다 더 긴세월이 되어가네요..
골목 골목 정이 들어 여기를 떠나기가 어려울거에요.
그러나 항상 고향과 고국의 모습을 슬라이드보듯 머리와 가슴속에 담고
이곳에서 보는 모든것과 대체하면서 그리워 하지요.
아마 그것은 고국이라는 개념이
제가 지냈던 그시절 전체가 녹여진것일거에요.
바로 젊은 날의 회상이 되는 것이겠지요.
다음에 오시게되면 연락 주세요.
좀더 친근한 곳으로 모시고 싶어요.
그리고 산이 할아버님 시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선배님앞에서 읊어 드릴께요 ^^
은희 언니랑 옥인 후배의 대화를 엿보니 역시 남다른 가계에서 나고 자란 분들이군요.
그야말로 역사가 깊네요.
저 위에 있는 박두진 씨의 시 "해" 를 보니 마치 성경말씀 같아요?
이사야 11장 6,7,8,절 에보면
6 :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양과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7 :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 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그냥 교과서에서 읽었을 때는 상당히 힘이 있는 시를 쓰시는 분 정도로만 알았지요.
난 뭐 아는 게 없어요.
옛날부터 이해력이 좀 떨어져서 함축된 내용보다는 소설하고도 논픽션을 좋아했어요. ㅎㅎㅎㅎ
멋있어요.
은희언니야 우리 왕언니시니까 잘 알지만 옥인후배를 알게 되서 참 자랑스러워요.
???옥인씨!!!!
너무 반가워요.
우리방에 잘 놀러 왔어요.
옥인씨야 너무 유명하니까, 홈피 친구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물론 나도 그 중의 한사람 이고요.
특히나 여행 좋아하는 나는 언젠가는 옥인씨 만나겠지 하고
별르고 있답니다. (나 혼자서.ㅎㅎㅎ)
여고 시절 썼던 시화집을 간직하고 있다니
참 놀라워요.
가보가 되겠어요.
그 하나로도 옥인씨의 성격을 충분히 알꺼 같은 기분이랍니다.
옥인씨!!!
좋은 음악하고 글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거 알죠?
윤순영 선배님!
시화집은 친정 아버지가 간직하고 계시다가
돌아가시기 몇달전 제가 한국 방문했을 때 (2001년) 저에게 도로 주셨어요.
아마도 다시는 저를 살아서 못 보실 줄을 그때 이미 알으셨나봐요.
제가 대학을 문학전공하려고 할때 반대했던 일이 두고 두고 미안하셨던것 같아요.
이제는 다 지나간 그 어린날이 오늘은 바로 어제처럼 느껴지네요.
그 시절은 시집구하기가 지금처럼 쉽지 않아
도서관에서 빌려와서는 스케치북에 옮겨서 두고 두고 보았지요.
독서 노트도 있는데요. 빌린 책을 반납하기전에 맘에 담을 문장을 옮겨놓기도 했었어요.
더 성장하고 세월이 흘러 저만의 서재가 있었는데
여기 비엔나 올때 못 가져온 손때묻은 그책들과 메모장이 아주 아쉬워요.
그래도 그때 가지고 왔던 몇권의 책들이 누렇게 변해 완전 골동품이 되었는데
지금도 두고 두고 읽으면서 세월의 정지됨을 느끼지요.
저의 소유책이니까 부담없이 책에다 적어 놓았던 저의 글들이 다시 살아나서 옛친구 만나듯이 반가워요.
아휴 쓰다보니 길어지네요.
선배님이 반겨주시니 고마워서 저절로 제가 가슴속 깊은 얘기을 했나봐요. ㅎㅎ
안녕히 계세요.
나는 특히 더.... 이즈음 출타를 안하고 칩거해서 그런가..............
지나간 것에 대해 더 애착을 가지고 가까이 하는거 같다.
서가에 꽂혀있는 수 많은 책들 중에서도
겉 표지도 누렇게 바랜 오래된 책을 꺼내서 펼쳐 보게된다.
오늘은 팔십년대에 평론집 한권을 읽다 청록파 시인 박 두진 선생님의
이 시를 만나게 되어.........오래전 살다 떠나온 시골 고향 같은 애잔함이 느껴져서
가져와 보았다.
이 시가 지닌 민족적인 큰 의미 말고도
그냥 소박하게 낭독이라도 한번 하면 아름답지 않을가 해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