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것 같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럽다면 저도 죽는걸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죽음에대한 생각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내가 아니고 마음이 나인데 육신을 죽이려 한다는겁니다.

 

마치 운전수가 죽겠다고 하면서 자기는 안죽고 차를 부수려 하는 거지요.

그러면 운전수는 안죽고 차만 망가지고 운전수 성질만 나빠진다는 얘기지요.

육신을 죽여도 마음이 죽지 않기 때문에 죽어도 마음은 성질만 나빠지는 거지요.

어느 종교도 육신이 죽는것은 말하여도 마음이 없어진다고 하지 않습니다.

육신이 죽으면 마음이 천당을 가느니 지옥을 가느니 하지 않슴니까?

그래서 그 마음 때문에 자살하면 죽어서 그는 더욱 안좋다는 얘기 입니다.

 

육신은 4년만 되어도 모든 세포가 바뀐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4년마다 육신이 죽는거나 같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어떤것이 진짜 죽는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마음이 죽는것이지요.

마음이 진정 죽는다면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고통이 자기 생각 때문에 온다는 것을 밝게 알아 지는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세상의 이치를 밝게 알아지고 행복한 앞날의 길도

밝게 알아지니 진정으로 죽는 길은 참으로 권장할 만한 일이지요.

 

이해를 돕기 위하여 원효대사님의 얘기를 곁들이 겠습니다.

어두운 저녁에 떡을 드시고 목이말라 물소리따라 내려가

물을 드시고 물맛이 좋아서 흡족한 마음으로 주무시고

아침에 어제드신 물생각이나서 그 자리에 찾아가보니

해골바가지가 있고 구더기가 우굴 우굴 한거예요.

그순간 구역질과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이 생기게 된거죠.

물은 똑같은 물이고 어제는 맛있었는데 지금은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해골 바가지는 옛부터 그자리에 그냥 있었고

스님를 괴롭히기 위해서 거기에 있었던것이 아니거든요.

해골바가지가 괴롭힌게 아니라 더럽다는 생각이 스님을 괴롭힌거예요.

그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속에서 모든것은 자세히 살펴보면

상대가 나를 괴롭히는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자신을 괴롭히는 거예요.

 

살아가면서 잘 적용이 안되는 것은 모든게 변화가 많아서 입니다.

그러나 찰라 찰라로 나누어서보면 해골바가지나 다름없지요.

우리가 원효대사님의 경험이 내경험이 되기 위해선 수행이 필요 합니다.

그러니 정신차려서 수행하는 길만이 자신을 자유롭게 만듬니다.

진정으로 죽읍시다.

진정으로 마음이 죽으면 참 자유와 행복한 앞날이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