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근시간에 차안에서 모 방송의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를 즐겨 들으며, 운전 중에 키득키득 혼자 웃은 적이 많다.

아래와 같은 사건이 동료교사에게 일어나서 방송국에 이 편지를 보냈건만
채택이 되지 않은 터라 여기에 살짝 공개합니다.


이 이야기는 동료교사 김샘의 이야기로 절대로 하지 말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를 늘 듣는 애청자로서
듣기만 하며 행복했던 고마움에 보답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김샘 입장에서 써서 보내는 것입니다. 김샘 미안해요. ~~


지난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위해 학교에 출근 하였습니다.

어제 새로 구입한 바퀴달린 의자에 앉다가
의자가 뒤로 밀리는 바람에 동그라지면서 꽁지뼈와 어깨 등 온 몸이 뻐근했지만,
초롱초롱한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점심식사 후에 몇몇 선생님들과 등나무 그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교무부장 선생님이 급하게 내려와,
“남편 긴급 전화요망! 010-xxxx-xxxx”라고 적힌 지를 건네주시며
빨리 전화해 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쪽지에 적힌 번호는 남편번호가 아니어서
고개를 갸우뚱 하며 순간적으로 이상한 생각이 엄습해왔습니다.


‘아니, 무슨 급박한 상황이길래 자기 핸드폰도 아니고 남의 번호로 전화를 하라는 거야? 혹시 자기가 연락도 못할 엄청난 교통사고인가????’


순간, 마시던 커피를 떨어뜨렸습니다.
우리는 결혼한 지 6개월 밖에 안되는 신혼이었거든요.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나는 슬리퍼를 신은 채 내리막 경사길에 세워둔 자동차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였습니다.

좀 전까지 뻐근했던 꽁지뼈의 아픔은 싹 잊어버린 채...

핸드폰을 배터리 충전한다고 차에다 놓아두었던 것입니다. 
낯모르는 번호가 여러 차례 부재 중 통화로 찍혀있었습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허겁지겁 메모지의 번호로 전화를 하니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라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은 이러하였습니다.

나 보다 늦게 출근하는 남편을 뒤로 하고 아파트 대문을 열고 나오는데,
마침 엘리베이터가 바로 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내가 들여놓았던 신문과 우유를
오늘은 그냥 놓아둔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출근했습니다.


그 후 남편은 대문을 살짝 열고
몸을 바깥으로 삐쭉 내밀어 신문을 들여놓은 후,
한 발로 열린 문을 지지하고 문위에 걸린 우유 주머니에서
우유를 꺼내려고 손을 올리는 순간,
문을 지지하고 있던 뒷발이 당겨져서 대문을 놓쳐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스르르르르...찰칵!’ 하고 대문이 잠겨버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 소리가 4시간 반의 황당한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앗!’ 

그 때 남편은 홀라당 벗은 맨 몸뚱이에
쌍방울표 순면으로 된 하이얀 삼각팬티 차림이었던 것입니다.


평소에 나는 무늬 있는 멋진 트렁크 팬티를 입히고 싶었지만
남편은 푹푹 삶을 수 있는 백색 면 삼각팬티가 제일이라며 우겼던 것입니다.

대문은 번호 키로 되어 있으니 버튼을 누르고 들어오면 되지 않겠냐고요?

저의 남편은 번호 외우기 귀찮다고
신경도 안쓰고 늘 슬쩍 대면 열리는 키를 사용해 왔던 것입니다.

하니,,,....이제 나한테 전화를 걸어 번호만 알아보면 되는데...
전화기는 커녕 손에 들고 있는 것이라곤 우유밖에 없으니...
신문지라도 있으면 신문으로 몸을 가리고 뭔 조치를 취할텐데...
신문은 왜! 왜! 괜히 먼저 집어넣어 가지고는...
그날따라 대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광고물도 한 장도 없어
가릴거라고는 우유와 달랑 두 손 밖에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앞집에서 누가 나올까....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릴 때마다 혹시 문이 열릴까...
불안에 떨며 계단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이리저리 몸을 숨기면서 한참을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앞집 대문이 열리면서 초등학생 꼬마가 나왔습니다.

‘에라~~모르겠다.’ 

“얘야, 아저씨가 니 핸드폰 한번만 쓰면 안될까? ”
하였더니 그 꼬마는 남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이상한 눈빛으로

“나 학원 빨리 가야되는데요?” 하였습니다. 

“얘~~ 딱 한번만 쓰자. 급한 일이 있어서....“ 하며 겨우 핸드폰을 얻어내었습니다.

‘휴우 이제는 됐다. 키 번호만 알면.....“ 하면서 내게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차에다 두고 온 나의 핸드폰은
내 차안에서 외롭게 울기만 하였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 아이는 핸드폰을 빨리 달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습니다.


‘아~ 그러면 엘리베이터의 비상벨로 경비와 연락을 취해보자’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기위해 버튼을 눌렀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누군가가 타고 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만약 그 안에 누군가가 타고 있을 때를 대비해서
문이 열렸을 때 나를 보지 못하도록
엘리베이터 문 옆 벽면에 몸을 밀착시켜
마치 사립탐정이 범인을 미행할 때 하는 제스쳐로
안을 이리저리 살핀 후에 겨우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비상통화를 이용했음에도...
경비아저씨가 외출중인지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 어디 간거야? 다른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텐데..
빨리 받아라 빨리....’이 타는 속을 누가 알리오....


엘리베이터를 너무 오래 잡고 있을 수도 없어서,
이 짓을 몇 차례 한 결과 겨우 통화가 되었습니다. 

“저어..아저씨, 저 0000호 인데요..
옷두 안 입고 신문가지러 나왔다가 문이 잠겨서 그러는데...
열쇠도 없구.. 어쨌든 아저씨 뭐 입을 것 좀 있으시면 가져다 주세요....
죄송합니다...아저씨 빨리요....”


잠시 후 아저씨는 꽃무니의 7부 잠옷같은 바지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일단은 그거라도 입고는 경비실로 내려가 열쇠를 부수고라도 들어가려고
열쇠집에 연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분증이 없으면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아무나 열쇠를 따달라고 해준다면 되겠습니까?


남편은 다시 내게 연락을 시도하기 위해 학교전화번호를 수소문해서
겨우겨우 교무부장에게 연락이 닿았던 것입니다.


그때가 12시 반정도...
그러니까 내가 8시에 출근한 후 약 4시간 반을
그 모습으로 문 밖에서 온갖 수모와 창피와 황당함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회사 연락도 못한 채 출근도 못하고.. 이게 웬일이란 말입니까...


이렇게 하여 그날 4시간 반의 해괴한 해프닝은 끝이 났지만,
남편은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나에게 왜 전화를 제대로 안 받았냐,
그럴려면 핸드폰을 버려라,
이 동네에서 더 이상 쪽(?)팔려서 못 살겠고,
문 밖에 나갈 수도 없으니 이사를 가자면서 마구 화를 냈습니다.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사실 버튼키 번호만 외우고 있었어도....

아니 트렁크 팬티만 입었어도 수영복 같으니 덜 창피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화를 내는 남편 앞에서 얼마나 당황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 도 있었지만,
한구석에서 피식피식 푸하하하 웃음이 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이 상황을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남자 분들! 앞으로 대문을 열 때는 반드시 옷을 입읍시다!

***그리고 번호 키의 번호도 외워둡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