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천시 동구 금곡동 42번지에 살았다.

배다리에서 큰 길로 쭈~욱 문화극장을 지나 한 참을 올라오다가

왼쪽 길로 더 가면 동명국민학교가 나온다.

동명국민학교로 가는길에는 내 기억에 자갈이 깔려있었는데..

거기서 가끔 하얀 모시한복을 입은 망태?  할아버지를 만났다.

아마 그 할아버지는 애꾸눈이셨고 하얀 턱수염도 있으셨는데..

철없는 아이들은 왜그랬는지 할아버지를 놀려대며 돌을 던졌던 것 같았다..

그러면 뒤돌아서 호통을 치시면 와르르 도망가는 재미에 그랬는지...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큰 길가 오른쪽으로 "조약국"집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빨간 벽돌로 된 큰 공장이 있었는데..

나는 그게 "바늘공장"이라고 알고 있다.

거기서 다시 우측으로 난 골목으로 돌아서면 막다른 골목의 맨 끝집....



우리집가는길.jpg   

 

그 골목에서는 이 맘때 한 여름 밤이면 아이들이 하나 둘 나와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와 '술래잡기'로 왁자지껄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앞집에는 명애네, 그 옆에는 봉규네.. 

그 집에 셋방살던 희숙이네선 엄마 아빠 소꿉놀이도 많이 했다.

낮에는 말까기, 고무줄놀이를 했는데..

명애랑 라이벌 관계였던 아이(이름이 생각안남)와는 내 팔을 한 짝씩 붙잡고 잡아당기며

서로 자기랑 놀자고 싸우곤 했다. 지금 그 애들은 무얼 할까...

 

우리 집엔

아버지가 12만원이랬던가...를 주고 새까만 수도피아도를 사 주셔

젓가락 행진곡과 웨딩마치 연습을 얼마나 했던지...

이사갈 때마다 짐덩어리였던 추억의 피아노... 결국 고물로 폐기되었다.

 

가운데 마루를 두고 안방과 건너방이 있었고,

안방에 쪽문으로 통한 부엌은 문지방과 턱이 왜이리 높았는지...

 

그리고 사랑방에는 종범이네가 살았다.

앞마당에는 가운데 화단을 두고 수돗가와 장독대가 있었고

우리는 겨울이면 마당에 물을 겹겹이 뿌려 얼리고는

장독대를 짚고 롱스케이트를 타다가..화단을 가운데로 코너링 연습도 하곤 했다.

 

그리고 안채 맞은편에는 우리가 부르기를 "마루방"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는 나무쪽마루로 깔려있었고, 피아노가 있었으며, 늘 시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에 응접실이었나 보다.

 

대문쪽으로 나가면 대문옆에 화장실이 있었다.

대문은 나무 빗장으로 잠그게 되어 있었는데.

창영초등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고 xx "(별명 고구마?)라는 놈이

나를 계속 쫒아오며 "송충이~~ , 송사리~~" 라고 외쳐대며 놀려대서

나는 얼른 집에 뛰어들어와 대문 빗장을 걸어 잠그던 생각이 난다.

 

그러면 마루에 나있는 창문 창살에 들이대고 소리치며 다시한 번 놀려대고 가버리곤 했다.



추억의우리집.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