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이름 뿐입니다.
평생을 내 입술에 있어
주문처럼 외워지는
그의 이름 뿐 입니다.
어두워진 저녁길
어디를 밟고 가는지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를 슬프게 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손이
참 따뜻했다는 기억 뿐 입니다.
나에게 남아 있는
소원이 있다면
어쩌다 바람처럼 스쳐가는 소리라도
그가 이 땅 어딘가에서
별 탈 없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 뿐입니다.
환영(幻影)
언제부터
누가 먼저 그랬던가
왜 그랬던가
지울 수 없는
빛과 노래를
나의 망막에
가슴에 던져놓고
말 없이 돌아서 버린
너
긴 세월의 울음은
목을 죽이고
애타는 그리움에
눈물이 마르고
불러도 대답 없는
속삭임으로
그렇게 가버렸다
이제는
아스라이 잊혀졌는데
바람처럼 찾아와
외사촌 오라버니와
옷고름에 눈물만 적시고는
다시
먼 길로 가버렸다
무얼 하러 왔던가
무슨 말을 다 못했는가
왜 부르지 못했는가
엉킨 실타래처럼
눌려오는 가슴만 토닥거린다
허공을 향한 부르짖음은
매캐한 들불 연기처럼
부질없는 아우성이다.
켜켜이 쌓인 그리움을
가슴에 안고
터질 듯한 애틋함을
부둥켜안고
그렇게 왔으리라.
목놓아 부르며
터뜨리고
화알짝 열어 보이려고
그렇게 왔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흘러가 버린 지금
부르지 않아도 이미 들었고
태우지 않아도
사그러들지 않은 불꽃은
지금도 활활 타고 있다
흰옷을 입고
치맛자락 펄럭이며
뚝방 길
저 끝으로 사라져 간
너의 그림자를 향한
목놓아 부르던 외침도
들길을 가로질러서
가슴 턱이 막혀 오던 달음질도
환영(幻影)마저 사라진
텅 빈 가슴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목마름이다
<2004. 6. 10.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