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많던 여고 1학년때의 일이다.
그때는 인천지역이 동인천만 빼고는
거의 모두 컨투리 수준...
내가 살던 개건너(인천교...지금은 이름만이 유명무실해졌지만)는
아주 특징이 많은 시골동네.
버스는 1시간에 2번정도만이 왕래하고
포장이 안된 도로는 비만 오면 빨간 황토흙이 하얀 운동화를
고추장물로 물들여놓기 예사였다
어떤땐 학교에서 하교할때 비라도 오면
하얀운동화 벗어서 들고 맨발로 황토흙을 밟으며 집으로 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고생이 웃겼다  
그런데 그때는 운동화에 고추장물이 드는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ㅎㅎㅎ
(경험한 사람은 알거야.빨아도 안빠지거든~)
그러던중
우연히 특기반 선발에 양궁부로 발탁되어 어설프게(나름대로는 폼재며)
활을 쏘던 시절이 있었어,
그때
체육선생님이셨던 변영호 선생님께서 기르시던 비둘기 한쌍을
주신다고 해서 매우 기뻐하며
선생님의 댁이 있는 오류동역전으로 가지러 간다고 약속을 하였다.
아마도 일요일 오전 11시인것으로 기억된다.
예나 지금이나 토요일저녁은 마음이 편해지기 마련인가보다.(휴일이 있으니까)
지금의 청소년들도 그렇지만
우리때 또한 밤늦게 까지 라디오를 듣고
그때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자주 들었던것 같다
그것이 끝나면 무협 소설 "비호" 를 읽느라 밤을 세우기도 했었다.
나이 많으신 어머님은 속도 모르고
너무 공부많이하지 말고 자라고 성화(?)하심에 못이기는척 새벽녘이 돼서야
잠이들곤 하였는데...
그날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고
공부하다가(?) 자는 딸 깨우기가 안스러워서
늦게일어나도 묵인하는 사태가 벌어진것.
(그때까지 우리집은 시골이라서 새벽 5~6시면 어김없이 기상해서 아침을 먹어야 하는 상태임)
아뿔싸~~~
시계를 보니 선생님께서 비둘기를 가지고 오류동역에 나와서 계실 시간이었다
이를어째~~ 지금 가도 2시간은 걸리는데...
그날따라 버스는 등교하는 학생들이 없으니 더욱 천천히 다니고..
겨우 허둥지둥 서둘러 오류동역에 도착하니
시계는 오후 2시가 되어있었다.
이제 죽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도 없는 역전의 육교옆에서 날아가는 비둘기 한쌍만 쳐다보다가
발걸음을 되돌려 왔다
눈빠지게 기다리셨을 체육선생님의 울그락 불그락 하셨을  얼굴을 머리에 그리며.....
다음날  월요일 아침 등교길...
앗! 선생니~ 임~!!  으악~~        다음은 상상에 맡김. ㅋㅋㅋ
변영호 선생님!!!
저, 그때 많이 늦게 가서 죄송했어요.
그래도 가긴 갔었다구요.
죄송합니다.ㅎㅎㅎㅎ
그때 그 비둘기는 어디로 날아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