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야.

 

정말 오랜만에 네 글을 읽었구나.

여전히 감성적이고 은근히 아름다운 여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거 같아서 좋구나.

 

나는 지금 텍사스의 어스틴에 와 있단다.

우리 작은 아이가 이번에 텍사스 주립대 로스쿨에 가게 되어서

아이의 미국 생활 정착을 돕는다는 구실로 함께 왔단다.

가방 보따리만 달랑 들고 와서 시작해야 하는 유학생활이 어떤 것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터라 그저 의논 상대라도 되어 주려고 따라온 것이지.

 

다행히 여러 사람들의 기도에 힘 입어서

학교 근처에 있는 조용하고 가격도 마땅하고 깨끗한 아파트도 잘 구했고

자동차도 그리 어렵지 않게 제 맘에 드는 것을 샀단다.

여기서는 자동차가 없으면 꼼짝도 못하니 차는 곧 신고 다닐 신발이나 다름이 없잖니.

 

생각해 보면 참 감개가 무량하단다.

작은 아이는 우리가 처음 유학을 떠나올 때 강보에 싸여 따라왔던 아기였는데

이제는 제 길을 찾아가겠노라고 앞장을 서서 이리 먼길을 떠나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미국을 떠난 것이 92년 말이었으니까

근 20여년 만에 이 땅을 다시 밟아보는 것인데도

내 잠재의식 속에 있던 많은 경험들이 고스란히 다 살아서 나오는거 있지.

하나도 낯설지 않은게 참 신기할 정도란다.

날씨만 어지간 해도 너를 보러 가고싶다고 나서겠구마는

하도 무섭게 더우니까 어딜 간다고 나서지를 못하겠다.

그래도 같은 땅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참 가깝고 좋구나.

 

다음주가 되어야 인터넷이 연결이 된다니까

인터넷 연결되고 나면 통화라도 하자.

내게 쪽지로 네 전화번호를 좀 보내주렴.

암튼 반갑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