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못 들음으로써 잃어버리는 능력, 혹은 놓치게 되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문장 능력이다.

말이란 건 자연스럽게 아기 때부터 엄마나 보호자와 나누면서 갖게 되는 능력이지,

인위적인 노력을 거쳐 갖게 되는 건 아니다.
따라서 아무리 청각장애라 할지라도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말을 하고, 말을 하려고 온 가족이 노력하며 서로 소통을 하였다면 그 아이 안에 언어적 감각이 남게 된다.


실제로 청각장애자 중에서 발음은 이상해도(이상하다는 것도 우리의 기준이지만) 문장 구조에 대한 이해가 건청인과 비교해 거의 차이가 없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안 들리는 아이와 대화한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고 또 아이의 관심사가 넓어지기 때문에 아이가 커감에 따라 방치하거나, 보호자가 교육의 주체에서 물러나 청각장애 기관에만 의뢰하는 경우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발화나 문장능력을 갖기 어렵다.

잔잔한 바람이 <늘> 부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듯 싶다.

이건 누구 탓이랄 것도 없고 그냥 상황일 뿐이다.


자연스러운 말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곧 문장의 변형이나 불통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조사 사용에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뜻 위주의 소통을 주로 하게 된다. 우리가 영어를 공부할 때 전치사를 어려워 하는 것과 좀 비슷하다고 할까?

 

학교에서야 수화로 하니까 뜻은 통하지만 졸업할 때까지 올바른 문장의 개념을 갖지 못하고 어른이 되도록 자기의 뜻을 올바른 문장으로 전달하는 게 불가능한 아이들이 많다.

 

우리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문장능력 향상을 위해 매일 일기를 쓰게 하는데

그게 아니면 도무지 아이들의 생활이나 마음을 알 수가 없어서 잘 안 쓰려고 하는 아이에게

억지도라도 쓰게 한다. 나는.

 

아이가 쓰면 문장을 올바르게 고쳐주고 그 글에 답글을 해 주며 일기를 이어간다.

고쳐 줘도 고쳐 줘도 잘 바뀌지 않는다.

말이 기본이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청각장애인의 언어인 수화는 뜻을 전하는 데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지만, 실은 수화 사용으로 인해 올바른 문장 능력을 잃는 면도 사실 너무도 크다.

이건 너무 큰 문제고 갈등이 많은 문제라 한 두 마디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쨋든 우리 반 수진이는 매일 일기를 한 장씩 쓰는데 벌써 140쪽이 넘었다.

수진이 일기를 소개한다.


수진이는 약간의 자폐와 정신지체도 있지만 사랑스럽기가 그지 없는 아이다.

올바르고 적당히 고집도 있고 보드랍고 밝은 것을 좋아한다.

바느질을 잘 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꾸준히 끝까지 아주 잘 해낸다.

다만 조금 느릴 뿐.

수진이 아버지는 파킨스병 말기 환자다.

앓으신지 오래 되었는데 몇 년 전부터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올해 들어선 경련과 발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발작을 막으려고 엄마가 아빠를 타고 눌렀나 보다.

엄마 얼굴에 상처가 났다고 한다.

수진이는 이렇게 말한다.

아유~ 아빠 막 소리, 막 시끄러, 아유 ㅜ  어른이 왜 소리?

엄마 얼굴 상처 아유!

 

어느 날은 말한다.

어휴 냄새, 어! 뭐야? 아빠 똥? ㅎㅎㅎ 아빠 어른 왜 그래?

에구...... 엄마 힘드시겠다 그치? 너도 도와 드렸어? 하면

네~ 아 냄새~~ 아! 엄마~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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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꿈이랑 바다가 색깔이 너무나 아름다운 예쁘다. 일어나서 꿈이버렸네. 점심에 피자을 왔어요. 피자가 치즈를 너무 맛있어요. 우리집이 계단이 3층 빨래를 그런 게 잠자리를 하늘 봐

너무 많아요.

 

(고친 글 : 꿈에 바다를 보았는데 색이 너무 아름답고 예뻤다. 깨어나니 꿈이었네. 점심에 피자를 시켰어요. 치즈가 너무 맛있어요. 우리집은 3층인데 빨래를 널다가 하늘을 보니 잠자리가 너무 많아요

- 나는 이 일기를 보면서 한 편의 그림을 본다.)


7월 6일

아침에 코코아볼을 먹었어요. 잠깐 아빠가 이야기 아빠가 몸이 힘을 없어서 나 혼자가 팔이 너무 무거워.... 언니와 같이 아빠를 바닥이 쉬어다. 그런데 엄마가 아빠와 전기가 폭탄이 깜짝 놀랐어요. 엄마가 화났어요. 아빠가 약이 먹어서. 아빠는 몸이 움직 수 있고 가만히 있어! 제발! 아! 너무 힘들어요. 숨이 힘들었어요.

 

(고친 글 : 아침에 코코아볼을 먹었어요. 잠깐 아빠가 이야기 했는데 아빠 몸이 힘이 없어서(못 움직여서) 나 혼자 들려고 했는데 팔이 너무 무거웠어요. 언니와 같이 아빠를 바닥에 뉘였어요. 그런데 아빠가 (코드? 전기 콘센트를 건드렸는지) 합선된 것처럼 팍 튀었어요. 깜짝 놀랐어요. 엄마가 화났어요. 아빠가 약을 먹으면 몸을 움직일 수 있고 가만히 있을 수 있으니까 제발 가만히 있어요. 제발! 너무 힘들어요. 숨이 찼어요)

 

-수진이는 아빠가 무슨 병인지 모르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용변을 가누지 못하는 아빠를 도와 요를 가느라 힘을 쓰는 언니는 정신지체다-


7월 12일

비가 계속 내립니다. 그런데 태풍에 뉴스가 구름이 동그라미 뭔가 무섭네요.

점심이 족발 돼지가 먹었어요. 언니가 아빠는 도와 뭐 응차 응차 됐어요. 바닥이 아빠가 ...

 

(고친 글 : 비가 계속 내립니다. 그런데 태풍 뉴스를 보니 구름이 동그랗게 돌고 있어 뭔가 무섭네요. 점심 때 돼지 족발을 먹었어요. 언니가 아빠를 도와 응차응차 옮겼어요. 바닥에 아빠를 뉘였어요.)

- 수진이는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도 늘 시각적으로 한다. <구름이 동그라미>란 표현이 너무 귀여워 읽으며 웃었다.

 

 

며칠 전 엄마와의 통화에서 엄마는 더 이상 이웃의 불평을 견딜 수가 없어서(아빠가 너무 소리를 질러 시끄럽다고) 시골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하신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세 모녀는 늘 웃고 서로 아낀다.

엄마는 자주 아이들이 먹을 과자나 음료수 같은 것을 가방에 싸 보낸다.

발렌타이 데이 같을 때도 꼭 초콜릿을 아이들 수에 맞춰 보내신다.

엄마도 늘 웃고, 수진이도 늘 웃는다.

언니와도 웃고 나랑도 웃는다.

내가 아침에 잠깐 볼 일이 있어 안 보이면 이리 저리 찾는다.

그러다 내가 나타나면 아유! 어디 갔어? 아유 찾았잖아요~~한다.

그럼 미안해 수진아. 옆 반에서 회의 했어

회의? 에이~~ 하며 눈을 맞추고 또 웃고 간다.

 

아직 생리도 안 하는 수진이는 이제 졸업반이다.

다른 애들은 취업을 하기 위해 이리 저리 준비하고 있다.

오늘도 일산에 있는 장애인 고용공단으로 몇 아이들이 시험을 보러 갔다.

수진이의 진로를 어떻게 잡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그 아이는 그림도 잘 그리고 만들기도 정말 잘 만들고 손기능이 좋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 아이를 많이 부족한 아이라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진실하고 소박하고 다른 사람의 은혜를 잘 느끼고 감사해하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그 아이가 대단한 아이라는 걸 난 잘 알고 있다.

두 번이나 담임의 인연을 맺었던 아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이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난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