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좋은 기억 중의 하나는 교련을 가르치다가 무용을 가르쳐 주셨던 최선생님과의 추억이다. 그 선생님이 교련을 가르쳤을 때는 표정이 너무 딱딱하고 굳어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기가 무척 어려웠다.
붕대로 머리 싸기, 그 붉은 십자가가 붙어 있던 구급함, 그런 거에 대한 기억은 별로 남는 게 없다.
달리기를 못하던 아이들 덕분에(?) 난 환자를 얼른 붕대로 싸서 그 환자를 안고 달리는 시합에 나갔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건 나에게 별 의미가 없는 거라 기억이 희미하다.
하지만 그 선생님이 무용을 가르치셨을 때의 일은 잘 기억이 나고,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마 왈츠였을 거야.
그 선생님은 춤을 추기에는 좀 큰 몸이었다고 생각되는데 무척 아름다운 몸짓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우리들을 춤의 세계로 잘 이끌어 가셨다. 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었다.
아! 이스라엘 춤도 있었다. 그 음악은 지금도 생각난다. 딴따단따 딴따다다~~
어려운 동작을 다 배운 후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처음 춤을 출 때의 그 아름다웠던 감동을 잘 기억하고 있다. 음악 속에 녹아드는 것 같았고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아주 편안하고 즐겁게 발을 구르고 손을 잡고 돌던 기억이 그대로 난다. 즐거웠던 그 시간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그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는 이벤트를 마련하기로 했었지.
아이들과 비밀로 약속을 하고 점심 시간에 모두 운동장으로 모였지.
방송실에서 음악이 흐르자 우리들은 모두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어.
아마 그 선생님은 그 기억을 못잊으실 거야.
우리들이 마음으로 보내는 감사와 사랑을 아마 선생님도 잘 느끼실 수 있었을 거야.


우스운 일이지만 오늘 우연히 정육점에 갔다가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아무래도 낯이 익은 아이가 아지매 되어 고기를 사고 있었다. 내가 자꾸 쳐다 보다 혹시 인천? 하니 어머 너 옥규구나 나 강신영이야 하는 거였다. 요즘 내가 인일 홈에 안 들어왔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지난 번 온천을 갔을 때도 혹시 아는 애 없나 하고 주위를 돌아보다가 혼자 웃은 적이 있는데.......
그 아이(?)와 이야기하며 그 최선생님 이야기를 했다.
신영이가 포근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린 너무 좋은 생활을 한 거 같아.
난 심술궂은 얼굴을 하며 말했다. 난 별로 좋지 않은데 좋은 일도 있었어.
나이 들어도 삐딱이 노릇을 하고 싶은 것일까?
호주제 폐지에 대한 부당성 같은 글이 동문 게시판에 실려 있는 걸 보고 홈에 들어오기 싫다는 생각도 들었었거든.
부담 줬니? 헤헤 난 그냥 내 모습으로 살래.


우야든동 신영아 반가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