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빙판길에 넘어져 오른쪽 팔꿈치가 부러졌다.

깁스를 풀고, 굳은 팔을 펴느라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물리치료사가 팔을 꺾을 때마다 얼마나 아픈지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게 된다.

아프다고 소리를 지를 때마다 왠지 미안하고 창피하다.

굽은 팔을 펴주느라 애쓰는 그분이 무슨 죄란 말인가.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밥을 먹고 세수를 하다가,

이젠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고 밥을 먹지만

세수는 아직 왼손이다.

오른손으로 얼굴에 화장을 하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이를 악물고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인일여고 교정.

원형교실은 아직도 그대로일까.

분수대의 장미는 해마다 피어날까.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은 지금도 늠름하게 서 계실까.

가끔씩 꿈속에서만 보았던 그리운 그 모습들을

실제로 마주할 것이다.

 5월 1일.

인일의 우리들이 서로 서로를 초대하고 만나는 날.

 

그러나

우리들의 청춘을 불태웠던 젊은 날의 열정을 만나러 가려니,

설렘보다는 서툴고 촌스러움 같은 게 슬몃 고개를 든다.

멋지고 세련된 모습은 아니더라도 담담하고 싶은데

지금의 내 모습은 마냥 부자연스럽다.

팔은 굳고 어깨는 경직되고 얼굴은 붓고

당당한 구석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5월 1일. 인일여고를 갈 것이다.

내가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도 내 팔을 펴주려고 노력하는

과묵한 물리치료사처럼

인일은 나의 허물, 상처, 어긋난 뼈.......

그 모두를 편안하게 받아주며 나를 반겨줄 테니.

 

진정한 사랑은 열정이 사라진 뒤에 온다고 했던가.

젊은 날의 정열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이 때,

나는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너에게 있는 것을 내가 빼앗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하나로 뭉쳐

기쁨 평화 행복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나의 고통이 진정한 사랑을 알게 하는 누룩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