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옆 침대의 할머니가 묻는다.

"새댁은 어디가 아파서 왔우?"

"팔이 부러졌어요. 어르신, 저 새댁 아녀요. 헌댁이야요. 호호"

얼굴은 안 보이고, 청바지만 보였나.

할머니는 날보고 새댁이란다.

"쯧쯧, 어쩌다 그랬어. 그 거 오래 가.  일년은 고생해야 혀.

사람이 살다보면 어디 좋은 날만 있을 수가 있나. "

물리치료를 먼저 끝내고 가시며,

 "새댁, 모쪼록 몸조리 잘허우"

내가 헌댁이라고 해도, 할머니는 끝까지 내게 새댁이란다.

 

작년에 완경이 되었다. 

14살에 초경을 시작했으니,  40년 만이다.

내 자궁은 40년을 한결같이 피를 흘렸다.

폐물이 되었다고 폐경이라고?

제 할 일을 다하고 임무를 끝냈으니, 완경이다.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둥바둥 살았다.

이제는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여유를 가져보나 했더니

갱년기 증상이 복병처럼 숨어 있다가 나타난다.

불면, 우울감, 의욕상실, 얼굴 화끈거림, 더웠다 추웠다의 반복....... 

 

할머니가 불러준 새댁, 이란 두 글자에 정신이 번쩍 난다.

갓 결혼한 여자, 새댁.

내게도 새댁 시절이 있었지.

빨강 치마에 연두 저고리를 입고,

햇빛에 반짝이는 금물결 은물결처럼,

하루하루가 설레고 행복했지.

산전 수전 공중전에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며 헌댁이 되었지.

결혼한지 오래된 여자, 헌댁.

오래 되었다고 낡은 것은 아니다.

오래되었다고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갱년기를 잘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새댁이 되어야 한다.

새댁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빛바랜 꿈을 다시 꺼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적어 본다.

 

1. 세계 문학 전집 백권 읽기.

2. 한국문학전집 백권 읽기

3. 조선왕조 오백년 완독하기

4. 걸어서 대한민국 일주하기.

5. 한국 명산 200 정상 오르기

6.악보없이 유행가 100 곡 부르기

7.인일 행사 때,  무대에 올라 방송댄스 2-3곡 춤추기(팔이 빨리 나아야~) 

8. 산골 분교 찾아 다니며 초코파이 전달하기

9. 산골 경로당 찾아다니며 양말 전달하기

10. 세계 30 나라 여행하기

 

아, 정말 할 일이 많다.

내 가슴은 갑자기 초록의 샘이 되어 꿈틀거린다.

55세, 완경이 새댁의 꿈은 밤거리의 네온사인처럼 반짝반짝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