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사 **



투구꽃 전사 이른 봄,

삼십 년 전의 추억을 향해 가는 기차에 올랐던 저희는

지금 막 바닷가의 한 도시에 닿았습니다.

여고 시절의 기억들이 한 다발의 불꽃이 되어

청보랏빛 하늘을 향해 피어 오르는 이 축제의 저녁에,

어느 산자락에 피어 있을 투구꽃을 눈에 담는 것은

저희 스스로 에게서 투구를 쓴 전사의 면모를 찾아낸 까닭입니다.




다섯 장의 보랏빛 꽃잎은

단지 꽃잎으로 보여지는 꽃받침일 뿐,

정작 두 장의 여린 꽃잎은

투구처럼 보이는 뒤쪽 꽃받침 안에 숨겨놓은

저 들꽃의 모양새에서 신화에 나오는

아마조네스와 가야의 여전사와 견주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을 저희들 지난 날 삶을 돌아봅니다.




활쏘기에 지장이 없도록

한 쪽 가슴을 떼어낸 여자들을 일컫는 아마조네스와

출산의 흔적과 더불어

투구를 쓴 채 무덤에 묻힌 가야의 여전사는 바로,

인일 - 그 넝쿨 장미의 동산을 뒤로 하고 떠나던 소녀의

발랄함은 간 데 없이 굵어진 손마디와 거칠어진 머리카락으로

이제 더는 두려울 것이 없는 중년 여인이 되어

돌아오기까지의 저희들 자신이었습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일이든

목숨이 다하기까지 싸우며 지켜야 할 것들 지켜내기 위해,

순후한 영혼의 꽃잎일랑

투구를 닮은 꽃받침 안에 감추어 둔 채

비바람 맞으며 피어나야만 했던 산 자락의 가을 들꽃이었음을,

묻어 두었던 예전의 기억을 만나

그 반가움에 눈시울이 저절로 뜨거워지는

이 저녁에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를 유일하게 단발머리 여고생으로 보아주시는

선생님 앞에서 만큼은 손톱만큼도 다치지 않은

그 때의 해맑은 웃음으로 돌아가 머물고 싶은 바람이

이토록 간절한가 봅니다.

하나, 이 저녁이 가고 새벽이 오면

지켜야 할 것이 남아 있어

그래도 못 다 치룬 격전이 진치고 기다리고 있어

저희는 다시 투구를 챙겨

각자의 자리로 흩어져 돌아가야 한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기필코 선생님 계셔야 함은

오래 전 인일의 교정에서처럼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는 지혜와 용기의 불씨가,

그러한 저희에게 그만큼 타는 목마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생님.

뒷날 다시 추억을 향해 가는 기차가 움직여

오늘처럼 바닷가 축제의 도시에 닿으면,

지금의 모습 그대로 오셔서

타이를 맨 하얀 교복 차림으로 돌아가 있을

저희의 등 다독여 주십시오.



           12회 동창회 대표

                  이정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