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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30주년 홈커밍 행사를 계기로 우리는 순식간에 인일의 울타리 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처음 동창 모임에 나올 적엔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자격지심이 들어

살짝 쑥스럽고 뻘쭘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 각자 잊고 살아왔던 유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단발머리 아가씨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들 각자의 등에 지워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파른 중년 고개를 넘어가던 시기.

너나 할것 없이 제 몫의 삶을 사느라 여념이 없던 차에 우리는 다시 만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연애하는 것처럼 들떴고, 설렜고, 감사했고, 즐거웠다.

그 힘으로 3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잘 치러냈고, 그 후 10년도 어찌 가는지 모르게 잘 흘러갔다.

이 때 회장을 맡아 수고한 사람은 정경희였다.

김혜숙이 운영하는 음악학원은 우리의 모임 장소가 되어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우리의 30주년 행사는 많은 친구들이 다 함께 합심하여 이루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이었다.

고3 때 반을 중심으로 모여서 행사의 프로그램을 짜고, 모두가 출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쉰 살의 나이가 무색하게 우리들 모두 적극적이었고, 열정적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1박 2일 동안 이어진 홈커밍 행사를 통해 우린 친구를 다시 찾았고,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되었다.

행사를 마친 후에 날을 다시 잡아 30주년 기념 여행을 또 떠났고

그 유명한 돗자리파도 탄생하게 되었다.

돗자리파가 무엇이냐고?

주차장이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돗자리 펴고 앉아 수다만 떨 수 있으면 행복한 12기를 일컫는다. ㅎ

 

그 이듬해인 2006년엔 인일 합창제가 있었다.

김은혜가 회장을 맡아 수고해 주었다.

김혜숙이 초대하여 ES 콘도에도 놀러 갔고, 곽경래 모임도 결성되었다.

정영희가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우르르 둔내에 몰려가기도 했다.

서울에서 걷는 모임이 처음 시작되었는데,

주로 임옥규네 동네인 인사동과 경복궁 근처를 걸었다.

 

2007년, 은혜가 모스크바로 떠나게 되자 김은경이 바톤을 받아 회장이 되었다.

유성 스파텔은 우리들의 단골 숙소였다.

계룡산 갑사도 가고, 공주 일대 박물관과 유적지를 두루 다니며 놀았다.

옥규네 학교에서 모여 부암동을 걷기도 했다.

우린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다.

 

2008년 부터 2009년 까지 2년간 회장을 맡아 수고한 사람은 김혜숙이었다.

단양으로 여행을 떠났고

옆집 친구들이 결성한 밴드, 러너스하이를 보러 장흥 미스티에도 갔다.

10월에 열린 인일 문화제에 우리 12기는 보컬팀을 만들어서 출연하기도 했다.

봉화, 태백으로 여행도 가고

혜숙이네 학원에 번개로 모여 함께 노래부르고 연주도 들었다.

35주년 기념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며 친구들 간에 돈독하게 우의를 다졌다.

혜숙이는 언제나 우리들의 친정집이 되어주었다.

 

2010년 부터 2011년 말까지 우리의 회장은 김연옥이었다.

앞장 선 연옥이를 따라 우리는 35주년을 기념하는 여러가지 행사를 풍성하게 치렀다..

겨울에 따뜻한 나라  발리로 가서 신혼부부들이 부러워할 만큼 재미있게 놀았다. ㅎ .

인일 개교 50주년을 기념하는 큰 행사에도 참석하였고

여건이 허락되는 친구들이 모여 중국 곤명으로 여행을 다녀 오기도 했다.

 

2012년 부터 2년간 우리를 이끈 회장은 심정인이었다.

정인이는 해마다 우리를 이끌고 충청도 역사와 문화를 찾아 떠났다.

총동창회에서 주최한 와인 열차에도 참여하였고

인일 축제 때는 악기 연주와 수화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2014년 부터는 러시아에 갔던 김은혜가  다시 우리 모임의 사령탑을 맡았다.

졸업 40주년 행사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은혜의 리더십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 달 걷기 모임을 통해 친목을 다져 나갔다.

걷는 모임의 가이드는 언제나 임옥규가 맡아서 

한양의 아름다운 곳을 속속들이 보여 주었다.

여름엔 우리 별장처럼 되어버린 봉화, 태백으로 여행을 떠났고

송년 모임에 드레스코드를 정해 놓고 만나서 재미있게 즐겼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오늘, 이 자리에서 40주년 행사를 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일일이 이름을 부르고 치하하지 않더라도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보이지 않는 손길로 도운 친구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다 안다.

속이 깊고, 배려심 많고, 어른스러운 친구들 ~

그대들이 우리 12기의 보배요. 모임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앞으로도 따뜻하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서로 보살펴 주리라 믿는다.

 

스무살에 헤어졌던 우리가 세번 째 스무살에 이렇게 다시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기뻐하고 축하받을 만하지 않은가?

부디 세번 째 서른살이 될 때 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도록

더욱 아름답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