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어머니가 계시다.

팔십 육 세시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사신다.

나를 낳은 어머니와 22년 살았고, 이 어머니와 42년 지냈다.


밝은 성격이시라 세상에 재밌는 일이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음식 솜씨가 좋으셔서

맛있는 것도 잘 만드신다. 아니 만드셨다.

총기가 좋아 기억력은 말할 것도 없고, 무어가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아신다.

허리 수술 한 이후 발목도 좋지 않아 잘 걷지 못하시지만 숭의동에 사시면서 송림 성당을 여전히 다니시고, 조심 조심 혼자서 목욕도 다니신다.

말하자면 아직도 자신의 삶을 왕성하고 맛있게 경영하고 계신다.


늦게 입문했지만 우리 성모님 우리 성모님을 입에 달고 사실 정도로 신심도 깊으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수녀님들하고 나들이도 자주 하셨다.


-얘, 세상에..... 광화문 건널목이 얼마나 넓은지 저길 어떻게 다 건너나 걱정했는데 우리

성모님이 도와주셔서 넘어지지도 않고 잘 건넜잖니 호호호-

-에구 어머니, 성모님이 종로까지 오셔서 어머니 도와드릴려면 바빠서 어떡하신대요? ㅎㅎ하고 웃은 적도 있다.


몇 년 전에 내가 근무하는 곳 가까이 성당 식구들하고 오신다길래 떡을 맞춰 거길 갔다.

할머니들 챙기느라 왔다갔다 하던 산적 같은 모습의 신부님이 활짝 웃으며 덥썩 떡상자를 받았다.

할무이~ 떡 왔어요 하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수녀님들도 분주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경복궁 돌계단에 거의 꼬부리고 앉아 계신 분들 거의가 걸음도 잘 옮기지도 못하고, 허리가 펴지지도 않은 할마시들이었던 것이다. 

아이고~~ 신부님이랑 수녀님은 이 부대를 이끌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단 말인가 생각이 절로 났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인천에서, 그것도 송림동에서 오신 분들이라 하니 왜 그렇게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지.

돌계단에 앉아 환하게 웃으며 입맛을 다시는 할머니들을 보니 가슴이 찌르르했다.


가끔 어머니 뵈러 인천에 갈 때 송림 시장에 들러 이것 저것 산다.

만들어진 것을 사지 않고 다듬어서 만들어야 하는 재료로 산다.

몸을 편하게 움직이지 못하시지만 그래도 소꼽놀이처럼 조물락 조물락 만들어 드시라고.

주로 나물 종류, 생선, 주꾸미, 고기 등을 산다.

꽃을 좋아하시고 잘 기르셔서 꽃도 화분으로 산다.

송림시장 꽃집 아줌마는 마음도 얼굴도 모두 곱다.  

값도 너무나 싸서 미안할 정도다.

어머니 오늘은 어디 가고 싶으세요? 물으면 언제나 답이 같다.

나 연안부두랑 시장

손 잡고 하루종일 이거 저거 구경하고 요런 조런 것 사고 들어오면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 재미있다~

외로우실 텐데도 생의 기쁨을 잃지 않고 뭐 재밌는 일 없나 눈을 반짝이는 어머니가 인천에 계셔서 좋다.

속초 또는 안성에 계신 것보다 좋지 않은가.


지난 번 인천에 가면서 송림시장에 들렀는데 바지락 까는 할머니가 어찌나 보기 좋던지

할머니에게 말이 절로 나왔다.

씩씩한 말투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난 평생 조개만 까던 사람이여, 난 중국 조개는 거들떠 보지도 않어. 딱 보면 알지.

그냥 내 꺼 주는 대로 먹으면 돼.

내가 육이오 때 황해도 해주에서 피난 나와서 이 자리에 딱 앉은지 지금 60년째여.

내가 몇 살로 보여?

-글쎄요.... 육십 칠?

-내가 아흔 세살이여!

-어머나!!!


내가 오만원짜리를 드렸는데 너무나 순식간에 탁 계산해서 거슬러 주셨다.

다시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더 사러 갔는데 그 복잡한 계산을 금방 하시는 거였다.

난 요즘 빼기가 안되는데.....


인천이기 때문에 이런 분도 만날 수 있고 이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뭔가 아주 편안하다.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이들과 놀면서 알게 모르게 듣고 보고 느끼던 그것.

운전 처음 할 때 부들부들 떨면서 인천에 차를 갖고 와서 연습했다.

말이 되나? 말이 된다.


퇴임을 해서 그런 건지 나이 때문인 건지....

요즘 자주 가는 인천의 길마다 눈에 바짝 붙고, 보이는 모든 것이 다정하고 넉넉하다.

게다가 각 지역의 전문가들인 친구들이 쫙 깔렸으니 뭐 인천은 그야말로 나에겐 다시 찾은

보물상자가 된 셈이다.


이 할머니가 그 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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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보는 시금치는 별나게 예쁘고, 말린 생선도 예쁘다.

너무 별난가? 별나거나 말거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