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민속산악회를 따라 강진에 다녀왔다. 원래는 가우도 트레킹이지만 혹 산행을 희망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기에 번쩍 들었더니 40명 회원 중에 희망자는 3. 그렇게 우리는 옥련사에서 능선을 따라 백련사로 내려오는 만덕산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를 뺀 두 분은 70대 초반의 어르신. 속으로 내심 저 분들이 걱정되었다.

 

산행 초반부터 가파른 경사로 시작된 길에서 15분쯤 산을 오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심장은 터질 듯 아파온다. 나와 달리 숨소리 변화도 없는 두 분에게 먼저 올라가시라 하고 나는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했다. 내가 원래 등산 초반에 힘들어 하는 타입이나 이 산은 과연 올라올 수 있겠어? 시험이나 하듯 점점 더 심해지는 경사가 당황스럽다.

 

한 고개를 넘으니 일행 중 한분이 나를 기다리고 계시기에 저는 제 속도로 걷겠다고...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가시라고 말씀드렸더니 오히려 섭섭해 하신다. 그러나 나로선 그 분들 속도에 따라 걷는 것이 어렵고 그 분들에게 내 속도로 걷자고 할 수도 없다. 어차피 인생길도 각자의 속도대로 가는 것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들은 백두대간도 두 번이나 종주한 산악 베테랑들!!

 

그나저나 만덕산은 돌무더기로 쌓여진 듯! 다리를 허벅지 높이로 끌어 올려 계속 바위를 타야한다. 나의 숏 다리를 체감하면서... 두 번 째 봉우리를 헐떡이며 겨우 오르니 저 멀리 두 분이 세 번 째 봉우리를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절벽 위를 오르는 듯 로프를 잡고 가는 모양새가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후덜덜!! 두 번 째도 겨우 올랐건만 저 봉우리를 또 올라야 한다고? 그 때 떠오른 생각이 낙타가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널 때 낙타 등을 부러뜨린 것은 마지막에 얹은 가벼운 짚 한 오라기라고.....내가 올라야 할 산은 결코 가벼운 짚 오라기로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여기 주저앉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주변을 둘러보니 아마 저기가 정상인 모양. 오이 하나를 우적우적 씹으며 수분을 보충하고 다시 용기내어 세 번째 봉우리에 도전.

 

가파른 바위산을 오르는 일이긴 하나 바위가 미끄럽지 않고 도톨한 부분을 잘 디디면 로프에 의지해 오르는 것이 생각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다만 심장이 헐떡이는 것은 진정이 되었는데 다리를 계속 끌어 올리다보면 때로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면서 체력이 급격히 방전되어 간다. 그렇게 세 번 째 봉우리를 오르니 맙소사!! 저 앞에 또 봉우리가 있다. 일행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울고 싶은 기분. 만약에 내가 세 번 째 봉우리를 오르면서 저 앞에 넘어야 할 봉우리가 또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그래서 모르는 게 약이라는 것일까? 어떤 때는 그저 당장 걸어야 할 한 발자국에만 집중하여 한발 한발 걷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다행히 네 번째 봉우리는 바위도 적고 경사도 덜 해 무사히 오를 수 있었다.

 

나보다 앞서 깃대봉에 오른 두 분은 여유 있게 막걸리를 마시며 아껴둔 한 잔을 내게 주신다. 용케 잘 따라 왔다고.... 나는 인간 스팀다리미다. 옷을 주먹으로 쥐니 물이 나온다. 멀리 발 아래 백련사가 보이고 더 멀리에는 남해에 동동 뜬 섬들이 보인다. 푸른 논들과 숲, 그리고 들리는 새소리....눈 맛이 호사스럽다.

 

누군가 내게 다시 또 산에 오르고 싶으냐고 물으면 당장은 No!

근데 인영이가 남극의 사계 말미에 한 말이 생각난다. 남극에서 일 년을 보낸 과학자들이 일 년은 견뎌도 하루는 더 못견뎌하며 출발일이 하루라도 늦춰지는 것에 노심초사하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남극을 떠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들 그곳을 그리워하며 찾게 된다고.....

 

그러니 나 역시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힘들었던 것은 다 잊고 산을 그리워하며 어딘 가의 산을 또 오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산을 오르며 옥규 생각이 많이 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