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ㅡ 정혜신



(2019. 03. 19 매월 세 번째 화요일 - 정독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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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했다.

이 책은 작가가 말하듯 그냥 책이라기보다 행동지침서다.

더 나아가 ‘공감’ 행동지침서다.

우린 책을 읽으며 구구절절 옳은 말에 공감을 하고 ‘아 그렇구나’ 했다

하지만 그녀의 사생활을 알게 되며 정작 그녀에게 가장 가깝다면 가까왔을

그녀의 전 남편과 자식들, 또 지금 남편의 전 아내나 아이들에게 얼만큼 공감을 하고

행동했을까 하는 점이 의문으로 남아 오랫동안 책의 주제와는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쨌든 그녀의 삶에 대한 애착과 생명력,

자신의 힘든 시간을 넘어서서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참 대단하게 생각됐다.





다음은 책 내용이다.


심리적 CPR(심폐소생술)로 지칭


‘너 요즘 마음은 어떠니? 라는 물음과 그 뒤에 이어지는 대답들

아하 그랬구나! 네가 요즘 이렇구나! 힘들었구나! 네가 그랬구나!  

 

답을 찾지 않고 언저리를 맴돌더라도 그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작가. 

 

아울러 우선 멈추고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한다. 


트라우마 피해자는 자신을 환자가 아닌 고통받는 사람으로 바라봐 주길 바란다.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치유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치유자다.

사람의 본질, 상처의 본질을 알고 움직이는 사람만이 치유자일 수 있는 곳,

그곳이 트라우마의 현장이다.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소박한 심리학을 ‘적정심리학’이라

이름 붙였다.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고 또 어느정도 성공한 사람의 내면은 "자기 억압의 결과물"로

그 자리에 있고, 지금 그 자리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자기 억압을 스스로 강요하고

있는데 그런 경우를 "공황장애"라고 설명한다. 


자기성이 소거된 채 부모의 기대나 사회적 역할, 가치 등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살아가던 사람은 절대적 의존 대상이던 그 부모나 배우자와 이별하거나 절대적인 내 역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일이 없어지거나 그 가치가 빛을 잃을 때 공황 발작을 경험할 수 있다.

예견된 수순이다. 누구든 내 삶이 나와 멀어질수록 위험해진다.


사람은 나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에게 끌린다.

사람이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거침없이 나를 표현할 때다.

모든 아기가 아름다운 것도 그 때문이다.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너는 항상 옳다’는 말의 본 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내 편 인증’이다. 이것이 심리적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 공급이다. 

 

역설적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영역에서 인간은 공평하게 허기지다. 

 

우울과 무력감은 그 마음 상태를 정확하게 반영해 주는 거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그때의 무력감과 우울은 지금은 털석 주저앉아

내 삶을 먹먹하게 돌아봐야 하는 때라고 알려주는 신호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감정들은 삶의 나침반이다.

감정은 내 존재의 핵이다. 

 

자세히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공감할 수 있다.


상황을, 그 사람을 더 자세히 알면 알수록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할수록 공감은 깊어진다.

그래서 공감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내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얻게 되는 무엇이다. 

 

공감은 그저 들어주는 것,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듣는 일이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선생님도 혼내기만 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 줘야지. 그 애가 나한테 시비를 걸어서 내가 얼마나 참다가 때렸는데. 엄마도 나보고 잘못했다고 하면 안 되지.”

 

어떤 이의 생각, 판단, 행동이 아무리 잘못됐어도 그의 마음에 대해 누군가 묻고 궁금해 한다면 복잡하게 꼬인 상황이 놀랄 만큼 쉽게 풀린다.

자기 마음이 공감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이나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기꺼이 진다. 자기 마음이 온전히 수용되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억울함이 풀려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다.


마음껏 공감해주면 강퍅해질대로 강퍅해진 흉포한 마음조차 움직인다. 

 

대화란 나도 있고 너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공감을 받으면 마음에 봄이 온다. 강물이 꽁꽁 얼었을 때 얼음을 깨겠다고 망치와 못을 들고 나선다면 어리석다. 망치와 못을 들고 나서는 것은 평가, 판단, 설득 같은 계몽을 하는 일이다. 힘만 들지 온 강의 얼음을 다 깰 수는 없다. 봄이 오면 강물은 저절로 풀린다.

공감은 봄을 불러오는 일이다. 

 

문제의 근원을 인식하지 못한 채 최선을 다하는 건 공중에 대고 쏘아대는 총쏘기다. 

 

사람이 개별적이고 독립적 존재라는 말은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과 관계의 변화에 따라 주체적으로 끊임없이 적응해가는 존재라는 의미다. 

 

공감의 상호성. 동시성. 

 

정말로 애썼다고 온 체중을 실어 말해줬다. 

 

우리 모두는 자기 보호를 잘 해야만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상처입은 존재들이다. 

 

나와 또 다른 존재 간에 공감적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삶의 원동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좋은 대답과 결정이 자신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주목하고 공감해 주는 과정 자체가 자신을 끝내 보호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공감 하기 위해 누가 재가 되 버리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감정 노동이다.

공감을 잘못 이해하면 그렇게 탈진만 한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공감이다. 

 

공감은 내 생각, 내 마음도 있지만 상대의 생각과 마음도 있다는 전제 하에 시작한다.

상대방이 깊숙히 있는 자기 마음을 꺼내기 전엔 그의 생각과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공감의 바탕이다. 

 

관심을 갖고 그의 속마음을 알 때까지 끝까지 집중해서 물어봐 주고 끝까지 이해하려는 그 태도는 상대방을 안전하게 느끼게 하고 믿게 하고 자기 마음을 더 열게 만든다. 

 

상처를 끄집어 내는 것이 아파서 못 꺼내는 것이 아니라 꺼낸 고통 위에 소금이 뿌려졌던 경험이 상처를 꺼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이중 삼중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기 전까지 상처를 다시 꺼내기가 어렵다. 심약한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 

 

사람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 건 원래 그 상처 그 자체보다 그 상처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통해 받는 2차 트라우마다. 1차 트라우마가 총을 맞은 것이라면 2차 트라우마는 확인 사살을 당하는 것이다. 

 

타이밍. CPR. 감정 먼저. 나 먼저. 함께 서로가 소통, 공감.  

 

어제는 어제로, 오늘은 오늘로.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거야.’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 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것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네가 그러면 되느냐, 그러면 안 된다’는 류의 말들은 절박한 사람의 말귀를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의 반응이다. 

나는 그런때 언제나

‘그렇구나, 다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지쳤구나, 다 불태워버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나는구나.

그럴만한 일이 있었나 보구나’라고 온 체중을 실어 말한다. 

그 다음에 ‘그런 마음이 들게 했던 그 일이 구체적으로 뭔데? 라고 묻는다.

그게 누구이든 어떤 상황의 하소연이든 상관없다. 

 

‘당신이 옳다.’

온 체중을 실은 그 짧은 문장만큼

누군가를 강력하게 변화시키는 말은 세상에 또 없다.



*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 이런 때는 이렇게 말을 하고 공감하며 살 수 있다면 세상이 훨씬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관계가 좀 더 나아지지않을까?' 

그러려면 공감하는 법도 학습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며 마무리를 하였다.



* 마지막에 숙희가 '달과 공주 이야기' 를 들려주며 공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왔다.


옛날 어느 나라에 어린 공주님이 살고 있었어요.

공주님은 왕과 왕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공주는 하늘 높이 금빛을 내며 떠있는 달을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마침내 그 달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리하여 공주는 부모님께 그 달을 따다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어요.

이때, 왕과 왕비는 그 달은 결코 딸 수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공주는 막무가내였어요.

이에, 유명하다는 의원이나 학자들도 모두 모여 한결같이 달은 절대 딸 수 없는 것이니

마음을 돌리라고 권했지만, 공주는 시름시름 앓고 마르면서 마음의 병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한결같이 공주에게

"공주님, 달은 너무 커서 가까이 간다 해도 절대 딸 수 없으니 포기하세요. 건강을 상해요."라며 그들 입장에서 사실만 이야기 했어요.

이때, 이 일을 알고 있던 광대가 공주를 만나보기로 자청했어요.

광대는 공주에게 몇 가지 질문을 건넸어요.

"공주님, 달은 어떻게 생겼나요?"

"달은 동그랗게 생겼지."

"그러면 달은 얼마나 큰가요?"

"바보, 그것도 몰라? 달은 내 손톱만하지, 손톱으로 가려지잖아."

"그럼 달은 어떤 색인가요?"

"달은 황금빛이 나지."

"알겠어요. 공주님. 제가 가서 달을 따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공주의 방을 나온 광대는 임금께 아뢰고 나서 손톱 크기만한 동그란 황금 구슬을 만을어 공주에게 가져다 주었어요.

공주는 뛸 듯이 기뻐하였어요. 드디어 그 달을 손에 넣은 것이에요.

그러나, 마침 보름인 내일 밤 달이 또 뜨면 공주가 뭐라고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광대는 다시 공주에게 질문을 했어요.

"공주님, 달을 따 왔는데 밤에 달이 뜨면 어떻게 하지요?"

"이런 바보, 이를 빼면 새 이가 또 나오지 않아? 

그것처럼 달도 하나를 빼오면 다시 또 나오게 되어 있어.

그리고 달은 호수에도 있고 물컵에도 있잖아.

달을 하나 따 온다 해서 문제될 게 없지."


· 공감적 이해의 기초

      : "내담자가 말한 것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해 주는 것"


1) 내담자의 "어휘"파악하기 : 

    모든 사람이 공주의 '달'을 일반적인 '달'로 판단 -> 공주가 보는 '달'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함 -> 자기 방식대로 진단하고 처방함

 => 문제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상담자)자신의 준거틀'이다. 

==>>공주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자신의 준거틀로 판단하지 않아야 함. 공주의 주관적 세계를 이해해야 함.

-->>내담자에게 낱말의 의미를 물어보야야 함!


2) 서두르지 않기 :

상담자는 내담자의 문제 해결의 능력을 믿고, 이해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면 된다

-> 내담자의 내면 세계를 열심히 따라가며 함께 공감해 줄 때,

-> 내담자는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위 내용은 인간중심상담심리에서 참고하였다.)



* 그리고 동아리 지원비 신청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독서 관련 사단법인에 신청하는 것인데 

조건은 

1) 활동 내용(1번 오픈)

2) 활동 지원비 80만원 사용시

장소 대여비, 간식비는 안 되고

독서 관련 활동( 문학 기행, 연극, 도서 구입...) 가능

3) 대표 사단법인 활동 3번 참여

우선은 신청하는 것에 동의하여 신청해 보기로 했다.

대표 강숙희, 부대표 황연희


앞으로 꾸준히 활동하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