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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 거장이 된 시골 목수-란 부제가 붙어있는 치바이스에 대한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친구들과 미술책 모임을 하고 나서일까? 그림이나 화가에 대한 책이 더 재미있어졌다.

어렸을 때 집에 있는 어린이 위인전 중에서도 고흐에 대한 책이 제일 재미있어 되풀이 읽었는데, 그건 그림 때문이 아니라 동생과의 감동스러운 우정 때문이었다.


치바이스는 지금으로선 중국 화가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일 것이다. 왜냐면 어쨌든 작품 값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화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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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작품 <송백고립도>, 1947년 당시 중화민국 국민정부 주석이었던 장개석의 60 생일을 축하하며 그린 그림이라 하는데 2011년 당시 733억 정도에 경매가 됐다고 한다.

이것 외에도 1330억이 넘는 가격에 경매된 것도 있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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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이스는 매우 가난하지만 가족끼리 서로 잘 아끼고 소통하는 가정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아주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에는 늘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도록 아프고 몸이 약했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농사 일은 꿈도 못 꾸고 집 짓는 곳에 보내졌으나 무거운 나무를 들 수가 없어 쫓겨나고, 힘든 일을 못하니 쫓겨나고 하다가 힘이 덜 든 목수 일을 하게 되었고, 목수를 하다가 우연히 조각하는 일을 알게 되어 배우게 되었다.


침대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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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도 덜 들고 자기가 모르고 있던 솜씨도 알게 되면서 목수와 목장(나무 장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게 그가 일생을 화가와 전각을 하는 사람으로 살게 된 계기다.

정식으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치바이스는 집에서 300자의 한자를 알고 있는 아버지로부터 한자를 배운 게 전부였으나, 늘 외우고 쓰고 하면서 더 큰 문장의 세계를 꿈꾸며 노력한다.

나중에 그의 재능을 알아 본 후친위안이라는 스승이 -넌 조각보다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낫겠다. 힘도 덜 들고 돈도 벌 수 있으니 굶지는 않을 것이고 네가 원하는 글 공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라고 권유하고 그로부터 그림을 시작하게 된다.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으나 이런 권유로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스승이 돌아가셨을 때 그는 자기의 큰 스승이자 자기를 알아주었던 분을 애도하며 스승이 칭찬했던 그림 스무 점을 스승의 영전에서 불태운다.

늘 자기에게 도움과 가르침을 준 사람들의 영전에 그와 맺은 그림을 태우며 애도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분만이 아니라 그림을 그려가면서 끊임없이 훌륭한 스승을 만나게 된다.

도제식 수업이라 사제간의 관계를 맺게 되면 그 집에서 2, 3년 배우며 사는 식이었다. 재능도 출중했지만 본인의 노력도 굉장했기 때문에 늘 더 높은 배움의 길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우선 먹고 살기가 힘든 세월이었기에 그의 그림 그리는 일은 가족의 중요한 밥벌이가 되었고, 그는 가족이 굶지 않고 먹게 된 것으로 만족하며 열심히 끊임없이 그리며 그 이상의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하였지만 늘 자신의 학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태생적인 예술가의 본성이 있어선지 처음에는 남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표현 능력을 습득하였지만, 그려가면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에 대한 어떤 자세를 갖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려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눈에 보이는 나무, 꽃, 물, 산, 새, 벌레, 동물, 열매.... 등 다양한 일반적인 소재를 꾸미지 않고 그린다.

몸이 약해 늘 걱정이던 치바이스는 95세까지 살며 그림을 그린다.

죽는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렸는데 80이 넘어가면서 그린 그림이 더 선이 선명하고 맑게 느껴진다.

또 90이 넘어서 그린 그림은 일종의 선화의 느낌을 주면서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맑아짐을 느낀다.

현재 서양에서는 중국에 이런 피카소를 능가하는 화가가 있는데 왜 중국인들은 파리로 유학을 오는 것일까 하며 의구심을 표했다 하니 이분의 평가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화보가 참 좋다. 인쇄가 잘 되어 있다.

굉장히 많은 그림이 좋은 상태로 들어있어 소장해도 좋을 책이다.

이 책은 이분이 71세 되던 해부터 문하생인 장츠시에게 인생 고백을 하며 받아 적게 해 만들어졌는데 이어지고 끊어지고 하다가 88세에 끝났다고 한다.

이분이 살았던 때가 파란만장한 중국의 역사적 변동기였으므로 그 시대사와 함께 찾아보며 읽어도 좋을 것이다.

일평생 권력과 명예에 초연하고 무관했으나 나중에 장개석이나 모택동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일제의 침략에 대한 분개와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 소설이나 산문집을 보며 재미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시를 인용하며 하는 그들의 표현방식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부부 간에도, 친구 간에도 알맞은 한문 문장을 인용하면서 적절한 비유를 하는데 중국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인 것 같다.

또 그림의 내용에 맞게 화제를 써 놓는데 나는 그게 너무 재미있다. 아주 짧은 글로 가슴을 툭 건드리는 문장이 많다.

예를 들어 그가 70에 그린 <차산음관도><<산수조병 1>>이라는 그림의(산과 드문드문 한적한 집이 있고 그 앞 강 같은 물에 오리가 떠 있는) 화제는 이렇다

  -문 앞의 오리, 사람과 더불어 한가하다-

아주 단순한 문장이지만 그 이상의 표현은 없겠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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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몸으로 힘든 세월을 보내며 고생은 했지만 그야말로 자신의 일생을 꽉 채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조건이었기에 오히려 자기 그림에 자유로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일기를 적고, 서간을 나누고, 그림을 그리고 전각을 하며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걸은 치바이스의 삶.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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