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덕수궁 걷기 모임

-날짜: 19년 6월 11일    10시 20분

-장소: 1호선 시청역 덕수궁 대한문 앞

-준비물: 모자, 선글라스, 물, 만원



IMG_E3490.JPG

이금자, 김정미, 황연희, 임옥규, 김안나, 강숙희, 이경애, 김춘선,

심정인, 정인순, 곽경래, 김혜영, 김은희, 이영숙, 윤영혜, 강신영

<나중에 점심 시간에 권영숙이 나타남>


시간도 잘 지켜요 우리 친구들~

IMG_E3271.JPG



여러 고궁의 해설사들은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때문인지 늘 성의있고 당당하다.

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나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는 예라고나 할까...IMG_6247.JPG IMG_6246.JPG



IMG_E3294.JPGIMG_E3273.JPG




IMG_E3275.JPG IMG_E3277.JPG


중화전- 원래는 못 들어가는 곳인데 운이 좋게 그날 들어가서 볼 수 있었다.

IMG_E3280.JPG IMG_E3281.JPG IMG_E3282.JPG IMG_E3284.JPG IMG_E3286.JPG IMG_E3291.JPG IMG_E3293.JPG IMG_E3295.JPG IMG_E3297.JPG IMG_E3298.JPG IMG_E3299.JPG IMG_E3303.JPG IMG_E3305.JPG IMG_E3307.JPG IMG_E3308.JPG IMG_E3309.JPG IMG_E3310.JPG IMG_E3311.JPG IMG_E3335.JPG IMG_E3337.JPG IMG_E3347.JPG IMG_E3348.JPG IMG_E3349.JPG IMG_E3356.JPG IMG_E3369.JPG IMG_E3380.JPG IMG_E3382.JPG

IMG_E3427.JPG IMG_E3433.JPG IMG_E3435.JPG IMG_E3436.JPG IMG_E3437.JPG IMG_E3438.JPG IMG_E3440.JPG IMG_E3458.JPG


김춘선, 윤영혜, 권영숙, 김안나, 김은희, 임옥규, 김혜영, 이금자, 이영숙, 심정인, 강신영

이경애, 정인순, 김정미, 강숙희, 황연희, 곽경래

IMG_E3442.JPG IMG_E3448.JPG IMG_E3449.JPG IMG_E3450.JPG IMG_E3451.JPG IMG_E3452.JPG IMG_E3453.JPG IMG_E3456.JPG IMG_E3459 (2).JPG IMG_E3483.JPG IMG_E3484.JPG


IMG_E3485.JPG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덕수궁을 걸었다. 

옥규가 미리 예약을 하여 우리는 학구열에 불타는 눈빛으로 해설사의 이야기에 빨려들었다.


덕수궁은 본래 월산대군의 후손을 비롯한 황족과 고관들의 저택이 있었던 곳으로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소실되자 선조가 임시로 거처하는 행궁으로 사용하다가

광해군 재위 시절인 1611년 창덕궁으로 어가가 옮겨가면서 별궁(경운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으뜸 궁궐이 되었으나

순종이 창덕궁에서 생활하시고 업무를 보셨으므로 이곳은 고종이 계신 궁궐로

고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의 '덕수궁(德壽宮)'이라는 궁호로 불리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고종 승하 후 점령국이었던 일본은 일부 대지를 매각하고 전각을 철거한 후 공원으로 조성하여

현재는 중화전과 정관헌, 석조전 등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한다.

해설사는 이곳을 둘러 볼 때 대지는 지금의 3배, 전각 수는 10 배 였음을 기억하고

상상 속에서 그 날의 역사를 따라가 보자 한다.


대한문

금천교 (다리 밑 맑은 물에 모든 것 씻어내고 신성한 곳으로 들어옴 상징)

3도(세 개의 길)는 중화문까지 연결 됐었다 한다.


중화전

IMG_6262.JPG


석조전은 고종 때 근대화식 건물로 지어지고 그 옆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조 건물은 일본이

지었다고 한다.


준명당은 고종 편전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덕혜옹주의 유치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다.

IMG_6254.JPG

<왼쪽은 준명당, 오른쪽은 즉조당>

즉조당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건물. 임진왜란으로 의주까지 피난갔던 선조가 난이 수습된 뒤에 돌아와 시어소(時御所)로 사용하였던 건물로서, 1623년(인조 즉위년)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가 즉위한 뒤부터 즉조당이라 불렀다.

1897년 고종이 경운궁(慶雲宮, 현 덕수궁)으로 옮겨온 뒤 정전(正殿)으로 사용되었고, 한때 태극전(太極殿)·중화전(中和殿) 등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다. 1902년 정전인 중화전이 건립된 뒤부터는 다시 즉조당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현재의 건물은 1904년 불이 나 타 버린 것을 같은해 3월에 중건한 것이다. 고종이 상왕이 된 뒤 거처하던 궁궐로서 궁명(宮名)을 덕수궁으로 바꾼 뒤인 1907년부터 1911년까지는 후비인 엄비(嚴妃)가 이곳에 거처하였다.-옮김>


석어당(단청 없음)은  목조 2층 건물로 선조가 16년 머물렀는데 그 때의 국난 극복과 어려움을 기억하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한다. 

살구나무 꽃필 때 꼭 다시 오라 한다.(3월 말)

10년 유폐 생활 (인목대비) 했던 곳 임해군, 영창대군의 아픈 역사가 함께 했던 곳.

IMG_6253.JPG


정관헌은 휴식을 위한 건물로 1900년 경 러시아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나무로 된 베란다와 기둥 위에는

소나무, 용, 박쥐, 꽃병 등 전통문양이 보인다.

고종이 커피를 마시면서 외교 사절들과 연회와 담소를 하던 이곳이 오늘날엔 금요일 7시

매주 음악회가 열리고 있단다.

IMG_6256.JPG IMG_6259.JPG


함실아궁은 온돌과 공기 덥히는 순환방식을 같이 사용했다 한다.


함녕전은 고종이 거처하던 침전으로 190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한 곳이라 한다.<사진 퍼옴>

사본 -19564444500ED7A634.jpg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백년 동안의 역사가 파란만장했음을 실감하며

백년 후의 우리의 미래는 또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생각하니 

이 순간이 참으로 숭고한 시간임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 전시를 둘러보았다.

이번 전시는 채색화가 정찬영과 백윤문, 월북화가 정종여, 임군홍, 이규상, 정규

총 6명 작가의 작품 134점이 전시되었다.

파격적 형식의 근대 괘불 ‘의곡사 괘불도’는 박물관, 미술관 최초로 전시되었다는데

들어서는 곳에서 온화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마치 ‘괜찮아, 함께 하고 있어. 염려하지 마.’ 하는 듯 했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순두부를 먹었는데 외국여행 할 때 더 생각이 났다는 이야기들을 함) 근처 공원에서 둘러앉아 차를 마셨다.

어느새 우리는 어느 곳에 있던 함께 한다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고 삶의 의미가 된다. 


정동교회를 지나 아관파천 길, 러시아대사관 모습도 바라보고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상설 전시 천경자전도 둘러보고 데이비드 호크니 전 안내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정동길을 걸어 성공회 대성당을 보거나

시네큐브에서 ‘로켓맨’ 을 보는 팀으로 나뉘어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걷기모임의 막을 내렸다.


언제든  소리없이 즐겁고 행복한 맘으로 함께하는 친구들과

함께하지 못해도 마음은 먼저 가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만남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