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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에도 제목을 잘못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틀렸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이다.

원 제목이 <And Life goes on>.

요즘 마음이 좀 그래서 제목을 그렇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래도가 아니고 그리고네.....


집에서 줄곧 머무르고 있다.

친구들도 그러겠지.

원래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가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있으면서도,

나가지 말아야 해서 나가지 않으니 좀 불편한 점도 있기는 하다.

물론 나나 가족을 위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 난감한 상황에 특별히 도울 일이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저 집에 있는 것만도 돕는 게 아닐까 싶어서 기꺼이 집에 있다.

온 나라가 다 애쓰고 있는데 할 일 없는 퇴직자가 뭐 그 정도의 일이야 못하겠는가 하며.


도서관도 진즉 2월 초에 폐쇄되어 냉장고 파먹기처럼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 둔 책을 보기도 하고,

영화도 여유있게 아니, 좀 심하게 보고 있다.


어제는 올레 TV로 이란 감독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체리 향기>를 보았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기억력이 형편없는 나에게도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있는 영화라 넘겼고,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라는 영화는 어제 생각나지 않아 보지 못했다.


이 영화들은 거의 내용과 배경이 다 연결되어 있어 마치 속편과 같은 느낌도 들고, 같은 상황의 다른 버전과 같은 느낌도 드는데 모두 재미있고 훌륭하다.

아니 내가 좋아한다.


친구에게 공책을 돌려주려고 그 멀고 긴 길을 걷고 뛰어가던 <내 친구의..>의 그 꼬마와 헤어지고

3년 후 이란에 엄청난 지진이 있었다.

당시 뮌헨에 있었던 감독은 이를 알고 그 꼬마의 안위가 걱정되고 궁금해 그 꼬마가 살던 동네

코케를 찾게 된다.

그 꼬마 또래인 아들을 데리고.


형편없이 무너진 길과 집,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죽음.

살 길을 찾기 위해 짐이랄 것도 없는 것을 이고 지고 끝없이 이동하는 사람들.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를 운전해가며, 아이의 질문에 답하며,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그 동네를 물으며 찾아간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을 만나고, 보고, 대화하며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런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와 그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그 꼬마를 찾는 일은 하나의 장치가 된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울지 않는다.

집이 다 무너진 사람도, 그 밑에 가족이 깔려 죽은 사람도, 65명의 친인척이 죽은 사람도,

혼자 남은 노인도 울지 않는다.

그저 말할뿐이다. 먼저 말하지도 않는다. 물으면 답한다.

그런 속에서 그들은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안테나를 세우기도 하고, 영화 촬영도 구경하고, 집에서 화분도 갖고 오고, 화분에 물도 주고, 결혼도 한다.

그리고 사랑도 하고 청혼도 한다.

그래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이다.


-그리고-라는 말에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는 뜻이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은 해 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쓰고 보니 그런 듯도 하다.

-그래도-는 뭔가 한 장을 끝내고 새로운 시작이나 변화를 뜻하는 게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리고-는 모든 것을 다 수용한다는 뜻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물 흐르는 것처럼, 살아지는대로, 되어가는대로, 거부하지 않고, 주어진 걸 받아들이고,

 뭐 삶이 그런 거 아니겠어? 어쩌겠어? 이런.


무너져 폐허가 되고 <그리고 싹이 트이고>, 전쟁이 일어났고 <그리고 아이는 태어나고>, 청년도 집을 잃었고 <그리고 결혼을 꿈꾸고>, 십대 여자애가 지진으로 부모를 잃고 할머니밖에 남지 않았고 <그리고 자신을 지키고>.....



마스크로 온 얼굴을 덮다시피 하고 산책을 하다가 쑥이 많이 돋아난 것을 보았다.

그리고 쑥이 돋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웃으며 함께 걸었던 산책길.

다리가 아픈 명숙이가 진통제를 먹고 같이 걸었던 그 길.

문득 아!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얼마 전에 간 어느 음악회에서 내 앞에 앉은 날씬한 여자를 보고 명진이를 생각했다.

아주 예쁜 옷을 입고 앉은 그 여자를 보고 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명진이가 입었으면 더 예뻤을 텐데.


영화가 주는 여파가 하도 크고 넉살스러워 보고 나서 한참을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요즘 어수선한 상황이라선지 영화를 보면서 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쑥이 돋아나고 그리고 삶은 계속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편해지기도 한다.


친구들~

손 자주 씻으시고, 뭐 혹시라도 걸리면 치료하면 되겠지.


어떤 식으로든 말이지, 마스크를 쓰고서도, 에탄올로 문고리를 소독하면서도 쑥은 돋아나고 

삶은 계속된다는 것 아니니.


잘들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