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함께 읽은 책 김훈의 <자전거 여행>



한 시절 느림의 미학이 사람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잖아?

그 덕에 슬로시티라던가 슬로푸드같은 관광상품도 개발되고 말야.

여행도 그런 것 같아. 여행의 이동수단에 따라 여행을 통해 보는 것, 경험하는 것, 느끼는 것이 다르겠다 싶더라. 여행가 한비야는 세계여행을 하면서 비행기는 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던가?
한 때 나도 퇴직하면 자전거로 전국을 도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 아저씨는 아는 것도 많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 
사유의 깊이와 높이가 다르니 어떤 대목은 읽어도 그 뜻이 와 닿지 않고 어렵더라구.
나이가 든 탓일까? 
어려운 것보다 쉽고 재미난 것이 좋은데, 이 여행은 너~~~무 진지하고 유머가 없는게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작가와 친해 사적인 자리를 할 수 있다면 관념과 사유를 내려놓고 그냥 보이는대로 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근데, 곳곳에 표현들이 너~~~무 좋은거야.

이 아저씨는 언어의 달인이다. 
을 설명하는데, 숲이라고 모국어로 발음하면 입 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잖아.
자음 ㅅ의 날카로움과 ㅍ의 서늘함이 목젖 안쪽을 통과해 나오는 ㅜ모음의 깊이와 부딪쳐서 일어나는 마음의 바람이란다. 또 숲은 글자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 보아도 숲 속에 온 것 같다는 작가의 말을 들은 후엔 나도 숲이라 발음하면 바람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

1권 꽃피는 해안선에서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을 대조한 글은 또 어떻구?
군집하여 피지만 개별성을 잃지 않고 절정에서 꽃송이로 지는 동백과 
꽃 잎 하나하나가 낱낱이 산화하여 바람에 불려 소멸하는 매화의 풍장,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어나 지우개로 지워지듯 문득 종적을 감추어버리는 산수유, 
등불을 켜듯 피어나 한껏 존재감을 뽐내다가 생로병사의 전 과정을 끝까지 치룬 뒤 무겁고 느리게 지는 목련에 대한 설명엔 감탄이 절로 나더라.

내가 꽃이라면 난 어떤 꽃이고 싶은가?
동백은 너무 비장하고 목련은 처철해보여 난 매화처럼 바람에 불려 산화하고 싶다.

향일암을 처음 갔을 때 느꼈던 기분도 생생히 느껴지더라.
좁은 돌기둥 틈새로 겨우 빠져나가니 갑자기 남해가 눈 앞에 툭 펼쳐지는데 그 때 그 충격과 감동이라니. 
바닷가에 위치한 절들하면 낙산사나 부산 기장 용궁사도 있지만 향일암은 단연 최고야.

이 글에선 비교와 대조가 돋보여.
된장국의 냉이와 달래, 도가의 산과 유가의 산, 원효와 의상, 5월의 자작나무 숲과 은사시나무 숲 등등
5월의 산에서 가장 자지러지게 기뻐하는 숲은 자작나무 숲이란다.
하얀 나뭇가지에서 파스텔톤의 연두색 새 잎들이 돋아날 때 온 산에 푸른 축복이 넘친다는 문장을 보며 5월 지리산이 너무 가고 싶었어.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5월의 산이었거든.

이 분은 자연을 관능적으로 묘사하는데도 짱이야.

봄 날 흙의 헐거움도 그렇지만 서해의 조수간만 차는 그 묘사가 압권이다.

<밀물의 서해는 우주의 관능, 달에 이끌리는 서해는 발해만 깊숙이까지 가득 차 올라 산둥반도와 랴오뚱 반도를 적시고 한반도 서쪽 연안에 넘친다. 그때 연안은 부풀어 오르고 서해에 닿는 모든 강들의 숨결이 낮아져 강은 바다를 내륙 깊숙이 받아들인다.>

<간조와 만조 사이 젖은 갯벌위에서 저녁의 빛들은 비늘로 퍼덕거렸다>

우리 학교 옥상에서는 갯벌을 주홍색으로 물들이며 서해로 지는 해를 볼 수 있었어.
그 때 본 그 노을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추억 속에 오히려 더 아름답게 기억된다.

이 책에 언급된 퇴계선생과 정조,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도 내겐 진한 감동이었어.
특히 퇴계선생님의 죽음의 장면말야.
70세에 이르러 병이 깊어지자 머무르던 제자들 다 돌려보내고 남에게 빌려온 책도 다 돌려주고는 아들을 불러 장례를 검소히 치를 것과 장례에 대한 국가의 배려와 의전을 사양하라고 엄히 당부하셨다잖아. 
세상을 떠나던 날, 저녁에 눈이 내리자 제자들을 시켜 자신이 아끼던 매화나무에 물을 주게 한 후에 임종 자리를 정돈시킨 다음 몸을 일으켜 달라하여 한평생을 지켜온 정좌의 자세로 앉아서 세상을 떠나셨다잖아.

나 이 비슷한 경험이 있어.
오래전 겨울 방학에 친구와 법정스님을 뵈러 송광사 불일암에 간 적이 있었어.
송광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가 오전 11시경이었는데 눈이 먼지처럼 폴폴 내리더라구.
송광사를 향해 걷는데 절쪽에서 만장이 내려오는거야.
함께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송광사에서 공부하던 젊은 스님이 돌아가셔서 다비하러 가는 길이라네. 당연히 따라갔지. 공터에 이미 화장할 준비가 되어있었어. 나뭇단에 올린 관이 주사위처럼 생겼더라. 스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정좌의 자세로 입적하셨기 때문에 관도 그렇게 만든거래.
하늘에선 눈발이 조금씩 커졌어. 다비가 사직되어 나뭇다발은 붉게 타오르고, 신도들이 그 주위를 탑돌이하듯 돌면서 불경을 바치는데 그 광경은 아름답고 신비로웠어.
거추장한 육신의 옷 벗어버리고 본래의 곳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죽음이 저런 모습일거라고...

너희들과 도산서원을 함께 갔던 때도 생각나 참 좋았다.

코로나 잠잠해지면 함께 여행가자.
좋은 추억을 함께 만들고 싶다.

수원 화성에도 놀러와. 여긴 정순이가 완벽한 해설사야. 자격증도 있다지.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장소인 안성을 돌면서 우리 친구 안성댁이 떠오르더라.
지금은 손주들 봐 주러 대구에 살지만 여기 안성의 보건소에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딸처럼 살았잖아.
여기가 미륵의 땅이라 사람도 순한 모양이다.

생각보다 독후감이 길어졌네.

9월 독서는 처음엔 우리나라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으로 하려했는데
지난번 인숙이가 소개한 사노 요코 글 읽으니 너무 재밌는거야.
좀 괴짜 일본 할머니인데 우리 같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 추천한다.
여러 책이 있는데, 사는게 뭐라고죽는게 뭐라고 두 권으로 하자.
책이 두껍지 않고 쉽게 잘 읽혀서 두 권이라도 부담스럽지 않을거야.

다들 걷기로 몸 튼튼 책 읽기로 마음 튼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