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12기 친구들이 함께 따로 하루 만 보 걷기를 시작한 지 네 달이 되어간다.

준비할 수 없이 맞닥뜨린 재난 상황에 어리둥절하고 당황해하다가

이왕 이렇게 된 시간, 우리는 온라인으로 걷기와 독서 모임을 이어나가자고 했다.

각자 매일 만 보를 걷고 단톡방에 결과를 올리자고.

한달에 한 번 모이던 독서 모임도 온라인으로 하자고.


시작한 이후 내 기억에 친구들이 걷기를 빼먹은 날은 하루도 없다.

나는 많이 빠졌지만 친구들은 하루 만 보 걷기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사실 나는 좀이 아니고 많이 게으른 편이고, 뭘 꾸준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걷자 말은 불쑥 했지만 나도 나를 믿지 못했고, 실제로 그렇게 매일 걷지도 못했다.


그런데 꾸준한 친구들의 성실하기 짝이 없는 없는 매일 걷기와 올려주는 사진을 보며 엄청난 힘을 받게 됐고, 나도 모르게 걷게 되었다.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을 만 보 걷기로 해 두었다.

시간 되는대로 걷자, 어쨌든 만 보는 걷자 이렇게 정했다.


걸으며 생각한다.

서로 응원하니까 힘을 내야 하겠지?

친구들 모두 혼자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걷고 있겠지.

걷다가 힘들면 찻집에 가서 숨도 고르겠지.

그러리라 생각한다.

걷는 시간은 올곧은 나만의 시간이니까.

귀에 이어폰을 꽂고 그 시간으로 들어서면 고스란히 내 시간이 된다.


사실 한꺼번에 만 보를 걷는 일이 쉽지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정말 좋은 산책로가 없는 동네에서는 그 거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처럼 보폭을 크게 하고 마치 경보선수처럼 빨리 걷는 경우는 칠천 보만 걸어도

무척 힘들어 됐다 싶기도 하다.

그럴 때도 결국 친구들이 걷고 있고 응원하고 있어 하며 힘을 내게 된다.


친구들은 꾸준히 대략 만 보 내외를 걷고 있지만(거의 그 이상), 가끔 매일 놀라울 정도로 많이 걷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힘들 텐데도 그 친구들이 그렇게 많이 걷는 건 걷는 즐거움 그 너머의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닐까 짐작된다.

그리고 그러기를 바란다.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좋다.

안 걷던 친구들이 걸어서 더 좋다.

그 덕에 나도 걷게 되어 좋다.

걷는 친구들이 보여주는 풍경이 너무 좋다.

미영이가 그리는 연필화도 좋다.

인천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가끔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렇게 말한다.

윤순이가 올려주는 인천 모습에 가슴이 이상해져.

손주들을 돌보며 그 아이들의 뛰는 모습을 보여줘 너무 좋다.

아이들 사진을 보면 손으로 쓰다듬게 된다.


이 모든 걸 친구들이 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