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함께 읽은 책 탈무드」


「탈무드는 읽는 책이 아니라 연구하는 책이다.」


탈무드를 읽고 나니 이 말이 이해되네.

비유로 제시되는 짧막한 우화와 판례들은 어려울 것도 없이 술술 읽히지만 그렇게 읽고나면 너무 밍숭밍숭해. 


사실 탈무드는 원래 유대인 외 다른 민족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지식이었대. 오랫동안 진짜 유대인이 아니면 타 민족은 탈무드의 열람이 허락되지 않았단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탈무드는 주일미군 군종장교로 일본에 왔다가 일본에 눌러앉은 랍비 마빈 토카이어가 일본어로 편역한 우화책을 번역한 것으로 실제 탈무드의 양과 비교할 때 0.1%에 불과한 거라니까 5천년 유대 역사의 지적 정신적 자양을 맛보기엔 턱도 없이 부족하지.


책 머릿말에 등장하는 두 명의 굴뚝 청소 이야기는 조세희 선생님이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도 비유로 나왔던 적이 있지?

옛날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실렸던 우애깊은 형제 이야기도 탈무드에 나온 우화였더라. 우리 교과서에선 볏단을 서로 날라다 주었는데, 여기서는 사과와 옥수수를 옮기더라구. 요즘도 도덕 교과서에 이 우화가 나오려나?

두 개의 머리에 대해서도 인상깊게 읽었어. 

하부르타라고 하는 유태인의 짝을 이뤄 토론하는 전통적인 학습을 떠올리며 "만약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아기가 태어나면 이 아기를 두 사람으로 칠 것인가, 한 사람으로 칠 것인가?"열띤 논쟁을 하는 젊은이들을 상상해보기도 했어. 

늘 내가 주입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친 것에 대한 반성과 아쉬움때문일거야.

유대인의 도서관은 항상 토론하는 학생들로 소리가 가득하다잖아. 옆 테이블의 토론을 방해하지 않는 정도의 소리면 허용한다는 그 문화가 신선하며 충격적이었거든. 내가 교실에서 가장 많이 한 말 중의 하나는 "조용히 해!"일거야.


탈무드에선 교육과 선행을 자주 언급하는 데 특히 교육의 중요성을 엄청 강조해.

위대한 랍비 세 명중 하나인 요하난 벤 자카이는 서기 70년 로마에 의해 유대인이 전멸의 위기에 놓일 때 학교만 있다면 유대의 전통은 지켜진다고 믿고 사령관과 담판을 벌였단다. 그의 예견대로 황제에 오른 사령관이 약속을 지켜 남긴 작은 학교로 인해 유대인의 지식과 전통을 지켜올 수 있었다네.

그는 <착한 마음을 갖는 것이 최대의 재산이다.>는 말을 남겼다고 해.


또 수석 랍비가 다른 지역에 두 명의 랍비를 보내어 그 도시를 지키는 사람을 만나 조사하려고 할 때 경찰관의 최고 우두머리나 도시의 수비대장을 모두 물리치고 도시를 지키는 사람은 학교의 선생님들이라고 하던 장면에선 웬지 뭉클하더라구...나도 그런 사람이 되었어야 했는데...난 뭘 가르친거지?


선행과 쾌락도 재미있게 읽었어.

항해중이던 배가 갑자기 휘몰아친 폭풍우로 항로를 벗어나 우연히 아름다운 섬에 도착하거든. 배의 손님은 다섯 그룹으로 나뉘어.

첫째 그룹은 자기들이 섬에 머무는 동안 바람이 불어 배가 밀려날지도 모르므로 비록 섬이 아름답기는 하나 상륙하지 않고 배에 그대로 머무는 사람들

둘째 그룹은 급히 섬에 올라가 향긋한 꽃 향길 마시며 나무그늘에서 원기를 회복하고 배로 돌아온 사람들

셋째 그룹도 상륙했는데 섬에 너무 오래 머물러 배가 출항하려고 할 때 서둘러 돌아온 사람들 그러나 서두르는 바람에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모두 섬에 두고 오고 배의 좋은 자리도 뺏겨 버림

넷째 그룹은 바람이 불어 선원들이 닻을 올리는 것을 보고도 설마 선장이 우리를 두고 가랴 여전히 섬에 남아있다 배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제야 허둥지둥 헤엄쳐 배에 올라온 사람들 이런저런 상처를 입음

다섯째 그룹은 배불리 먹고 아름다운 섬에 흠뻑 도취되어 배가 떠날 때 울리는 종소리도 듣지 못한 사람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그룹에 속하겠는가?

여기서 배는 선행, 섬은 쾌락을 상징한대.


예전 대학 때 교양시간에 한 교수가 그런 말을 하더라.

한 사람이 맹수에 쫓겨 허겁지겁 도망가다가 나무를 발견하고 나무에 올라 겨우 한 숨을 돌리는데 흰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 나무 밑동을 갉아 먹더래. 나무 아래는 맹수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고 흰쥐와 검은 쥐는 번갈아 나무를 갉아대는데 머리 위에서 맛있는 꿀방울이 똑똑 떨어지자 그 꿀에 취하는... 그게 인생이라고.....


인생에서 기도와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가도 자주 언급하는데 유대인은 하루 중에 반드시 얼마의 시간은 공부를 하는 것이 의무란다.


누군가 그러더라. 진짜 공부는 중년 이후에 하는 공부라고.....중년 이후의 공부는 공부의 목표로부터 자유롭기때문에 비로소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단다. '공부해서 뭐해?' 라는 생각이 들 때, 아무 짝에 쓸모없을 때 내가 좋아서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래.


여기 김사인의 <공부>라는 시 하나 소개할께


공부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를 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 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 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라고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왠지 공부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지지 않아?


위 시는 우리가 다음에 읽을 책에 나오는 시야.

우연히 정재찬이 쓴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이란 책을 읽었는데

시가 한 75편 정도 나오는데 참 좋더라구.....

그래서 내 맘대로 7월에 함께 읽을 책으로 추천한다.


우리 진짜 공부 같이 할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