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코로나때문네 위축된 생활이지만 오래간만에 와보니 모두들 부지런히 열심이 건강들 챙기며 보람차게 생활들 하는 것 같아 반갑네.  김현경의 '어느 별에서 왔니'를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고 차일피일 미루었다가 이제서야 다 읽었다. 만화 같기도 하고 시트콤 같기도 한 이 소설책을 읽는데 도로의 방지 턱처럼 흐름을 방해하는 것은 저자가 내세우고 싶은 지적 유희 에니어그램을 통한 인간분석이었다. 저자는 특별한 비법의 앙꼬(에니어그램)가 들어간 맛있는 팥빵이라고 내세우며 소설을 전개하고 있는데 솔직히 나는 앙꼬에 별로 관심이 없어 소설의 거죽만 핥았다. 또 하나는 해파리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소설의 화자 18세 나영수가 마치 해파리 같은 18세의 여자 같다는 착각을 종종 했다. 나름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소설의 제목과 각 소제목을 어떻게 정했는지 밝힌 저자가 후기이다.

 

영수처럼 천성적으로 인간관계와 감정에 서툴렀던 저에게 어린 시절부터 타인들과 세상을 이해하는 창이 되어 주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창작에 많은 영감과 영향을 주고 있는 음악과 영화들에 감사를 돌리고자 하는 뜻에서 이 소설은 각 장의 소제목을 음악배경의 제목, 혹은 주제와 관련 있는 제목을 가진 노래나 영화 제목에서 따서 붙였습니다.”

 

나도 같은 이유로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내 인생에 감명과 영향을 준 영화를 빌어 표현해 보고자 한다. 1992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이다. 영화를 안 본 사람이나 보았지만 기억이 희미해진 사람들을 위해 영화의 일부를 상기해보자.

 

 

몬태나 주 강가에 있는 한 교회의 목사인 맥클레인은 송어를 낚는 fly fishing을 종교와 같은 정도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즐긴다. 그의 영향을 받아 두 아들들도 아버지로부터 낚시를 배워 어려서부터 낚시를 좋아한다.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였던 맏아들 노먼은 집을 떠나 동북부 명문대학에서 공부하고, 아버지의 규칙을 깨고 엄격한 통제를 벗어나려고 했던 과감한 성격의 동생 폴은 고향에 남아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낚시를 인생의 최고 목표처럼 여기면서 산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노먼 앞에서 폴은 아버지가 가르쳐준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낚시 법을 개발하여 예술의 경지에 이른 낚시 솜씨를 뽐낸다. 포커 게임을 즐기던 폴은 위험한 도박에 빠져 들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빚을 지게 되었고 어느 날 폭행치사를 당해 골목에 버려진 시체로 발견된다. 이 영화의 명대사는 사랑하던 둘째 아들 폴을 못 잊었던 아버지 맥클레인 목사가 임종 얼마 전에 한 마지막 설교의 내용이다. 아래 동영상에서 오른쪽 하단에 있는 키보드 아이콘을 클릭하면 자동 생성되는 영어자막을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embed/TfGmV-el44k

 

Each one of us here today will, at one time in our lives...

look upon a loved one who is in need and ask the same question.

 

"We are willing to help, Lord... but what, if anything, is needed?"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돕고 싶습니다, 주님! 그런데 그에게 필요한 게 뭐죠?”

 

Or it is true we can seldom help those closest to us.

그러나 우리가 가장 가까운 그들에게조차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Either we don't know what part of ourselves to give or, more often than not, the part we have to give is not wanted.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무엇으로 그들을 도와야할지 모를 뿐 아니라, 종종 그들이 원치 않은 것을 주고 맙니다.

 

And so it those we live with and should know who elude us.

이렇게 서로 이해 못하는 사람들과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But we can still love them.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내가 이런 사랑을 평생에 한 번이라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세삼 인간을 이해하겠다고 인간탐구를 하는 것도 어렵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가족이니 완벽하게 사랑하기는 어렵고 깜냥 것 이해해보고 깜냥 것 사랑하며 살련다.

 

 

아래 흐느적흐느적한? 해파라 같은 노래 내마음은 한 대의 바이올린(Mon Coeur Est Un Violin)'이란 샹송 한 곡을 첨부하니 젊은 날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이상형을 떠올리며 들어보기를

 

https://www.youtube.com/embed/gv_QqmstMXg


 

내 마음은 한 대의 바이올린

당신은 바이올린의 활과 같이 계속해서 나의 심금을 울리네요.

나는 당신의 볼과 턱 아래 포근히 안긴 것 같네요.

당신의 활과 나의 바이올린 현()이 교차하면서 내는 선율은

마치 오래된 무곡(舞曲) 같아요.

 

우리 두 사람의 스텝이 흔들릴 때 우리의 음악은 우울한 선율을 끄집어냈군요.

이 긴 밤이 곧 지나고 여명이 밝아오면

나의 마음은 당신으로 가득 찰 거예요.

 

음악은 한바탕 꿈인데 음악이 당신의 지휘아래서 숨김없이 쏟아져 나오네요.

당신의 지휘 아래 부드러운 선율이 흘러나와 나를 깊이 뒤흔들고

내가 완전히 도취되었을 때 바이올린 현이 마지막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반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