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어물전

 

새로 전학 온 진우는 얼굴빛이 유난히 희었다. 이상하게 전학을 온 학생은 얼굴빛이 좀 다르다. 더 희거나 더 검다. 물론 타고난 살빛이 다 다른 법이지만 살던 곳의 바람이나 햇빛, 온도도 조금은 다르고 사는 방식도 약간은 다르기 때문일까. 그래서 교실에 다함께 앉아 있으면 좀 도드라진다. 그런데 또 이상하게도 몇 달 섞여 지내면 그 도드라짐이 사라지고 은은하게 스며든다. 교실에 있는 60여 명 학생의 얼굴빛은 제각기 다른 법인데, 조금씩 다르면서도 전체적으로 어우러져 수묵화의 번짐처럼 자연스러워진다.

진우는 소위 서울의 8학군이라는, 학부모 특히 어머니들의 교육열이 대단하다는 지역에서 전학을 왔다. 아버지는 의사이시다. 그런데 진우는 도통 공부에 관심이 없다. 아마도 그래서 그 교육열이 치열하다는 지역을 살짝 피해서 전학을 왔는지도 모르겠다. 좀 마음 편히 지내라고. 아무튼 진우는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고 조용히 아이들과 섞여 학교생활을 원만히 하였다. 어느새 살빛도 비슷해졌다. 다행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났을까. 정확히 헤아려보지는 않았다. 집 근처에 미도파 백화점이 있어, 남편과 함께 지하 식료품점에 장을 보러 갔다. 어물전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오징어 두 마리를 골랐다. 손질해 달라고 뒤에 서 있는 총각에게 내밀었더니 어라, 진우였다.’ 옛날 성품 그대로 조용히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던 게다. 아직 어물전 주인이 될 나이는 아닌데 싶어,

- ! 진우 아니냐? 여기서 뭐하고 있니?

-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수줍은 얼굴로 오징어 한 마리를 덤으로 담아준다.

 

오징어 두 마리 값으로 세 마리를 가져오며 우리는 무척 흐뭇해 하였다. 진우가 옛날 담임에 대한 애정을 오징어 한 마리로 표현한 것 같아서 행복하기까지 하였다. 사랑받으면 행복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좀 걱정도 하였다. ‘저 오징어, 진우 것이 아니라 어물전 주인 것일 텐데 이렇게 인심 써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