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옥 교장선생님께

 

잿빛 하늘입니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가로수는 가을비에 조용히 젖어들고  

있는 중입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아껴서 먹듯이 시월의 나날들을 보내고 11월의 첫날을 맞고 있습니다계절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지고 있음을 느낄 때 지난날의 가을을 떠올려봅니다.

 

등굣길 옛 인천여고 교정에 있던 은행나무 노란 낙엽이, 중구청 뒤 골목길 담장을 타고 오르던 붉은 담쟁이덩굴이 한 폭의 풍경화가 되어 무딘 감각을 일깨워 줍니다  

이 잿빛 가을날 교장선생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안부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만 했습니다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코로나19라는 괴물을 핑계로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을 합리화도 해보았습니다  

전화 드릴 용기도 없었고, 만나 뵙고 말씀드릴 용기도 없었습니다  

안부의 글 드리는 것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안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맡겨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감사의 마음은 깊이 숨겨두었습니다.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교장선생님의 안부가 전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SNS는 위대했습니다. 카톡 사진에서 교장선생님이 환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그 한 장의 사진에 교장선생님의 25년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건강하게 변함없이 웃으시는 사진을 보고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사진을 보면서 감사의 마음은 전하지 못했지만 안부는 읽을 수 있  

었습니다 

 

허회숙 교장선생님이 스승의 날 교장선생님과 함께 점심 식사하는 사진을 카톡에 올려주셨습니다. 제가 인일여고 나왔다는 것을 아시고 삼대가 같이 현직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하셨던 것 기억하시는지요  

교장선생님은 인일여고에서 허회숙 선생님을 가르치셨고, 저는 허회숙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 밑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삶의 길이 달라지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부족했던 저를 이끌어주셔서 교장선생님의 뒤를 따를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챙겨주시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

남교사들이 부장교사 11자리를 놓고 서로 되고 싶어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경쟁이 치열했던 부장 자리에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던 저를 두 자리는 여자부장 몫이라고 하시면서 뽑아주셨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제가 승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교장선생님이 아닌 남교장 선생님이었다면 고분고분 순종하지 않았던 저를 절대로 절대로 뽑아주지 않았을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식당에서 점심을 드시면서, 닭띠 해에 태어나셨는데 닭의 벼슬 때문에 관운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의 그 관운을 부족한 제게 나누어 주시고, 물길을 돌려 주셔서 교장선생님이 가신 길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삶이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그 만남이 물길을 어떻게 돌려놓아주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을 모실 있었던 것은 그런 점에서 천운이었습니다. 안부인사도 못 드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할 용기는 내지 못했지만 그 천운을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제게 주신 추억들이 있습니다  

퇴직 기념 교지 원고 청탁을 받고 고민을 하였습니다  

점심시간에 교장선생님과 함께 앉아 식사하는 것을 피하고 싶어 했습니다

회식이 있는 날은 교장선생님을 피해서 구석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런 저를 보시고 교장선생님은 저 유명희 선생 나 피해서 거기에 앉는 거지라고 말씀 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반항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쓴 글을 보시고 교장선생님은 문과 출신이어서 그런지 글이 좋다고 칭찬까지 해주셨습니다.

 

학년말 2월에 갔던 수안보 교직원 연수회가 생각나시는지요  

여자 부장이었기 때 문에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잘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새벽에 일어났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 내리는 낯선 수안보에서 새벽 기도를 할 수 있는 교회 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찾아 들어간 교회는 전등빛이 희미했고, 드문드문 새벽 기도를 나온 신도들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새는 빗물을 양동이에 받고 있었습니다. 양동이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교장선생님과 함께 드린 새벽 기도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교장이 되어서 식사 시간에 가능하면 선생님들과 합석하지 않기 위해 머리를 써야 했습니다. 교감선생님이 출장을 가서 혼자 점심과 저녁을 먹어야 할 때는 선생님들 식사가 끝나는 시간을 맞추어서 갔습니다  

회식 때 선생님들이 옆자리를 피하려고 할 때,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항변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한 여선생님은 끝까지 고집스럽게 내 옆자리를 피했습니다.

 

그 선생님이 내 자신의 과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껄껄 웃으며 넘기셨던 모습이 카톡의 그 사진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 제가 잘못을 많이 했습니다.  

 

업무를 처리하면서 교장선생님이 생각날 때가 있었습니다.

지난날 저지른 잘못들 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관운이 있어 교장선생님이 하신 퇴임을 저도 무사히 할 수 있었습니다.

퇴직을 하시면서 인일여고와 부평여고에 하신 장학금 기부는 교장선생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평교사 때 근무했던 인일여고까지 장학금을 기부하신 것은 지극한 제자 사랑 때문이셨겠지요?  

 

인일여고에서 열정적으로 가르치신 신화 같은 이야기를, 교감이 되신 후에도 학생들에게 화학을 가르치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퇴직 후 25년을 보내시고도 변함없이 환한 미소를 보여 주시는 교장선생님을 제가 감히 닮고 싶다고 말씀드려도 괜찮으시겠지요?

 

그동안 용기가 없어서 드리지 못했던 부끄러운 고백과 감사의 마음이 이 부족한 글에 담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내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 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011월 첫날

 

교장선생님의 손제자 유명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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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 유명희가 저번에 인일동산 글쓰기 공모에 냈던 글인데 총동문회 게시판에 있기에 우리 기 게시판으로 가져와 봤어.

진실하고도 깊은 감사가 느껴지는 글이라 마음이 뭉클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