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모든 일상이 정지된 지난 3,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하였다.

예정되었던 신년회도 취소되었고, 매월 둘째 주에 만나던 독서모임도, 셋째 주에 만나던

걷기 모임도 모두 할 수가 없게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걷고 그 결과를 매일 톡을

통해 올리며 공유하기로 했다.


당시는 실내 체육시설도, 공원의 체육시설도 폐쇄되어 마땅히 걸을 곳도 없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인천의 구도심, 특히 중구와 동구 지역의 골목길들을 걸었다.

그 중에 걸을 때마다 나를 가슴 벅차게 하는 곳이 인일여고로 들어서는 전동의 골목길이다. 지금은 45년 전과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곳곳마다 추억이 방울방울 솟아나는 곳들이다.


특히 인일여고 정문 앞에서는 한참을 머뭇거린다.

교문에서 보이는 교정의 모습을 사진도 찍고, 그곳에서 공부하는 후배들과 교직원들을 위한 기도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 걷던 길을 계속하여 송월동 쪽으로 넘어가곤 하는데, 어느 햇살이 좋은 봄날에 나는 용기를 내어 교정으로 들어섰다.

 

주말이어서인지 코로나로 등교 정지가 된 상태라서인지 교문은 활짝 열린 채 학교는 텅 비어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는데, 수위실 옆에 있던 빨간 우체통 생각이 났다.

편지 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곧잘 엽서에 하나 가득 사연을 적어 그 곳에 넣곤 했다.

지금은 사라지고 나무들만 부쩍 자라 있었다.

오른쪽에 있던 무용실과 테니스장은 새로운 건물로 바뀌고, 교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던 원형교사가 사라졌다.

시내의 먼 곳에서도 저기가 우리 학교지하는 자부심과 그리움을 주던 건물인데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원형교사 옆의 장미 아치도 없어지고, 새로운 계단이 예쁘게 들어섰다.

 

원형교사 속을 돌아다니며 술래잡기하듯 골목마다 계단참마다 펼쳐지는 신기한 장소에 재미있어 하는 중1 꼬마가 눈에 보인다.

원형교사 1층 중학교 1학년 1반에서 고등학교 4층 도서실까지는 너무 먼 길인데, 책을 좋아하던 그 꼬마는 이것 저것 구경하며 그 길을 매일 다닌다.

특히 코를 맞춘 듯이 가지런히 정리된 신발장과 언니들의 오리표 운동화가 부럽다.

인일여고 언니들의 스웨터 교복과 곤색 타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렌다.

원형교사 옆 느티나무 아래에서 고무줄도 하고, 복도 바닥에서 공기도 하려면 쉬는 시간

10분이 너무 짧다.

피자조각처럼 생긴 교실의 기다란 책상은 불편하기도 하지만, 모두 칠판 앞쪽으로 시선을 집중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사춘기를 한참 겪고 있는 중2의 단발머리 소녀가 보인다.

방과 후에 집에 가기보다는 나무그늘에 앉아 책을 읽거나 분수대 벤치에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친구를 좋아해서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이야기하기도 하고 혼자서 교실에 남아 공부도 한다. 과학실 현관에서 탁구를 치는 고등학교 언니가 멋있어서 며칠을 거기 가서 구경만 한다.

국어 선생님이 멋있다. 국어선생님이 되어서 이 학교에 와서 꼭 중학교 2학년들을 가르치리라 결심한다. 중고 분리가 되어서 도서관이 온실 뒤쪽 음악실 아래로 옮겨왔다.

방학 내내 한국 단편 소설집 수십 권을 빌려 읽는다.

 

키도 마음도 자라서 조금은 의젓해진 중3의 여자 아이.

공부한다고 밤늦게까지 심야 음악방송을 듣고 아침이면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나눈다.

국내 포크송 가수들과 해외 팝송 가수의 노래가 친구들의 관심 거리이다.

가정 시간에 몇 주에 걸쳐 잠옷을 직접 만들어 속리산 수학여행에 가지고 가서 입는다.

여행지 숙소에서 잠옷 패션쇼도 한다. 하루 종일 수업을 빼고 연극 대회를 한다.

멕베드, 베니스의 상인, 수업료를 돌려주세요, 로미오와 줄리엣 등 유명한 작품들을 각 반마다 몇 달을 준비하여 무대에 올린다.

친구들의 분장을 도와주며 연극 구경을 한다. 분장한 친구들의 모습도 멋있고 연기도 대단했다.


아름다운 가을날, 햇살이 참 따뜻하다. 겨울이 되자 친구들 중에 서울이나 다른 곳으로 진학하게 되어 헤어짐이 서운하다.

입시가 끝나고 헤어지기 서운하여 친구들과 영화 러브스토리를 보러간다.

친구가 어깨에 기대어 너무 울어서 코트 어깨가 다 젖는다. 음악 스노우 플로릭(Snow Frolic)이 계속 입에 맴돈다. 사랑의 아픔을 생각해 본다.

 

고등학생이 되고 드디어 인일여고의 교복을 입었다.

도서위원이 되어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는 주로 도서관에서 살았다.

도서관에 자주 오던 친구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 앞에 줄 서서 떠드는 것도 재미있고, 교실 앞에 나와 해바라기하며 친구들 이야기 듣는 것도 좋았다.

학교 밖에서 다른 학교 남학생들과 클럽 활동하는 친구들 이야기, 교회나 성당에서 만난 남자 친구 이야기, 초등학교 동창을 다시 만나 사귀게 된 이야기 등등 친구들의 이야기는 늘 끊임이 없었다.

이성에 대해 관심이 많던 그때 학교를 한바탕 뒤집어 놓은 것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청소년 입장 불가였던 그 영화를 우리학교 학생들이 많이 보고 왔기 때문에 학교에서 전교생을 수색하고 자진 신고를 받아서 다녀온 사람들을 방과 후에 남겨 얼마간의 벌칙을 주었다.

모범적인 선배들이 많이 불려 와서 결국 형식적인 벌이 되고 말았다는 후문이었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고 온 친구들의 용기가 한편으로 부러웠다.

 

우리들의 고등학교 시절은 교련으로 시작되었다. 응급처치, 제식훈련, 하나하나 배울 때는 재미있었지만, 시험을 보거나 발표회에 나가면 가슴이 떨려 실수를 하게 되었다.

입학하자마자 배우는 강강술래는 어버이날에 부모님 모시고 공연을 하며 끝을 맺는다.

무용시간마다 배우는 포크댄스는 학교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자신 있게 나설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느 가을날 교내 방송을 통해 전달된 한 마디로 전교생이 학교 운동장으로 모여 한바탕의 춤을 추었던 추억이 있다.

우리들에게 포크댄스를 가르쳐 주셨던 최기숙 선생님이 전근 가시게 되어 오늘이 마지막이니 함께 춤추자던 방송 맨트에 모두가 운동장으로 나와 선생님과 어울려 춤추었다.

 

예선을 거쳐 가을밤에 분수 주변에서 열리던 합창대회, 생물 선생님이 여름 내내 수고 하셔서 가을이면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시던 국화전시회, 시화전, 사진전, 우리에게 시와 소설이야기로 가슴 부풀게 하셨던 국어 선생님들, 음악을 들을 귀를 열어 주시고, 악보를 보고 노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셨던 음악 선생님, 그림을 보면 서양 미술사를 기억하게 하며, 현대 미술을 보는 안목을 길러 주셨던 세계사 선생님과 미술선생님, 사물에 대한 탐구심과 관찰력을 키워주신 과학 선생님들......

참으로 좋은 선생님들을 이 교정에서 만났고, 많은 친구들 선후배들과의 사연으로 이 교정이 가득하다.

 

다시 찾아 온 인일 여고는 건물이 바뀌고 전혀 낯선 곳인 양 나를 맞아 주지만 아직도 이곳에서는 많은 우리의 후배들이 그 때의 우리처럼 꿈을 키워가고 있으리라.

어서 코로나19 상황이 끝나고 우리의 후배들이 마음껏 이 교정에서 추억을 만들어 가길 기도한다.

 

지금은 만나지 못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온라인으로만 소식을 주고받고 있는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린 시절 이 교정에서 꿈을 키우던 나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가슴 한쪽이 싸하게 아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