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과 자율을 가르쳐준 나의 인일

 

나는 지금 아득한 옛날, 소년 시절로 돌아가 본다. 거기 나의 사랑, 나의 모교 인일여고가 있다. 늦게까지 모여 공부하다 올라간, 옥상에서 바라보던 장엄한 서해바다의 노을, 그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던 우리의 젊음을 그리워한다.

그곳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시간이 있었고, 열정으로 가득한 선생님들이 계셨고, 삶의 바다로 항해를 시작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

교정도 아름다웠다. 빨간 덩굴장미가 계단을 따라, 분수대를 따라 줄지어 피어있었고, 흰 조각상에서 맑은 물이 뿜어져 나오던 분수대 벤치에 앉아 그림도 그리고 친구들과 담소도 나눌 수 있었다. 운동장 끝에는 옆 학교와 담으로 나뉘어진 작은 산도 있어, 푸른 그늘에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근면, 성실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여성, 실천하는 여성, 일하는 여성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우리가 인일에 다닐 때 우리 학교는 시험감독이 없었고, 선도부가 없었다. 도서관은 개가식으로 운영하여 스스로 책을 찾고 빌리고 반납하곤 하였다. 나는 이것을 늘 자랑스럽게 기억한다. 이렇게 우리를 믿어주고 이끌어준 교풍이 우리를 우리 삶의 주인이 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인일여고는 내 인생의 나침반이었으며 방향등이었다. 넓고 예측하기 어렵고, 위험하기도 한 인생살이에서 등대가 되어 주었다. 검푸른 밤바다를 비추는 노란 불빛처럼 길을 찾아주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직후의 일이다. 나는 우리 집 다락방에서 현대문학수십 권을 발견하였다. 계간 문학 잡지였던 것 같은데 아버지가 구독하셨던 것을 둘 데가 없으니 컴컴한 다락방에 쌓아두셨다. 기거할 수는 없는 창고와 같은 어두운 다락방이었는데 어쩌다 내가 거길 올라가 보게 되었다.

매일 현대문학을 꺼내다가 다른 것은 읽지 않고 거기에 실린 시와 소설만 읽었다. 그런데 그 당시 소설의 내용들은 매우 슬펐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녀자들은 불행한 삶을 견딘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이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가해도 참고 견디고, 많은 남정네들이 첩을 두거나 바람을 피워도 아무 소리 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감자를 훔치다 들켜 몸을 팔게 되는 김동인의 <감자>도 읽었고, 인력거꾼의 아내가 병원에 가지 못해 속절없이 죽어가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도 읽었다.

여자로서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살게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단순히 그 시대의 관습일까. 생각해 보니 당시의 여자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할 능력도 여건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제적인 능력이란 곧 사회적으로 보수가 주어지는 일을 갖는 것이다. 일을 해야 경제적인 독립이 가능해지고 선택의 순간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유로울 수 있어야 자신의 존엄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랄 만큼 중대한 깨달음이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여전히 대부분의 학교나 가정에서 여학생에게는 현모양처가 되라고만 가르쳤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면 현모양처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오로지 그것만을 가르쳤다.

그래서 나는 우리 인일이, 생각하고 실천하며 일하는 여성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 특별히 마음에 와 닿았다. 그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 시험도 감독 없이 자율에 맡기고, 선도부도 없었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자부심을 갖게 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나의 생활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것이 나 자신일 수 있었다.

 

졸업하고 30여 년이 지나 다시 고등학교 동기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개인의 사정에 따라 드물게 전업주부로 산 친구도 있었고, 그것도 좋은 일이긴 하다. 그러나 대부분 무슨 일인가를 하면서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고 자신의 삶을 조율하면서 잘 살고 있었다. 사회에 공헌하면서 자신의 존엄과 자유를 지킬 수 있고 자립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15년이 흘렀다. 우리는 여전히 인일의 끈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내일을 분명히 기약하던 찬연한 서해바다의 노을은 살구빛으로 부드러워지고 엷어져 우리를 물들이고 있다. 내일도 해가 뜰지 어떨지 그것은 이제 알 수 없지만, 누군가는 지금도 설악산 봉우리를 오르고, 누군가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날마다 한다.

지난 가을에는 40여 명의 친구들이 모여 제주도 여행을 하였다. 첫날 저녁에는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독창, 이중창, 합창을 하고 플루트,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작곡한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다. 짧은 시 낭송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깔끔하게 실행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인일의 친구들이 대견하고, 내가 인일에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음이 참으로 감사했다.

우리는 다시 만나 독서 모임도 만들고, 여행도 하고, 걷기 모임도 하면서 건전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한다. 그래서 외롭지 않다. 모두가 인일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인일의 딸들인 것이 기쁘고 소중하고 자랑스럽다.